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30. 12:50

패스밴더는 여러 사람들의 우려대로 당연히 잡스 본인과 닮지 않았다. 그래도 태연하게 이 독재적인 면모의 '개자식'CEO의 일부를 잘도 추출해낸다. 취향은 아니더라도 대니 보일이 능수능란한 연출자인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고, 패스밴더와 도일은 애쉬튼 커처 판 [잡스] 영화를 일치감치 제치고 나간다. 무엇보다 수훈의 대다수는 아론 소킨의 시나리오다. 전기 영화 같은 시간 활용 대신 잡스의 애플 재적 시절 있었던 주효한 세 번의 프레젠테이션 직전에 있었던, 무대 뒤편의 일들을 상상으로 스케치하는데 그게 제법 효과적이다. 프레젠테이션과 신제품 공개 당시 희열감보다는 무대 이면에 있었던 실제 갈등들 - 주로 워즈니악과의 자존심 충돌 / 딸 리사와의 갈등 / 존 스컬리와의 파탄난 관계 - 에 초점을 맞추고 이 요소들이 차곡차곡 쌓길 꾀한 연출이다. 그리고 피날레엔 잡스 경력 황혼기의 클라이맥스 직전에 멈춘다. 즉 개자식 리더기 맞지만 한편으론 매혹적인 캐릭터임을 애써 부인하지도 않는 연출의 태도와 입장을 보여준다. 사후 재평가에 따른 논쟁도 피하고, 생생한 캐릭터성을 보존하기 위한 자구책인 셈이다. 덕분에 대니 보일과 아론 소킨은 각각 관객들의 집중력을 계속 붙잡게 하는 연출의 장기와 말의 전쟁터를 조성하는 시나리오 작법의 개성 정도는 이번에도 잘 챙겨 먹는다. 평가는 어떤 식으로든 유보일 수밖에 없겠으나 어쨌거나 애쉬튼 커처의 시도는 우습게 내려앉게 만드는 데는 성공-.

+ 넷플릭스에서 시청

'영화보고감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리시맨]  (0) 2019.12.05
[스티브 잡스]  (0) 2019.11.30
[겨울왕국 2]  (0) 2019.11.24
[우먼 인 할리우드]  (0) 2019.11.17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25. 11:02

웹진에서 글을 씁니다 / 별점은 이상한 제도죠 (링크 :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6892 )

== ==== = ===

로우하이로우 「풍속계 (feat. 윤택선)」

다양성이라는 미명의 이름값을 충족시키지 못한 느슨한 획일, 연성화로 일관한 재미없는 음악 듣기 시기가 있었다. 이스턴사이드킥, 아시안체어샷, 플러그드클래식 이 세 밴드가 그런 와중에 들려준 성취의 가치를 새삼 상기하며 손등의 핏줄이 곤두섬을 느낀다. 이제는 새로운 밴드다. 사이키델릭하게 아연히 진행하던 연주,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 위 육체 쪽에 손을 들던 개러지 사운드는 이들의 주된 특기였고 이번에도 여전하다. 대신에 세션 보컬이라는 방식으로 세계관을 지탱하는데, 우려와 달리 윤택선의 목소리는 수훈갑으로 잘 얹혀있다. 지글거리는 체온의 감각과 지표 없이 방황하는 지각의 휘청거림이 공존하는 가사 역시 인상적이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24. 09:42

안데르센의 창백한 동화에 깃든 죽음의 기운을 모두 덜어내고 해피엔딩과 오래도록 기억남을 클래시컬한 명곡을 배치하면 [프로즌] 1편이 안성 된다. 그런데 예상을 훨씬 상회할 정도로 많은 이들은 이 1편을 좋아했고, 스튜디오가 이것을 시리즈화하겠다고 다짐하면? 이런 2편이 나올 수 있게 되는 모양이다. [뮬란] 실사화를 제작 중인 스튜디오는 갑자기 [포카혼타스] 시대에 대한 사과를 이렇게 [늑대와 춤을]의 형식을 빌어 제스처를 취하게 된다. 좀 난데없는데, 인종적인 안배에 대해 픽사 같은 이웃 스튜디오와 함께 시대 속에서 고민하고 있다고 조금 표를 내는 거다. 물론 그게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좀 민망한데 실제 [겨울왕국 2]는 전반적으로 그런 식으로 민망한 작품이다. 힘과 인력을 더 밀어 넣은 곡들과 편곡은 그걸 아예 숨기지 못하고, 이렇게 3편도 안전하게 만들어도 되겠죠? 라며 허락을 받는 낮은 태도도 조금 우스개를 보는 기분이다. 마음대로 만드세요...

