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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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4화

trex 2011. 9. 6. 14:30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1995년... 

 

이승환은 동기의 자취방에서 3집 [My story]을 들을 당시엔 별 생각이 없었던 대상이었다. 오히려 그 전에 나왔던 [The Show!] 라이브 앨범이 조금 더 좋았었다. 당시에 신승훈과 이승환을 혼동하는 바보 부류 정도는 아니었지만 특별한 느낌은 없었는데 왠지 [Human] 앨범은 사듣고 싶었다. 앨범 한장으로 그 전과 그 후의 인상이 확연히 달라진 대상이었. 물론 앨범이 그만큼 의욕으로 뭉쳐진 작품이었고, 그게 내 취향에 맞아 들었다. 정석원이 만든 '악녀탄생'을 들으며 이 사람은 이런거 밖에 못 만드나라고 꼴에 비아냥거리기도 했고, '너의 나라'에서 앙칼지게 튀어나온 김종서의 목소리가 반갑기도 했다. 천일동안은커녕 십일도 채 연애도 못해본 사람에게도 '천일동안'과 '지금쯤 너에게'로 장식한 앨범의 앞과 뒤는 제법 사무치는 구석이 있었다. 훗날 [무적전설] 라이브 앨범 이후 더 위력을 발휘했지만 이때부터 이미 '변해가는 그대'는 굉장히 좋아했던 넘버였다.




2학년이 되어서도 학과 내 연극 소모임원이었다. 여름방학과 2학기 시작 즈음에 담당하는 학우가 눈물나게 희곡을 작성하고 그걸 가지고 1학년~2학년이 연극으로 준비를 한다. 학생회장이 분식도 사주고 달래기도 해주지만 재미와 동기부여가 없으면 뭐하나 싶은 일이다. 간혹 쉬는 시간에 음악도 듣는데 당시에 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4집을 재생했다. ...굉장히 반응이 안 좋았다^^);; '필승'을 이해해서 듣는 아이들도 없었고, 'Come Back Home'의 코맹맹이 랩을 좋아할 아이들도 없었다. 'Freestyle'까지 곡이 넘어갈수도 없었다. 듣다 말았으니까. 뭔가 해볼 수 있는건 끝까지 가보자 싶었던 3집에 이은 4집은 아마도 다른 영역에 대한 발돋음이 아니었을까 요새 생각해본다. 뭐 결국 결과적으로는 그걸 알 도리는 없게 되었으니까 말이지.




학교 내엔 '음악감상실'이라는 곳이 따로 있었다. 학교 방송부원이 번갈아 자리를 지키며 다방DJ마냥 쪽지에 적힌 신청곡을 재생해주는 곳이었는데 꺼진 것이나 다름없는 조명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어찌나 취향들이 일관적이신지 듣는 재미가 그렇게는 없었다. 왜냐면 대표적으로 거듭 틀어주는 - 즉 가장 자주 리퀘스트되는 - 곡들을 보자면, 푸른하늘의 '사랑 그대로의 사랑', 양대 'Rain'인 건즈 앤 로지스의 'November Rain'과 엑스 재팬의 'Endless Rain', 걸핏하면 나오는 메탈리카의 [Metallica] 앨범 3대 수록곡인 'Enter sandman', 'Unforgiven', 'Nothing else matter' 등이었다. 하도 듣다보면 정말 틀만한 LP(!)목록이 없어서 저러는 것인가, 아니면 이 학교 방송부원들의 완강한 취향 방어인지 의문이 들곤 했다. 그럼에도 자주 들려 수업시간 중간마다 쉬던 곳이었다.



2학년이 되니 '본 조비'와 '메탈리카'가 묘상하게 결합한 형태의 학교 밴드에 이어, 드디어 시대상을 반영(!)하는 또 하나의 학교 밴드가 등장하였다. 무슨 호박이라는 이름이 달린 펑크 밴드였다.(ROTC 운동장 한켠에 있던 컨테이너가 연습실이었다. / 아무래도 기존 동아리방 구역엔 허락된 공간이 없었나보다) 호박이면 얼터너티브지 왜 펑크냐...는 따질 필요가 업었고 암튼. 아무튼 그렇게 조그마한 학교에도 그린 데이와 오프스프링 등의 영향력은 있었구나하며 지금도 생각하면 간혹 웃기기도 하다.



겨울이 되었다. 조금 늦게 고향 내려간다고 집에 안부전화나 드리려 공중전화 앞에서 연락을 했는데(삐삐도 안 가지고 있었다. 난 모든게 늦었다) 아버지가 안부 탁 자르고 하시는 말씀이.



"니 영장 나왔다."



귀향을 서둘렀다^^);; 한달이 아슬아슬하게 남는 동안 동생과 마지막으로 (지금은 사라진 구미의 [아카데미])극장에서 [토이스토리]를 보고, 하나둘 세상의 소식이 좀더 예민하게 귀를 기울였다. 서지원이 사망했고, 동기와 후배들의 자취방에 하나씩은 자리잡았던 목록인 김광석의 죽음이 있었다. 훈련소 입소를 앞둔 며칠전엔 급기야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 기자회견을 하였다. 심난하게 돌아가는 연초였다.



훈련소 부근의 추어탕식당에서 숟가락을 떴지만, 세 숟갈도 넘기지 못했다. 그렇게 입대를 했고, 당연히 모든 것이 달라졌다. [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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