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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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8화

trex 2011. 5. 17. 15:57

20회라는 턱에서 넘어갈랑말랑하는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 음악취향Y 게재 : http://cafe.naver.com/musicy/13749


[지난회 줄거리] 고2가 되니 바비 브라운이 컴백하고 넥스트가 데뷔하고 서태지가 세상에 나왔다. 락앤롤 고등학생이 될랑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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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녹음 테이프에 담아준 것은 Queen의 라이브였다. 그렇다. 당연히 '보헤미안 랩소디' 있었고, '위 윌 락 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궁금한건 퀸의 이력보다, 녀석이 뭘 듣고 내가 뭘 들으면 좋을까하는 녀석의 언질이었다.결국 세상의 남학생이라는 존재는 락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운명일까.(아닌 사람도 많겠지) 화장실에서 나란히 소변을 보면서도 물어보고, 버스를 타며 귀가할 때 앞 자리 형의 왕왕거리는 이어폰 틈새의 소음을 들을 때도 이야길 했었다. "저거 메탈리카 노래 '엔터 샌드맨'이야.", "아아..." 이미 1년 전 메탈리카는 '블랙' 앨범을, 건즈 앤 로지스는 [Use Your Illusion 1&2]로 차트에 맹위를 떨치던 때였던 것이다.




친구는 소프트하게 스키드 로우의 데뷔반으로 시작하는게 어떻겠냐고 했는데, 조언도 안 듣고 방송에서(KBS 지구촌영상음악!) 귀를 감던 'November Rain'이 못내 걸려 건즈 앤 로지스의 [Use Your Illusion 1]을 구매했다. 그 곡 하나 바라보고 산 앨범인데 바깥에 바람은 불지요. 거실 커튼은 펄럭이지요. 전축에서 앨리스 쿠퍼 목소리 나오지요.(The Garden) 듣다가 내 무서워 죽는줄 알았다. 'Don't Cry'같이 음산하고 해괴한 발라드도 태어나서 처음 들었고, 10분짜리 광란 대작 'Coma'는 혼절할 지경이었다. 아 나는 메탈을 들을 소양이 애초에 안되는구나. 어떡하면 좋지, 난 들으면 안되는구나 싶었다. 그러던 기간이 제법 길었는데, 어느새...


스키드 로우의 [
Skid Row], 포이즌의 라이브 앨범 [Swallow This Live], 본 조비의 [Keep the Faith](본 조비 첫 구매 앨범이 이거라니 나도 참 답이 없는게, 당시 폴리그램 라디오 광고 영향이다), 메탈리카의 [Metallica], 익스트림의 [III Sides to Every Story](마틴 루터 킹 연설이 삽입된 트랙 대신 다른 트랙이 자리한 버전이었다) 등등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니 스키드 로우는 [Skid Row] 보다 [Slave to the Grind] 쪽이 더 맘에 들었고, 메탈리카는 취향이 아니라고 판단했고(훗날 좋아할 수 있었다), 익스트림은 왠지 멋진 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미 당시에 내 맘엔 건즈 앤 로지스의 액슬 로즈,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이 '최.고'가 되었다. 가격 부담 때문에 구매하지 못했던 '더블' 테이프 [Use Your Illusion 2]를 구매한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사고나서 땅을 쳤다. [터미네이터2] 사운드트랙 도둑질을 해서도 듣지 못했던 'You Could Be Mine'이 이 앨범에 있었구나하는 늦은 깨달음 덕이다.




갑작스레 상승한 구매력과 취향 변화엔 두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가정상의 균열. 1년 반 가까이 어머니, 동생과 떨어져 있어야 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집에서 지냈고, 매일 물 말아먹는 도시락을 먹다가 속에 탈이 났다. 그리고 나는 간혹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댔다. 문제집이나 교재를 사야한다는 변명이 더 나았을텐데, 거짓말 대신 더 나쁜 쪽을 택한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몇만원들이 스키드 로우가 되었고, 포이즌이 되었고, 퀸과 에어서플라이 베스트 앨범들이 되었다. 아버지는 모른 척을 하신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지금도 간혹 한다. 돌아가시기 전에 여쭙고나 보내드릴 것을.


나머지 이유 중 하나는 [핫뮤직] 구매였다. 락/메탈 뮤지션들이 표지에 자리잡는 비중이 월등한 이 잡지에 '하필이면' MC해머가 표지를 장식한 호가 있었다. 그게 내 첫 [핫뮤직]이었다. MC해머는 아마도 내한 공연 때문에 표지에 나온 것이리라. 지금 웹에서 검색해보니 이런 뉴스 정보도 나온다. "
「본격랩음악의 시조」,「제3세계 래퍼들의 기수」 MC해머가 오는 11월 13,14일 내한공연을 갖는다." 하하. 시조는 무엇이며, 제3세계는 무엇이란 말이더냐. 이렇게 묘상한 92년이었다. 아무튼 [핫뮤직] 덕에 성우진, 성문영, 그리고 무시무시한 데스메탈 안내자 이원씨 등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물론 데스메탈은 당시 들을 용기조차도 없었다. 아무튼 당시는 핫뮤직에서 퀸시라이커 앨범이 별 다섯개면 별 다섯개인줄 알았던 순진한 시대이기도 했다. '지구촌영상음악' 쪽에서도 [GMV]라는 잡지를 내긴 했지만 말랑말랑해서 잘 사보진 않았었다.


건즈 앤 로지스를 좋아했지만, 심의 문제로 인해 오히려 전작 앨범 발매가 늦었던 때였다. 밴드 바이오그래피는 기사 등으로 알음알음하였는데, 그 덕분에 탈퇴 멤버 이지 스트래들린의 밴드
Izzy Stradlin & the Ju Ju Hounds의 앨범을 사기도 했다. 아...하지만, 소양 부족한 내가 당시엔 이해못한 앨범이었다. 나는 이렇듯 부족했고 치기어린 아이였다. 이미 1년 전에 세상에 너바나(Nirvana)가 등장해 모든 것을 바꾸던 시기였는데 늦된 아이였기도 했다. 그 쪽 이야기는 다음에...


[11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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