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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신대륙 발견의 희열이 있던 대항해시대의 15세기가 지난 19세기 초반, 식민의 역사의 얼룩과 함께 흉흉한 기운을 안고 실종된 배형 선박이 기적처럼 귀환한다. 하지만 선체는 텅 비어 있고 몇몇 잔해와 선박에 탑승한 인원들이 남긴 흔적만으로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으니 이걸 동인도 회사의 보험 담당 직원인 내가 선박 곳곳을 누비며, 그것을 기반으로 모든 내막을 조사해야 한다. 나를 도와주는 것은 회중시계의 신비한 존재다. 사망자들의 유해 부근에 이 시계를 작동하면 사망 당시의 정황과 주변 정보에 대한 힌트를 주는 식으로 이 사건에 대한 총체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나는 이 조각난 정보를 취합해 일지를 한장한장 채워가며 진실에 보다 가까워져야 한다. 19세기라는 시대를 떠나 시공간을 초월하는 회중시계의 존재가..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8075 오월오일 「Echo」 류지호의 보컬과 코러스가 들려주는 건조한 여운은 새소년의 황소윤에게서 활기를 탈색시킨 것 같다는 인상을 줬다. 그저 건조하다는 감상으로 끝날 수 있을 이 곡에 동력을 얹는 것은 장태웅의 일렁이는 기타 톤과 곽지현이 수놓은 리듬 파트의 몫이다. 3인조 밴드가 형성하는 울적한 이 그루브는 명료하게 기재된 가사를 기나긴 읊조림처럼 전달한다. ★★★ 청실홍실 「Earth」 남녀의 인연을 일컫는 청실홍실이라는 표현이 두 남성 전자음악 듀오명으로 둔갑했는지에 대해선 살짝 의아한 감이 없지 않으나, 당장엔 「Sun」, 「Mercury」, 「Venus」로 이어지는 태양계 싱글 ..
심야의 다양한 군상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심야 식당] 같은 선례가 떠올랐다. 그렇지만 소시민들의 소박한 다짐을 휴머니즘의 색채로 답답하게 긍정하고 응원한다는 점에서 엔카 음악을 연상케 하는 심야 식당과는 구분이 가는 게 야쿠자에게 상납을 해야 하는 도심의 잉여 인생들과 범죄자(와 협박을 당한 희생자), 비일비재한 가정 폭력을 겪은 등장인물, 초라한 꿈의 실현을 갈구하는 아이돌 산업 종사자, 그 주변부의 인생들, 로또에 당첨된 청년 그리고 그의 당첨금을 노리는 어둠의 손길, 떡상을 노리는 유튜버, 매번 경쟁에 도태되는 한물간 스탠딩 코미디언 듀오, 모바일 게임 중독으로 인해 정신이 긁힌 캐릭터 등 제법 다양한 이들의 사연을 흝어본다. 안도가 되는 점이라면 제법 엉켜있는 이런 군상의 사연이 그래도 종내엔 나..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8069 김반장과생기복덕 「들판의 시대」 드럼을 통한 가락과 생기복덕(生氣福德)이라는 표현까지, 음악인 김반장이 꾸준히 천착하던 정서는 새삼 되짚어본 그의 경력에서 아주 벌어지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그가 레게를 향해 꾸준히 들려준 음악의 자리를 대신해 차지한 것은 록인 모양이다. 김세형의 덥과 기타는 아련한 무드를 형성하다 점차 고조하는 포스트록으로 전이하는데, 중후반에 이르면 바싹하게 마른 논밭을 지피는 불길처럼 변모한다. 지금까지 그의 음악에서 듣지 못했던 흐름을 발견한 기분. ★★★1/2 키스누 「A Dream Of Wings」 레딧 상으론 송은석의 원맨밴드에 가깝게 보인다. 그의 낭랑..
[코다]는 제37회 선댄스 영화제에서의 반향을 시작으로 지난 오스카 작품상 수상에 이른 작품이다. 수상 결과에 대해서 매번 그렇듯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음악과 가족이라는 휴머니즘 있는 테마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나라 관객에겐 익숙한 분위기의 작품이다.(가령 [빌리 엘리엇]의 전례를 생각한다면 비슷한 톤의 온기를 확인할 수 있으리라.) 애초에 애플 TV를 통해 론칭한 작품인데, 최근 넷플릭스에 제공되어 이번 기회에 볼 수 있었다. 작품이 아닌게 아니라 극 중에 아이폰이 나오는데, 평소에도 장애인을 위한 UI/UX에 각별히 신경을 쓴다고 자처했던 회사의 라인업다운 분위기의 작품이라 칭할 수 있을지도. 주연 배우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 출연진 모두 실제 청각장애인이고 그들의 일상과 세상 속 불화와 충돌..
또 변호사다. 공중파든 크고 작은 숱한 OTT 및 케이블 채널 드라마에 나오는 직업군 변호사이다. 나를 비롯해 우리는 이미 [데어 데블]을 통해 히어로물 안의 변호사라는 직업군을 마주친 적이 있다. 맷 머독은 그렇게 [스파이더맨 : 노웨이 홈]에서의 깜짝 등장을 시작으로 시리즈 자체가 넷플릭스 => 디즈니 플러스로의 이관을 거쳤고, 자연스럽게 [변호사 쉬헐크] 에서의 등장과 후속 시리즈를 예고하고 있다. 여러 불만이 많겠으나 히어로물의 지형도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가지고 있는 절반 가량의 위상은 분명 부인할 수 없겠다. 완다 막시모프가 왜 [닥터 스트레인지 2]에서 모성 몬스터가 되었는지 비시청자들이 모르는 사이에 타노스에 이어 새로운 PHASE의 악역 보스가 누가 됐는지 등의 문제는 이 서비스의 주된 시..
최근 어떤 분의 팟캐스트를 챙겨 듣기 시작했는데 마침 [날씨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더라. 그렇지 않아도 올해 여름 여러 곳에서 비로 인해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는데, [날씨의 아이]가 그 비로 인한 예상치 못한 수난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이 작품 [표류단지]가 그치지 않는 비와 그로 인해 범람한 대양을 그저 떠다니는 주택 단지를 다루고 있어 심정적으로는 맞아떨어졌다. 물로 가득찬 세상을 두둥실 떠다니는 허름한 단지 건물, 그 건물을 배 같이 여기며 정상적인 세상으로의 경로를 모색하는 '소년소녀 표루기'라는 점에서 자주 쓰는 표현인 ' boy meet girl의 원칙을 나름 준수하거니와 사적으론 둔촌 주공의 기억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소년소녀의 모험과 그에 따른 귀결은 사실 실제로 벌..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8063 국악전자유랑단 「요즘 양반」 휘청거리는 해금을 들으며 어느새인가 일렉트로닉 장르는 말할 나위 없고 어느새인가 포스트록 등 씬의 다양한 갈래만큼이나 여기저기에서 역할을 수행중인 국악기의 존재를 이번에도 실감했다. 물론 본작에선 다양한 악기의 활용 중 메시지를 품어 발산하는 창(唱)의 존재가 중요할 것이다. 권단의 후련하고도 꼬인 심사를 반영한 목소리를 받쳐주는 전자음악의 비중은 DJ플래시핑거와 주붐을 주축으로 활동중인 뉴튼이 완성했다. 고조시키다가 풀리다가,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는 이 거미줄 타래 같은 창작물은 쾌락과 긴장이 공존하는 혼성 장르 작품으로서의 매력을 선사한다.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