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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저작권에 대한 시력 교정 본문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blog/archives/15895
“그러니까 [88만원 세대]하고 장기하를 묶어서 갈 때 꼭 내 얘기가 나와요. 자기 논고를 세우려면, 글을 쓰려면 뭐 필요할 거 아니에요. 인터뷰 할 때 ‘이런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것도 싫었거든요. 나를 되게 희화화시켜서 무슨 골방 속에 처박혀서, 사실 맞긴 하지만, 세상과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둥 이런 말도 안 되는…“
루저 세대의 대변자라기 보다는 청계천마냥 콸콸대는 세상이라는 이름의 배경에서 지속적인 노래꾼이 되고자 했던 이진원. 그의 사후, 잠시간 세상은 부글댔다. 생전 그의 음악이 싸이월드 BGM으로 제법 판매가 되었음에도, 디지털 음원 제공업체는 그에 따른 권리료를 ‘도토리’(서비스 아이템 구매가 가능한 사이버머니 단위)로 지급한 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서비스 제공업체인 ‘싸이뮤직’(SK커뮤니케이션즈)은 음원 권리 대행사인 ‘뮤직시티’를 통해 사이버머니가 아닌 정당한 단위의 음원 권리료를 지급해왔다고 해명하였다. 사태(?)는 이내 진화되었지만, 이 해프닝은 ‘저작권’을 둘러싼 새삼스러운 시각의 재고를 우리 – 아니 적어도 나에게 요구하게 하였다. 저작권은 창작자, 저작권자, 컨텐츠 유통업자, 권리 대행자, 소비자 등을 걸친 권리와 의무의 힘이자 족쇄이다. 늦은 셈이지만 나에겐 공부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단순히 뮤지션 이진원에게 생전에 정당한 권리료가 지급되었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창작자로서 그가 받아야 할 그리고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컨텐츠 유통업자들이 컨텐츠를 유통할 때의 가격 책정과 유통 방법론의 문제는 없었던 것일까, 소비자는 창작자의 컨텐츠를 개인의 영역에서 얼마나 가공할 수 있는 것일까 등…
이런 고백을 새삼 뱉는 것은 그동안 내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의 감각이 거의 희미했던 탓이다. CD를 구매하고, 비닐의 속살을 벗기는 쾌락의 감각과 부클릿을 펼쳐보는 자기만족감과 ‘뮤지션에 대한 예우’를 등치시킨 탓이 크다. 그것이 창작이라는 이름의 보루를 사수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여긴 덕에, P2P 서비스와 포털의 스트리밍/음원 서비스라는 영역에 대한 괄시로 이어졌고 저작권에 대한 무지를 낳은 듯 했다. 이미 세상이 험난하게(?) 바뀌어 CD를 구매해도 ‘포털 음원 제공업체’의 한달 무료 정액권이 부클릿 속 부록 격으로 자리잡은지 한참이 되었다. 말을 바꾸자면 ‘내게 소중한’ 뮤지션의 음반은 CD로 구매하고, ‘내 취향 2군들’의 음반은 부록으로 제공된 무료 정액권으로 ‘이번 참에’ 구매하게 되는 셈이었다.
