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2017년의 상반기 국내 음반들, 10장 본문

음악듣고문장나옴

2017년의 상반기 국내 음반들, 10장

trex 2017. 7. 10. 21:00

- 2016년 12월 1일 ~ 2017년 05월 31일 발매작

- EP 및 정규반 무관 / 순위 무관

- 문장 재활용이 상당수 있습니다.




신승은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허수아비레코드 / 미러볼레코드 | 2016년 12월 발매


또 한 명의 포크 스타의 탄생일까요. 중성적인 톤의 목소리, 소소하지만 솔직하다는 세간의 평을 받을법한 가사, 단출한 구성에도 사람 들썩이게 할 줄 아는 효과적인 편곡 등 쉽게 넘기려다 붙잡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 (여기에 공연을 찾아가면 당신을 최소 몇 번 웃게 할 싱어 본인의 강한 캐릭터가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계 언저리에 발을 디뎠다가 머리 싸매는 젊은 예술계 노동자의 번민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버릇처럼 들이키는 술잔으로 유발되는 가사 안의 진실과 방어막이 내재하고 있다. 마포구를 자주 오갈지도 모를 당신의 유효한 배경음악 중 하나.




3호선버터플라이 『Divided By Zero』 

오름엔터 / 소니뮤직코리아 | 2017년 01월 발매


밴드는 주 멤버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주변의 우려들을 가볍게 종식했다. 포스트록의 대지 위에 전자음의 두꺼운 외벽을 형성한 듯한 첫 싱글에서부터 댄서블한 넘버들의 당혹스러우면서도 유쾌한 돌진, 그러다 어느샌가 차분히 가라앉은 안식에까지 이르는 비대칭 데칼코마니(형용모순!)의 여정은 2017년 첫 명작의 등장을 목격하게 한다. 일렉트로니카와 뉴웨이브 신스팝 성향이 도드라졌지만, 곳곳에서 3호선의 공기와 역동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빛과소음 『Irregular』 

일렉트로뮤즈 / 워너뮤직코리아 | 2017년 01월 발매


번쩍이는 등장과 지글지글하는 일렉음의 일렁이는 파형, 밴드명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그렇다고 노이즈의 봉우리나 바닥을 찍기보다는, 드론 사운드는 서프록의 경쾌한 기운과 사이키델릭한 터치를 오가며 젊은 밴드의 태동에 설렘을 배가시킨다. 다섯 곡을 재청하다 보면 묘하게 새겨지는 긍정적인 기운 덕에 소음 보다 ‘빛’에 좀 더 점을 찍게 된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 

자체제작 / KT&G 상상마당 | 2017년 02월 발매


도입은 소탈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위안을 주는 목소리로 문을 연다. 이러던 ‘안다영밴드’의 새 이름에 대한 신고식은 더욱 깊어지더니 포스트록을 닮아가고, 밴드 체제의 음악은 공간을 좌우로 아래위로 확장하며 우리를 기울어지게 하다가 이내 눕힌다. 점점 침묵을 닮아가는 구성은 검은 바탕과 하얀 점들이 빼곡히 박힌 어떤 상상력의 공간으로 소환한다. 스칼렛 요한슨의 [언더 더 스킨]의 ‘그 방’을 닮은, 그러나 잔혹하지 않은 검은 방. 꼭 총천연색으로 규정되지 않아도 될 청춘이라는 서정적인 단어의 검은 방. 




신해경 『나의 가역반응』 

영기획 | 2017년 02월 발매


음반 제목은 당연히 작가 이상의 시(詩) 제목인 [異常한 可逆反應]에서 따온 것이다. 이상의 본명은 아시다시피 김해경인데, 이 공교로운 동명이인의 대목은 의도적인 것일까. 공교롭게 첫 곡은 「권태」, 이상에게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신해경이 앞으로 「종생기」같은 제목으로 곡을 더 낸다면 거의 확신의 수준일 듯하다) 기타 노이즈의 잔영이 유구하게 흐르는 가운데 부유물처럼 떠 있는 감정의 일면들이 애상을 배가시킨다. 어떤 방향을 추구한 음악인지 알 듯하다. 창가에 촉촉하게 더덕더덕 달라붙은 것은 사운드의 조각들인가요 미련인가요. 노래들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애상은 침대 위 뒹굴며 밤을 헤며 설쳐댄 ‘이불 발차기 달인’ 시절의 기억을 건드린다. 엉뚱하지만 9와숫자들의 첫 음반에 실렸던 가사들의 공손함(과 징그러움)도 더불어 떠올랐다. 더 엉뚱하지만 난 이런 시도들에서 어떤 야함을 느낀다.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 

