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변성현 감독의 작품이자 설경구와의 두번째 만남이라는 점에서 작품은 어떤 의미에선 전작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 속 대사 "선천적 또라이다-!"을 다시 한번 설경구가 공연한 상대 배우에게 뱉는 듯한 서사를 품고 있다. 이번엔 남북 대립의 시대에 이어 동서 갈등의 시대, 자신이 품은 대통령 후보에 대한 한결 같은 사랑을 품은 한 '킹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실패한 킹메이킹에 대한 토로이자 이런 결과적인 시대상에 대한 미련을 품은 감독의 고백이다. 이른바 이 실패조차도 위대한 실패이자 현재를 위한 자양분, 우리라는 공동체가 풀러야 할 숙제라고 변성현 감독은 말하는 듯하다.
박정희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는 독재 시대를 향한 청산, 이를 위해 (정치) 인생 동안 헌신한 만년 야당 대권 후보 김운범(설경구 분)과 그의 등 뒤에서 그림자처럼 승리의 방향성을 모색한 서창대(이선균 분). 이 두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실화에 기반한 이야길 들려준다. 당연히 이것은 김대중과 임창록 두 사람의 관계를 극화로 풀어간 것이다. '30대 기수론'으로 불린 젊은 야당 정치인 간의 규합과 반목이 자리하고, 역시나 김영삼 등 한국 현대정치사의 아이콘들이 흥미롭게 수를 놓는다.
그 언저리엔 박정희라는 이름의 빌런과 그의 욕망을 대리 수행해주는 시대의 안타고니스들이 자리하고 있다. 가령 이후락이나 김형욱 같은 역사상의 인물을 따온 극중 캐릭터들 말이다. 이들이 자행한 폭파 음모 같은 불편함은 당연한 것이고, 이상적인 합일을 이룬 김운범과 서창대의 본의 아니게 벌어진 균열은 한편으론 우리 시대의 깊은 후유증이다. 그건 일종의 정치 BL 속 연애사의 종결일수도 있지만, 참으로 씁쓸한 회한을 품고 있다. 동서 대립이 야기한 도미노가 결과적으로 '광주'를 야기하고 박정희 시대 이후의 차기 정권의 불미스러운 뉴 아이콘을 만들었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우리로선 더더욱.
두 남자의 결합과 균열, 그 후일담의 속사정을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모르기에 나이 먹은 노쇠의 감각과 한 때의 낭만 시대에 대한 감상으로만 소화하기엔 분명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 다만 [불한당-]에 이은 차기작으로 이런 만만치 않은 큼직한 이야길 들고 왔다는 점에서 감독에 대한 신뢰는 여전하다.(올해 공개될 [길복순]에 대한 기대감 역시.) 가뜩이나 정치에 대해 생각하자면 이맛살 주름이 잡히는 시국이라 더욱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