'영화보고감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티브 잡스]  (0) 2019.11.30
[겨울왕국 2]  (0) 2019.11.24
[우먼 인 할리우드]  (0) 2019.11.17
[성난 변호사]  (0) 2019.11.11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24. 09:12

만화 그리는 부부 팀 심우도의 작품 [우두커니]는 다음 웹툰에서 지난해 3월부터 올해 4월까지 연재했다. 즉 2018 가장 좋은 웹툰이 시작되었고, 2019 가장 좋은 웹툰이 마무리된 셈이다. 이 연재물은 올해 텀블벅을 통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발간되었다. 가장 믿음직한 부분은 세로 읽기로 내려가는 차분한 편집(원작이 그러하듯 칸의 기교가 최대한 배제되었다)과 굳이 권 나누기가 아닌 한 권으로 알차게 담은 구성이다. 

'아버지가 어느날 치매가 걸렸다'는 한 줄 명제로 시작하는 실제 내용을 시작부터 매듭까지의 여정의 연출을 통해 차분히 다루고 있다. 하지만 차분히라는 말의 어폐는 어찌할 수 없다. 신체와 정신이 하루가 다르게 쇠퇴하는 부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하나둘 붕괴를 시작하고, 그것은 결코 차분이라는 단어로 미화할 수 없는 격량과 여파를 야기한다. 가족이 나에게 준 헌신과 애정, 삶의 과정으로 쌓인 정성에 나는 얼마나 일원으로서 답변할 수 있고 그 솔직한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여기에 작품은 낙심과 포기의 부분까지도 다루고 있다. 그래도 이어진 삶과 그 삶을 부여해준 이에 대한 예의를 마지막까지 잊지 않으려 한다. 그에 대한 대답.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18. 10:41

웹진에서 글을 씁니다 / 별점은 이상한 제도죠 (링크 :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6882 )  

== ==== = ===

드린지오 「River」

여전히 브리티시 포크의 한국형 적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이번 음반은 묘하게도 (지금은 없어진) 통일호 열차의 차 간 사이의 적적함과 덜컹거림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반복하는 어쿠스틱 기타와 뚜렷한 줄기의 첼로는 서로 교차하며 열차 안에 탑승하기 전의 감기약 같은 최면을 만든다. 형언하기 힘든 애상이 던지는 안식 같은 휴면과 몽롱한 사이키델릭의 중간, 그렇게 보도자료 속의 열차는 덜컹덜컹하며 말 없는 화자를 싣고 간다. + 자주 이용하는 경부선 승객 이용자로서 통일호는 ‘사라진 열차’라는 의미에 가깝다는 의미의 첨언을 더 한다. ★★★☆

 

바비핀스 「하지 말래」

재간을 부리는 신스 사운드와 날렵하게 꼬아 의도적으로 달리 들리게 부르는 한국어 가사 등은 영락없이 2000년대 이전엔 대학가요제에서 큰 상 받았을, (반대로 2000년대 이후엔 그저 새삼스럽게 들릴) 장치이다. 공교롭게 이 글을 쓰기 이틀 전 ‘의도적인 키치’와 ‘잘 우러나오는 키치’ 같은 주제에 짧은 대화를 동료와 나눈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장기하와얼굴들의 전례 등이 떠오르긴 했다. 호방한 보컬 등엔 캠퍼스 팝/록의 기운을 의식적으로 재현하는 장치들이 있었다. + 그리고 오해를 풀자면 음반 전체에서 이런 의식적인 인상을 준 곡은 이 곡만이 유일했다. 음반의 첫 곡으로선 이런 전략이 유효했을지도. ★★☆
 

손무현 「Patriot」

왜 ‘애국‘이지? 라는 의문은 접기로 했다. 이문세와 이영훈 듀오가 「장군의 동상」(1989)을 만든 게 이미 지난 세기였다. 메시지와 의도는 당시에도 지금이나 추정일 뿐이니, 귀에 들어오는 것은 뚜렷한 도회적 감성의 재즈풍 무드음악이다. 좁은 국토에 말만 많은 이 나라에선 한때 ‘록 변절자’였지만, 지금은 윤상과 더불어 불로장생 음악인일 뿐인 그의 존재다. 마스터4의 동료인 조범진과 함께했고, 수록된 음악들은 근간의 시티팝 유행 일변과도 무관하지 않게 들린다. 감상의 기분에 있어서 그저 창밖 또렷하다가 흐려지는 하루의 일몰이 느껴진다. 한 음악인에 대한 여정의 비유가 아니라, 무르익었음의 또 다른 표현 같은... ★★☆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17. 20:42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관객층을 겨냥한 [여배우들의 티타임]과 확연히 톤이 다르다. 도입부부터 극 안에 들어가기까지의 여정 자체가 다르고, 하는 이야기도 차이가 있다. 영국과 미국이라는 국가가 영화라는 매체를 활용해 설명하는 방식의 차이일수도 있다.(워킹 타이틀에서 제작하는 작품들은 이 두 국가의 화법의 차이를 점차 없애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여배우들의 티타임]과 배우들이 헌신한 예술적 성취와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경배를 하는 의미가 확연하고, [우먼 인 할리우드]는 결코 쉽지 않을 전쟁을 어제도 오늘도 이어갈 사람들을 위한 응원이자 다음 세대의 위기에 대한 캠페인적 경고 메시지다.