오름엔터 / 미러볼레코드 | 2017년 03월 발매


밴드가 해산한 뒤, 짐작건대 도재명은 적지 않은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로로스는 좋은 밴드였고, 그 자신이 밴드의 여러 일면을 조성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가진 인물이었던 탓이다. 돌아온 그가 들려주는 음악들을 들으면 그가 영화나 영상물들을 위해 작업하는 작업이 영상 안에서 어떻게 다시 들려질까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 로로스가 대뇌피질로 전달되다 부식되는 꿈의 영역이나 대기권 바깥의 사정을 헤아렸다면, 그의 개인 작업들은 보다 이야기가 선명하거나 익숙한 감정의 공감대를 건드린다는 인상이 강했다. 문학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조탁 된 언어들이 가사로 쓰였고, 주변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채집해온 듯이 연출한 나래이션의 방식은 인상적이다. 뮤직비디오 작업이 이런 그의 접근법을 느끼하거나 과욕으로 보이지 않게 진지하고 매끄럽게 한 공도 적지 않은 듯하다. 아무튼 음반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쏟은 정성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음반이다. 곳곳에 박힌 교양적인 가사와 적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 사려있는 연주들.




티에프오 『ㅂㅂ』 

그랙타니 / 케이티뮤직 | 2017년 03월 발매


음반명부터 이미 친절함과는 담을 쌓았다. 바닥에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샅샅이 흩어진 비트들이 제 마음으로 조합되고, 때론 똬리 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듯하다. 묵직하고 퀴퀴한 공기 안에서 조소의 기운을 품기는 래핑이 오가고, 구체적인 심상으로 잡으려 해도 제목과 아트워크의 단서들은 추상적인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근간의 한국 힙합의 움직임들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나 같은 사람의 귀를 잡는 부분이 있었다. 음, 조금 어긋나있다는 점만으로 쉽게 혹한걸까?




로다운30 『B』 

붕가붕가레코드 / 미러볼레코드 | 2017년 03월 발매




카프카 『Asura』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웨스트브릿지 | 2017년 03월 발매


이들이 수년간 트립합으로 지은 구조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인더스트리얼 중장비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팝과 록의 교합을 기조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덧씌우는 것을 추구해 온 카프카는 네스티요나와 미니스트리(ministry)의 만남을 주선하는 듯한 태도를 이번에 더욱 뚜렷하게 내세웠다. 그 결과물은 마치 나인 인치 네일즈(nine inch nails)가 『Broken』(1992)와 싱글 「Burn」(1994) 등의 곡으로 지옥의 ‘딴스홀’을 달구던 당시 질감의 향수를 자극한다.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내는 골조들을 무진장 깨부수는 강철 사운드의 질감과 그 안의 아련함을 발휘하는 팝의 감각기관들... 이것이 매직스트로베리의 그 카프카가 만든 결과물임을 상기해도 다소 낯설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 신작의 음반 제목은 당연히 영화감독 김성수의 근작을 상기하게 한다. 물론 난 김성수의 결과물보다 이쪽을 훨씬 긍정한다. 이쪽의 아수리언이 되겠다.




분홍7 『빨강보라의 근원』 

칠리뮤직코리아 | 2017년 05월 발매


상반기 결산이 5월 31일까지라고 치고, 하반기 결산이 11월 30일까지라고 친다면 5월 말과 11월 말에 발매되는 음반들은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5월 29일 세상에 갑자기 등장한 분홍7의 싱글과 음반은 결산 목록을 다시 손보게 할 만치 매력적이다. 개러지 록의 기조에 각인을 새기는 리프의 아이디어에 사이키델릭을 지향하는 혼미한 콤보는 좀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모던풍의 애상과 펑크 폭도를 오가는 까랑까랑한 보컬과 응집력 있는 3인 파트의 단합력은 자연히 라이브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EP이기 때문에 이들이 보유한 ‘근원’의 정체는 아직 노출도 안된 듯하다. 더욱 까발려 주시길 바란다.



+ 그리고 이 10장에 올해 5월 신작을 낸 러브엑스스테레오의 『37A』를 보탠다. 이 신작의 물리음반 발매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