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토리노의 말] 본문

영화보고감상정리

[토리노의 말]

trex 2015. 2. 7. 10:10

경이로운 카메라의 움직임이 잠언을 연상케하는 나래이션 이후, 과시적이지 않게 잠잠하게 유영한다. 가혹하게 거친 바람이 부는 마른 대지, 약한 불과 나무 토막에 의지하는 부녀가 있다. 멸망의 위기 이후의 광경, 또는 멸망을 목전에 둔 징조/징후가 속속들이 나타난다. 하지만 집요한 롱테이크, 종교적인 침묵은 같은 행위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서서히 쇠약해져 가는 말의 체력이 넌지시 암울한 비전을 암시하기 시작한다. 행위는 중첩될수록 변주되며 세상이 잘못 되었음을 말하는 방문자들은 싸움, 미국 같은 단어를 흘리며 창세기/말세기의 비유로써 본작의 이야기를 고민하게 한다.


아무것도 먹지 않는 말, 하룻밤새 말라버린 우물, 불이 지펴지지 않는 기름, 하루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6일째 비통한 파국으로 치닫으며 직전까지는 카메라 워킹과 동선의 영화였던 이 이매체는 움직이지 않는 카메라와 동선을 볼 수 없는 어둠과 소리의 매체로 변모한다. 그리고 살아있되 생명력을 긍정할 수 없는 상태의 부녀를 비춰주며 세상은 멸.존 중 어느 하나의 귀결로 가게 된다. 그나마 반복되던 사운드트랙조차 나오지 않는 엔딩 크레딧은 영화를 관람하던 내내 등장인물들의 피로와 통증을 전이받은 관객들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잔인하기도 하지.






TistoryM에서 작성됨


'영화보고감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스 캐처]  (0) 2015.02.08
[경주] 2차  (0) 2015.02.02
[도희야]  (0) 2015.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