여기서 예를 들어보자. 곡을 한곡에 500원에 구매한다고 쳤을 때, 그중 35%는 기획사 및 음반사에게, 57.5%는 서비스 제공업체에게 고스란히 떨어진다고 한다. 남은 퍼센티지 중 5%는 저작권자(작곡가), 2.5%는 실연권자(가수)의 몫이라고 한다. 곡당 175원 정도 지급되는 35% 중 얼마간의 퍼센티지는 계약 관계에 따라 가수에 대한 지급량이 달라진다. 언뜻 봐도 ‘제2의 달빛요정’들이 힘들어 보이는 현실이다. 500원을 힘겹게 쪼개는 예시를 들어서 그렇지, 음원 포털의 ‘월 정액제’와 ‘1만원 이내 ***곡 다운로드’ 같은 회원유치용 상품들이 얼마나 창작자들의 힘을 빼놓을지는 감히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내 CD 구매의 만족감 이면엔 더욱 두터운 다른 쪽 사정들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음반 구매를 제외한 ‘관성적인’ 다른 영역의 다운로드 행위가 반성 없이 이뤄지고 있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 시점에서 나의 ‘저작권에 대한 교정 시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일찍 시력 교정을 할 수 있었을 기회가 있긴 했었다. 지난 10월 17일 [열린 인터넷 주인 찾기 시즌.2 : 저작권 컨퍼런스]가 연세대 모처에서 개최된 적이 있었다. 친히 초대 메시지까지 보내주신 온라인 지인분이 있었음에도 이 자리를 빌어, 청강하지 못한 게으름을 공개적으로 반성해야겠다. 사실 이번 컨퍼런스가 담고 있는 이야기의 폭이 다소 넓은 탓에 창작자 위주의 권익보다는 소비자, 창작자들이 동시에 행복할 수 있는 저작권에 대한 시장 구조 개선과 권익 보호의 이야기들이 챕터 별로 오간 것으로 알고 있다.
다량의 정보들이 많은 탓에 지면 사정상(?) 난폭하게 정리를 하자면, 현재 저작권을 둘러싼 함의와 법.제도들이 창작자와 저작자를 위한 보호보다는 포털을 위시한 매체와 유통업자들에 대한 권리에 가깝다는 점. / 작게는 문화를 다루는 씬과 게토, 크게는 한 국가의 문화산업의 균형감각을 위해 존재해야 할 저작권법이 산업적 측면에서만 팽배해지고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우려의 목소리. / 저작자 사후 50년으로 되어있는 저작권 보호기간이 한미 FTA 이후 70년으로 늘어난다는 가능성과 이에 따른 제2의 창작 권한 제약 가능성. / 저작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원 목적과 더불어 대중 소비자로 하여금 공정한 이용과 유통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또 하나의 목적도 필요함. / 포털의 개인 쓰레드 규제와 로펌의 수익을 위해 저작권의 본래 가치가 희석된 것은 아닌가하는 진단. /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저작 컨텐츠 유통 모델이 필요함 등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보기에 따라선 언뜻 과격한 논조로 보이는 이야기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창작자와 소비자에 있어 현재의 저작권법과 수익 배분구조들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동감되는 대목이었다.
사실 창작에 대한 시각과 컨텐츠 유통에 대한 입장은 저작권자마다의 입장 차이도 첨예하게 다른 것이라 – “요새 음반 누가 사요. 30초 내로 훅 가게 해야죠.”, “사주시면 고맙구요… 안 사시면 할 수 없구요…”, “돈 안 내고 구매한 저 ***, 죽어라.” – 정답을 제시하기는 어려운 이야기다. 다만 리믹스와 혼용 패러디 등으로 ‘문화 쾌락’을 발산하는 대중 소비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하는 일련의 사건들, 열패감에 허덕이는 일부 뮤지션들과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 수익구조 개선 문제를 논의하는 뮤지션들간의 공존은 ‘저작권 생태계’ 안의 개선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게 한다. 이 자리에 이진원의 한마디를 한번 더 인용함은 무리한 태도일려나. 이 무리한 태도에 대한 반성은 오가는 현안들에 대한 시력 교정과 자습으로 갚고자 한다. CD 안의 부클릿 내음을 맡는 희열만큼 달라지는 환경에 대한 각성 또한 내겐 뚜렷한 현실이리라.
“그래서 조금만 더 하면, 음악을 내가 지금 10년 했으니까, ‘10년만 더 하면 어느 정도 인정도 좀 받고, 돈도 한 달에 150만원, 200만원 벌어서 남들 평균소득에는 미칠 것이다’라는 그런 기대감이 있는 거죠.”
+ 음악취향Y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인터뷰 : http://cafe.naver.com/musicy/12639
+ [인터넷 주인 찾기 시즌.2 : 저작권 컨퍼런스] 발제 자료 : http://ournet.kr/xe/blog/7196
==== 이 글의 동인을 마련해준 히치하이커님의 코멘트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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