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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셰프 코리아의 쾌락

trex 2013. 7. 2. 10:37

“박개똥씨, 수고하셨구요. 앞치마를 벗고 지금 바로 마스터 셰프 주방을 떠나 주십시오.” 강레오 심사위원이 무정하게도 깔끔한 멘트를 뱉으며 나를 주시한다. 눈빛에 질린 나는 소금 옥구슬을 눈알에서 뚝뚝 흘리며 동료들의 손인사를 보는둥 마는둥 퇴장한다. 그간의 일이 주마등마냥 스쳐지나갈 새도 없다. 그저 황망할 뿐이다. 저 하얀 바깥으로 나가면 정차식이 카쥬를 입에 뿝뿝 물며 나만을 위한 BGM을 불러줄 것만 같다. 나는 패자다. [마스터셰프 코리아] 무대에서 난 이렇게 퇴장당했다.



서바이벌 쇠퇴기에도 여전히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확실히(다행이도) 쇠퇴기이다. [슈퍼스타K] 지난 시즌 우승자 로이킴의 싱글 `봄봄봄`을 기억하는 이들은 없어도, 지지난 시즌 우승자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의 홍수에 질린 이들은 많을 것이다. MBC [위대한 탄생]의 반가운(하하하) 폐지 결정과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종편 제작 예능 서바이벌들은 이 계열 프로그램들의 신속한 퇴조를 대변하고 있다. 이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모니터 바깥 세상의 음악 페스티벌의 난립과 [히든 싱어] 같은 음악 서바이벌의 변종들이다. 연출 담당자가 까임을 당했다는 흉흉한 소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브랜드를 고수하려는 몇몇 대표 프로그램들을 제외한다면, 좀체 이 시장에서 자리 붙이기가 힘들다는게 요즘 추세인 듯 하다.



이런 서바이벌 시장 바닥에서 그래도 나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건졌으니 다행으로 알련다. 이 물건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이름 [마스터셰프 코리아다]. [마스터셰프], 그렇다. 요리문화의 박토이자 신지옥인 영국 출신의 출중한 요리사 고든 램지 아저씨가 “이런 시발것아. 이걸 음식이라고 만들었냐. 개시키야!” 라고 다정한 심사 멘트를 들려주시는 그 프로그램이다. 그걸 작년부터 한국의 올리브 채널에서 포맷을 수입해서 방영했는데 어느덧 2시즌에 닿았고 그게 너무 재밌는거다. 멘탈이 화로에 녹아 허덕이는 경쟁자들을 보는 심술궂음에서부터, ‘아저씨 아주머니들, 제 인생 개차반이지만 님들 잘 되길 기원할게요 ㅜㅜ’ 라는 응원의 마음까지 고취되는 묘한 프로그램이다.



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2시즌에 접어든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매력을 짚어보자니, 이 프로그램의 매력도는 참가자 보다 심사위원에게 좀더 치우쳐 있음이라는 사실이다. 응원하고픈 참가자들에게도 마음이 가지만 실은 비정하게 요리 접시를 쓰레기통으로 내동댕이치는 고든 램지에게 더 매혹되듯, 내 눈도 실은 ‘허 이 새키 봐라. 이걸 요리랍시고… 이걸 어떻게 표현한다’라는 복잡한 심사를 얼굴 근육에 응축한 강레오의 뽀얀 얼굴에 더 가 있다. 또한 내 귀는 “아이고 시그럽데이(시다)”, “아따 짜브레이(짜다)” 라고 뱉는 김소희의 멘트에 더 집중되어 있다. 시즌 내내 이어지는 이런 심사위원의 매력도를 제외하고는 [마스터셰프 코리아]의 매력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런 심사위원이 주연들이라면 참가 경쟁자들은 조연격들이다. 그중엔 정말 주연의 자리에 등극하기 직전의 매력을 발산하는 이가 있기도 하고, 그저 조용히 퇴장하는 단역 배우의 위치 쯤에 자리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자아내는 이야긴 극적 요소는 있어도 거짓은 없다. 남은 인생의 패에 가족을 걸고(위험하다!;;) 심기일전을 다짐하는 중년 남성들도 있고, 의사소통과 인식의 차이로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지만 자신감 하나만큼은 방송 세트 천장을 뚫을 기세인 교포 참가자 등 다양한 군상들이 있다. 요리를 진행하는데 심사위원의 지적을 받으며 허둥대는 광경은 가히 “박대리요. 구성은 깔끔한데 이 제안서 그래도 포커스가 달라졌으니 좀 고쳐야 할 거 같아요.”라는 지적을 받는 순간의 마음 속 풍경과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이런 시발!”이다. 박대리는 야근으로 제안서를 어떻게든 고치겠지만, 참가자들에게 남은 수십여분은 요리를 고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른 하강세일지도 모른다



이렇듯 흥미롭게 진행되는 [마스터셰프 코리아] 시즌2이지만, 1의 감흥에까지 닿지 못하는 것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아쉬운 부분이다. 기획의 의도와 연출의 묘가 있었겠지만 시즌1의 캐릭터 김승민의 실력(과 진심), 박준우의 엄청난 성장세(와 귀여운 태만함) 같은 절묘한 경쟁구도에서 발현되는 매력도가 2에서 재현될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 없다. 이를 서포트해줬던 젊은 김태욱과 서문기 등의 참가자들의 존재도 만만치 않아 후반부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2의 참가자들의 진심과 성장세도 볼만한 구경거리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겐 [슈퍼스타K 시즌2의 허각/존박/장재인/김지수] vs [시즌3의 울랄라세션/버스커버스커]의 구도처럼 보인다. 전자의 캐릭터들이 빚어낸 절묘한 배치에 비해 후자들은 찾아갈 생각이 별로 없는 오가닉푸드 매장의 메뉴판 같다.



단점 하나 더. 이 시리즈의 거부할 수 없는 팔자이기도 한데, CJ푸드의 강력한 입김 덕에 빕스 스테이크나 뚜레주르의 빵 따위(!)를 정갈한 접시 위 대단한 음식으로 대접받는걸 `굳이` 봐야 한다는 점이다. 창조경제를 화끈하게 응원하는 CJ미디어의 철면피에 이 정도 PPL쯤은 숨쉬는 일만큼 쉬운 것이겠지만서도 말이다. 이런들저런들 이렇게 단점의 열거를 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아마 시즌2의 막바지까지 쫓을 예정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츤츤하고도 데레데레한 심사위원들의 매력지수는 문제가 없고, 참가자들이 땀 흘려 고생해 만든 음식의 정갈함과 소금 옥구슬에 담긴 진심들을 의심할 생각없는 순진한 시청자라서 말이다. 강레오 심사위원의 무서운 멘트 “10초 남았습니다!”가 뇌 플레이어 안에서 자동 재생중이다. [130630]





+ 웹진 다:시에 게재 : http://daasi.net/?p=1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