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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합본호 기사 따라쟁이] 연휴 추천 5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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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합본호 기사 따라쟁이] 연휴 추천 5

trex 2012. 9. 27. 13:30

보통 명절 시즌 되면 [씨네21]류의 주간지 등이 연휴 간에 즐길거리를 추천해주는 기사 등을 보여주기 마련입니다. 그런 형식을 빌려 저도 5가지 즐길거리를 가볍게 추천하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즐기시거나 말거나는 당연히 구독자의 마음이고, 그저 평안한 연휴와 유희가 있는 일상을 기원합니다.



[음반] 마이클 잭슨 『Bad25』




기존에 발매된『thriller』25주년 기념반은 호화로운 외양이었지만, 이후 마이클 잭슨 사망이라는 불행한 사건이 앞으로 발매될 25주년 기념반들의 의미를 바꾸고 말았다. 한 뮤지션의 이력에 대한 찬사와 대중적 성공에 대한 추가 주석이라는 의미가 아닌, 추모와 회고의 의미가 되었으니 말이다. 하긴 그 덕분에 2번째 CD에 수록된 미공개 트랙들은 『Bad』앨범 당시의 '원형이판본'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Bad』의 성공적인 트랙들의 위치를 대신할 수도 있었을 근친성이 있는 이 트랙들은 그의 목소리에 실려 묘한 마음을 선사한다. 다시는 이 목소리를 대신할 수 없을 존재에 대한 부재감 또는 부채감. 『Bad』는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출중한 트랙들로 가득하다. 앨범의 7번 트랙 「Man In The Mirror」을 시작으로 「I Just Can’t Stop Lovin’ You」, 「Dirty Diana」, 「Smooth Criminal」까지 실로 황홀하다. 여기에 스티비 원더가 함께 한 「Just Good Friends」는 새삼 반가운 뭉클함이 있다. 이 25주년 기념반은 스탠더드 에디션과 딜럭스 에디션으로 각각 발매되었다. 각 발매본의 내용은 잘 확인해 보시길.



[책] 배명훈 『타워』




배명훈은 674층짜리 거대한 건물 국가를 상정하고 그 안에 음모와 로맨스, 군부와 정치라는 장르적 장치를 자유롭게 뒤섞는다. 이 거대한 타워는 지금 이 땅에 대한 인용일수도 있고, 시치미떼기용 구축물일수도 있다. 무엇보다 소설들이 기본적인 재미가 있고 거대함 속에 박힌 군집 안 인간들의 '사람됨'을 놓치지 않는 온기도 있다. 연작 중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는 웹 안에서 잉여질 하는 우리 세대를 위한 격려 인사다. 우리는 헛되지 않은 존재다. 독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존재 증명의 행위다. 일독을 권한다.



[앱 게임] 『Swampy』(디즈니 모바일)




앱 게임은 iOS계와 안드로이드계로 크게 양분되어 있고, 이미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가 서로의 판을 굳힌 시장이다. 콘솔이나 PC 게임계를 방불케하는 대작들도 은근히 러쉬고, 아이디어와 캐릭터로 무장한 캐쥬얼 게임들은 그야말로 숱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중 『Swampy』를 추천한다. iOS계에 처음 출시될 당시엔 'Where is my Water?'였는데, 요샌 'Swampy'로 통칭인 모양이다. '하수구엔 악어가 득시글거린다'라는 도시 전설을 '하수구에 있는 악어는 샤워를 좋아해'로 유쾌하게 비튼 아이디어도 재밌고, '터치'라는 방식으로 어떻게든 악어가 샤워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줘야 한다는 게임의 방식도 재밌다. 우리의 주인공 악어에게 샤워할 수 있는 물을 제공하려면 머리도 어느정도 굴려줘야 한다. 머리를 싸매다보면 어느새 경부선이 짧아져 있음을 느낄지도. 물론 iOS계와 안드로이드계 공히 출시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



[단행본] 무라타 유스케 『풋내기 만화 연구소 R(리턴즈)』




옛날 옛적, 국내엔 발매되진 않았지만 토리야마 아키라의 『풋내기 만화 연구소』라는 책이 있었던 모양이다. 소년지 연재에 응모하고픈 꿈나무를 위한 '만화 그리기 입문 교육(?)' 단행본이었던 모양인데, 이제 이걸 21세기엔 『아이실드21』의 작가 무라타 유스케가 속편격인 내용을 내놓았다. 일본 출판 시장의 현황에 맞는 팁들이 있어서 국내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만화를 그린다는 다짐과 공모전 응모/투고라는 액션이 굉장히 중요한 분야라 이 부분에선 소년만화풍의 '화르륵'한 정서가 있다. 즉 만화 단행본 자체로 보더라도 제법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타오르는 소년 배틀물의 진가는 무라타 유스케가 이미 『아이실드21』에서 증명해냈으니. 작가처럼 자신만의 그림체를 가지고픈 사람에게 추천한다.



[영화] 김기덕 『피에타』




『피에타』엔 『악어』부터 시작된 그의 영화 세상 속의 사람들, '자본주의' 시스템 말단에까지 몰린 극단의 육체들이 즐비하다. 그들은 살아있기도 하고, 이미 죽어있기도 하고, 이제 곧 죽어야 할 사람들이다. 『아리랑』의 조그마한 쇳덩이들은 좀더 덩치를 키워 사람들의 육체를 우적우적 씹어먹거나, 거대한 피구멍을 내기도 하는데 이 살벌한 풍경의 배경은 김기덕의 지지자 중 한명인 정성일도 자신의 장편작에서 배경으로 삼은 '청계천'이다. 곧 허물어질 육체와 곧 쓰러질 풍경들 안에서 김기덕은 예의 신성함을 거론한다. '속죄'와 '참회', '희생'을 소환하는 이 작품은 여전히 불편하고 거친 완성도이지만, '나쁜 것'들 투성이었던 『나쁜 남자』같은 전작들보단 훨씬 나았다. 난 김기덕 영화에 대한 유럽 쪽의 호의를 '오(해)리엔탈리즘' 비슷한 무엇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의 마지막에 대해선 숙연함 외에는 달리 표현할 감정이 없었다.




=== 사실 추천을 좋아하지 않는다. 추천을 받는 것도 하는 것도 서로간의 오해가 있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성공 확률도 높지 않는다고 본다. 아마 이런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글을 보시는 분들에게 이 다섯가지 추천 외의 영역이 더 즐거운 유희이길 바란다. 모쪼록 그러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