Rexism : 렉시즘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3화 본문

음악듣고문장나옴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3화

trex 2011. 4. 29. 08:54

20회라는 턱에서 넘어갈랑말랑하는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난회 줄거리] 이문세 카세트 테이프와 라디오 녹음으로 음악듣기에 재미를 붙인 소년은 중학생이 되고, 처음으로 용돈을 쪼개 앨범을 구입합니다. 


2011/04/2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2화
2011/04/2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화 

 

- 바비 브라운의 앨범 [Don't Be Cruel]은 지금 봐도 진용이 화려한 앨범이었다. L.A 레이드와 베이비페이스가 앞장선 송라이팅에 테디 라일리라는 걸출한 이름도 크레딧에 간간히 이름이 보이던 앨범. 훗날 이수만이 현진영을 기용하여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뽐내던 당시에도 이런 풍의 분위기에는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튼 그런 훗날의 일을 알 겨를도 없이 바비 브라운이 소년의 맘에 들었다. 음악을 듣는 사람이 대개 그렇듯 해당 뮤지션이 맘에 들면 관련 앨범에 손을 뻗거나 관련 뮤지션에 손을 뻗게 마련이다. 2년 뒤 1990년에 바비 브라운과 글렌 메데이로스(Glenn Medeiros)와 부른 'She Ain't Worth It' 싱글 때문에 글렌 메데이로스 앨범을 산다거나, 영화 [고스트버스터즈2](1989)에 바비 브라운이 'On Our Own', 'We're Back' 2곡을 제공한 것을 알고 급한 마음에 LP로 구입한다거나 말이다.

 

그러다보면 해당 뮤지션이 맘에 들어서 앨범을 오히려 역순으로 사는 경우도 생겼다. 기억하는 이들은 알겠지만, 글렌 메데이로스의 음성이 한반도 소년소녀들을 적시게 된(...) 계기는 프랑스 처자 엘자(Elsa)와의 협연 'Love Always Finds a Reason / Un Roman d'Amitie' 덕분 아니겠는감. 그 앨범 [Not Me]도 뒤늦게 구매한 경우였다. 그러면서 체육시간 발야구를 할 때 1루서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을 흥얼거리던 중등 시절이었다.

 

 

2학년 때 일이었다. 이문세의 카세트 테이프에 이어 이번엔 변진섭의 데뷔 앨범 카세트를 가져오게 된다. 이렇게 적다보니 도둑질 연대기 같다는 생각마저도... 아무튼 이문세의 4집이 '한 곡도 빼놓을 것이 없는 앨범'의 개념을 심어줬다면, 변진섭의 1집은 '한 곡도 빼놓을 것이 없는 데뷔반'이라는 개념을 심어주었다. 사람들은 대개 2집을 상찬하는 것이 사실이고, 실제로 80년대말-90년대의 변진섭의 위치를 만든 계기는 2집이 확실하다. 그런데 나에게 변진섭의 이미지는 지금까지도 그 1집이다. '밤이여 기쁨이여 내 사랑이여-'라는 가사를 설익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부르던 데뷔곡 '우리의 사랑이야기'을 비롯하여 '그대에게', '너무 늦었잖아요'('차가워진 밤거리를 홀로 거닐며- 맑은 별빛 바라보다-'), '새들처럼' 등 잊기 힘든 곡들을 알차게 담았던 앨범이었다.

 [이미지 출처 - www.maniadb.co.kr / 사이즈 편집]

 

집 거실에선 바비 브라운 틀면서 들썩이고, 혼자 거리를 걸을 땐 이문세와 변진섭을 흥얼거리던 소년은 점차 '나만의 목록'을 모으고 싶다는 욕구가 자연스레 돋았다. 당장에 책상 서랍 중 한칸 안에 몇개만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용돈을 또 모았다. 그리고 바비 브라운을 구매할 당시부터 눈에 걸리던 그 목록들을 하나둘씩 구매했다.

 

그 다음 목록은 뉴 키즈 온더 블럭(New Kids on the Block)이었다. 같은 반 학우들이 할로윈(!) 테이프를 서로 녹음해주고 교환하며 노는 동안 나는 뉴 키즈 온더 블럭을 구매했던 것이다. 머리가 정말 좋아서 합리화를 했다면, { 바비 브라운이 뉴 에디션 출신이잖냐. -> 모리스 스타(Maurice Starr)가 키운 애들이잖냐 -> 그런데 그 모리스 스타가 키운 백인 버전 뉴 에디션이 뉴 키즈 온더 블럭이래잖냐 -> 사는게 당연하지 않겠느냐 }라고 했겠지만 그런 잡지식도 없던 나는 그냥 구매욕에 의해 뉴 키즈 온더 블럭을 접했다. 웬일인지 뉴 키즈 온더 블럭만큼은 1집, 2집... 순으로 돈이 허락하는대로 구매했고 좋아했다. 그 안엔 백인 애들 랩도 있고, 백인 애들 소울 표방 발라드도 있었고 온갖 흉내와 지금 들으면 좀 웃기는 것들이 가득했다. 당시에 그게 안 웃겼다는게 문제였겠지.

 

역시나 가지뻗는 관심으로 토미 페이지(Tommy Page)의 앨범 [Paintings in My Mind]를 구매했는데, 좋은 교훈도 얻었다. 앞으로 내가 구매할 앨범 중 적지 않은 몇가지는 내 기대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현실적 감각!


[110426]

 

[4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