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아이폰4를 둘러싼 생각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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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4를 둘러싼 생각들.

trex 2010. 6. 9. 10:24



누군가는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고 한다. 사실 그 정도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디자인은 기존에 유출되었던 디자인과 거의 같았으며, 워낙 수많은 사람들이 점치던 성능의 예상치라 놀랄 일은 많지 않았다. 오히려 화상 통화가 되리라던 기대치는 절반만 들어맞았다. 와이파이 환경 아래에서 제한적인 조건인 '아이폰끼리만' 화상통화만 된다고 한다.(이걸 그들은 '페이스타임이라고 칭했다) 아직 잡스와 애플은 통신사들과의 협상(또는 싸움)이 남은 모양인데, 아이폰4는 6월에 다소 급하게 인사를 건넨 셈인가.


그럼에도 여전히 인상적인 순간이 있다. 잡스는 예의 키노트를 잘하는 사람이고 - '와이파이 문제'로 인한 진행 착오들에 대해 어떤 경제지가 '개망신'이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 행사 후 올라온 애플 사이트의 아이폰4 소개 영상은 유달리 '가족친화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가장은 아이와 부인에게 인사를 하고 뭉클해지고, 노부부는 서로 기대고 연인들은 눈망울을 빛내며 서로에게 인사하고... 아이패드 당시에도 편안한 거실을 강조하던 분위기의 연장인 듯 하다. 기실 아이폰4은 3축 자이로스코프 탑재를 통한 게이밍 기능 강화 등 엔터테인먼트 기기로써 더욱 강해졌다. 그럼에도 이런 잔잔한 영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 한다. 좀더 요란스러워도 될 법한데 말이다.


디자인은 잡스가 최고라고 부추겼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다른 듯 하다. 내 개인적으로는 디자인, 그의 키노트 등 모든 것이 어우러져 송두리채 마음을 흔들던 순간은 아이팟 나노 발표 당시였던 듯 하다. 무서운 호소력이었고 소유욕이 뇌를 뚫고 나올 지경이었다. 지금은 위력이 좀 덜하다. 아이팟이 활개치던 시대와 스마트폰의 격전 - 나관중의 [삼국지]마저 팽개칠 정도로 흥미진진한 - 지대인 요즘의 상황이 상당히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유출이든 바이럴 마케팅이든 사전 정보들이 베일에서 손쉽게 정체를 드러내고, 유저들은 더욱 정교한 루머샷을 만들고 유포한다. 뭐가 나올지 머리 속에 미리 그려진 상태인지라 정작 발표 후엔 루머 당시의 스펙과 정식 발표시의 스펙을 비교하기에 이른다.


아이폰4의 위치도 혁신이나 혁명보다는 자리매김, 그 확고함에 더 가까운 듯 하다. 4G도 아닌 HD도 아닌 4라는 간단한 넘버링은 이들이 전투태세를 정비하고 심기일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애플이 기존에 고수한 전략과 철학 자체를 강화할 뿐 그 자체를 또 한번 뛰어넘은 순간은 아닌 듯 하다. 물론 그 강화와 심기일전이 여전히, 그리고 지독히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 혁명은 좀더 기다려야 겠지만.


같은 날 갤럭시S의 발표가 있었다. 이미 작년말부터 이 격전장엔 상반된 가치관들의 충돌이 잦았는데, 하드웨어 VS 소프트웨어 / 운영체제 VS 운영체제 / 기업철학 VS 기업철학 / 오픈정책 VS 폐쇄정책 등등의 이 풍경의 한축엔 항상 애플이 자리잡고 있었다. 가령 아이폰 OS VS 안드로이드 / 애플 VS 삼성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 거창한 대결 구도는 좀더 미세한 테마로 좁혀지고 있는 양상이다. 가령 어제 같은 경우는 레티나 디스플레이 VS 슈퍼아몰레드 이런 식으로... 하드웨어와 스펙의 차이는 좁혀지되 유저의 취향과 운영철학에 대한 지지가 좁혀지는 방향도 예상할 수 있다. 당분간은 그 한 축이 문제적인 이름인 애플 또는 아이폰이 차지할 공산은 크다. 아이폰4는 연말까지 한동안 숱한 출시모델들과 비교대상이 될 운명이다.


애플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왕좌를 운운할 수 있을까. 애플과 구글의 불편한 관계는 언제까지 지속이 될까. 그 끝은 파국일까, 아니면 최종 보스를 물리치기 위한 합종연횡의 한 틀로 역사 속에 기억이 될까. 오픈소스 정책은 혁신이다 VS 아니다라는 논쟁은 이제 불을 지폈는데 최종적으로 시장은 어떤 답을 낼까? 수많은 질문이 오간다. 바지 주머니에 들어갈 조그만 포터블 기기 하나가 출시될 때마다 두근거리며 지켜보며 모두가 얼리어답터 잡지 인턴 기자가 되는 셈이다. 신기한 시대다.


안전한 정답 중의 하나는 이제 당신은 지지하는 OS 철학과 사용 용이한 스펙을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라는 점. 이것이 마케팅과 인문학이 교합하여 감성을 흔들고, 힙합 BGM에 실린 상품 CF가 나오는 스마트폰 시대의 즐거움 중 하나다. 기계에 종속된 것 뿐이라는 자기연민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도심을 누비는 멋부림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환멸이 뒤엉키지만, 우리들은 또 덧글에 비분강개하며 트위터에 멘션을 달고 꼬리를 오늘도 내일도 연장한다. 그러면서 세상인 또 한발짝 변하더라. 긍정적이라는 법은 꼭 없지만.

 

+ 이 글을 쓰는 중 KT의 발표가 업데이트되었다.
[언론을 통해 발표된 것처럼 7월에 출시되는 아이폰4에서도 최고의 만족을 제공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하겠으며, 기존 아이폰 사용 고객을 위한 할부잔액 승계 프로그램 등도 계획중에 있습니다]
(현재 이 공지 문구는 삭제된 상태다)


아이폰을 둘러싼 제법 달라진 행보와 와이파이 주력 홍보, 페이스북 이슈 등 KT는 인상적인 모습을 최근 보이고 있다.(물론 이상한 TV CF들을 완전히 잊게 할 정도는 아니지만) 4 발매를 전후로 고객센터 대응도 원활히 잘 되길 기원한다. OS 무료 업데이트도 AS의 정점이라지만, 그건 KT 머리 쓰다듬어줄 일은 아니잖나.


2010/05/31 - [생각하고뭐라칸다/시사/매체/게임등등] - 아이폰 악세사리 사후 처리 후일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