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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세 남자들은 선희라는 이름의 회전문을 통과한다. 같은 문, 같은 손잡이를 잡으며 비슷한 인상과 규정의 문장을 말하지만 그들은 뱅글뱅글 돌 뿐, 한 사람의 안팎을 잡지 못한 채 미끄러져 갈 뿐이다. 유연하게 미끄러져 가는 선희의 발걸음이 해원의 발걸음처럼 비극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 좋았고, 몸 움츠리게 만드는 추위의 기운 보다 낙엽이 수북한 늦가을의 풍경이라 좋았다.
북촌/서촌하하하옥희의 영화아차산/남한산성소주/막걸리밤과 낮/베토벤 7악장담배꽁초꿈/현실이자벨 위페르/제인 버킨 홍상수/홍상수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홍상수 영화의 주된 문체는 사실주의니 엄정한 리얼리티 운운이 아니라 환상성이 아닐까 싶다. 어디까지가 내가 보는 현실인가 어디까지가 내가 문득 잠이 들어 눈을 뜨게 만든 꿈의 대목인가. 그 흐물흐물한 경계, 영화 속 스님(김용옥 분)과의 선문답따나 의뭉스러운 답변만 받을 모를 일들이다. 영화라는 이야기 꾸미기 행위를 글쓰기에서 빌린 것이나 반복되는 대사(와 변주), 반복되는 상황(과 변주) 등은 영락없는 '요새' 홍상수 영화다. 1일차 시네토크 진행을 맡은 백은하의 말을 빌리자면, 모항의 도로 위에 작은 우산을 펴들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저 이방인에게서 어쩌면 홍상수 영화 최초의 페미니즘적인 광경을 목도하는 것일지도.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3453 -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홍상수는 뉴 밀레니엄이 들어선 2000년에 때아닌 흑백영화 [오! 수정]을 만들었다. 만취한 술자리와 남산 케이블카가 흔들거리는 서울의 풍경이 흑백 화면 안에서 유난히 더 시리게 보였다. 그럼에도 홍상수의 영화에서 이때부터 사람의 온기가 발견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데뷔작 [우물에 빠진 날]엔 ‘살인’이 있었고, 두번째 작품 [강원도의 힘]에선 허약한 체구의 여자가 온 몸을 구겨내며 발산하는 쇳소리 고함이 있었다. 적어도 [오! 수정]을 보고선 웃을 수는 있었다. 제법 귀엽기까지 한 장면들도 군데군데 있었다. 물론 홍상수는 처녀성을 향해 달음박질하는 두 수컷의 허위를 발가벗..
광화문 스폰지하우스에서 홍상수 영화를 보자니 '난 영화광에다 나름 홍상수 월드 팬이라서 좀 표를 내야겠어'라는 기운을 뿜은 일군의 몇몇 여성들은 대목대목마다 크게 웃더라. 일단 그 분위기가 같잖아서 좀 웃겼다. 다음엔 홍상수 영화는 다시 일반 상영관 가서 봐야겠다. 여기 분위기 왜 이러셔. 홍상수 영화는 초중반기엔 일종의 정체불명성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한 해에 2편까지도 볼 수 있게 될 정도로 그의 세계는 익숙하게 세상에 대면할 수 있었다. 그 덕분인지 영화 초반엔 그 익숙함에 다소 지치는 기분이 들었다. 가벼운 질식의 기운...도 느꼈다. 보다가 다소 숨 막혀 지칠 듯한 기분. 그런데 결국 변주의 실력은 역시나, 비슷한 시간대와 비슷한 이야기의 화소에 변주가 가해진다. 얇은 한지같은 시간대는 중첩되..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짧은 4편 안에서 홍상수 영화들의 익숙한 구조는 스스로를 품는다. 먹물 언사를 뱉는 중년 남자는 젊은 여자애게게 집착하고, 젊은 남자애는 여자애와의 잠자리를 위해 영원한 사랑을 뱉고 어처구니없이 기다린다. 소주와 막걸리잔이 꼴딱거리며 넘어가고 서로간의 경로는 겹치다 갈라지고 겉과 속이 다른 언어는 찰싹 붙지 못한 채 헐렁헐렁하게 되도 않을 앞날을 기약한다. 그럴거라는 것을 아는데 홍상수의 세계가 그렇다는 것을 아는데 그럼에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지릿한 몇몇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옥희의 영화 감독 홍상수 (2010 / 한국) 출연 이선균,정유미,문성근 상세보기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 무던하게 박히는 글씨체가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남자들은 질척거리고, 이 식자들은 명분 없는 발끈함을 들이댄다. 여자들은 미끄러지면서도 이내 발작적으로 변한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둘은 오손도손 서로간의 또아리를 틀며 연사를 내뱉는다. 시를 낭독한다.(시를 쓴다는 행위의 중요함은 이창동의 [시]로 이어진다. 흥미로운 2010년이다.) 예의 홍상수 영화답게 인물들의 행동은 반복/변주되고(담치기), 문득 찾아온 엉뚱한 꿈은 예지도 아닌 것이, 현실의 연장도 아닌 것이 미묘하게 남는다. 기억들은 조합되지만 그 균열의 뒤틀림이 중요한게 아니라 갑자기 주어진 경구로 '답지않은' 삶의 교훈을 얹어준다. "좋은 것만 봐라." 그리고 건배와 함께 잠시간의 긍정, 인생이라는 헛꿈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