이 경고를 위해 관객들의 눈길을 위해 소환된 이들은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토로하는 인물(샤론 스톤 등), 현재의 변화를 움직이게 하는 사람들(지나 데이비스, 리즈 위더스푼 등) 같은 유명인들이다. 그리고 관객을 흡입한 이 유명인에 이어 따라오는 긴 설득력을 하는 것은 통계와 수치다. 미국의 초기 영화산업이 여성 인력과 재능을 소화하고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활용하게 하다 어느순간 철저히 배제해 온 역사를 짚어보고, 그로 인한 위기와 미래를 근심하게 한다. 미래의 성장하는 '성별 구분 구분 없는' 어린 세대를 위한 전망, 여성 배제가 결국은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적 이슈 및 전반적인 불균형에 대한 이슈임을 설명하는데 긴 시간을 할애한다.

말미를 장식하는 것은 역시나 현 미국 대중문화의 공적인 트럼프의 존재 ㅎㅎ 그리고 현 시대의 변화의 일단을 보여주는 변화를 대표하는 '와인스타인 사태'의 예시들이 제시된다. 멈추고 속도가 지연되어서는 안 될 변화의 촉구, 윗동네와 천장의 벽을 향한 지속적인 두드림.

'영화보고감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왕국 2]  (0) 2019.11.24
[우먼 인 할리우드]  (0) 2019.11.17
[성난 변호사]  (0) 2019.11.11
[프리즌]  (0) 2019.11.10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11. 10:51

목소리와 캐릭터가 도드라지는 배우 이선균은 작품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새긴다. '돈 많은 쓰레기'를 추리 형식으로 응징하는 [성난 변호사]는 임원희와의 합도 좋거니와, 안재홍과 호흡을 맞춘 [임금님의 사건수첩] 같은 실패작과는 비교가 되는 면모를 보여준다. (모친이 모처럼 극장 나들이 가셨다가 '더럽게 재미없다'라고 후일담을 남긴 차태현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이 아마도 [임금님의 사건수첩]과 쌍벽을 이룰 이른바 퓨전사극계의 비극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여기에 마무리는 속편 또는 시리즈화를 꿈꾸게 하는 매듭을 보여주는데 이런 쾌활함도 좋다. 

그런데 작품은 배우 김고은은 표나는 공백의 존재로 만든다. 역량의 한계인 듯도 하고, 미스캐스팅이라고 생각하고, 젊고 창창한 시절 '서로 간에 애매한 관계'였다는 설정을 설계한 후진 시나리오 탓이 크다고 본다. 극 내내 개입은 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스며들지 못하는 한계를 연출과 시나리오는 애써 무시한 채 그저 진행한다. 이런 무책임 어떡하나...

+ 넷플리스에서 시청했다.

'영화보고감상정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먼 인 할리우드]  (0) 2019.11.17
[성난 변호사]  (0) 2019.11.11
[프리즌]  (0) 2019.11.10
[원라인]  (0) 2019.11.09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11. 11. 10:19

웹진에서 글을 씁니다 / 별점은 이상한 제도죠 (링크 :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6871 )  

== == ==== = ===

아무 「어두운 물은 검게」

신작 음반의 수록곡 모두가 강, 수중 생물의 부위, 섬이라는 모티브를 제목으로 끌고 와 전체가 물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다. 황인찬의 시 <실존하는 기쁨>의 구절 ‘어두운 물은’과 ‘검게’ 2개를 따와 강박적이고 창백한 앰비언트와 댄서블한 테크노를 배합해 시종일관 운동성을 만드는데 긴박하다. 황인찬이 만든 시 속 구절 ‘어두운 물은 출렁이는 금속 같다‘라는 대목 자체가 아무의 이번 음반을 정의하는 운명 같은 문장이라는 생각조차 들 정도. ★★★


신세하 「1000 (feat. 엄정화)」

신세하의 나긋한 톤에 듀오를 형성하는 엄정화의 목소리는 학창 시절부터 중년에 이른 지금까지 내 일상 배경 바깥에 (무)관심으로 (무)존재하던 그의 목소리를 새삼 재고하게 할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태연히 비눗방울 거품처럼 술술 뿜는 베이스라인, 시티 팝의 천연하고 분위기는 씩씩한 자기 정의를 느끼하지 않게 연출한다. 옛 시절을 생각하게 하는 킥과 단출한 각 파트가 어우러져 잘 들리지만, 단순하게만 들리지 않는 후반부의 여운은 왜 지금 시간을 ‘찢으시는’ 신세하의 존재와 역량을 실감하게 한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