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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김혼비 [아무튼, 술] 본문
축구에 이어 술이다. 둘 다 여전히 관심이 없는 분야이며, 음유한 적이 없는 바깥 취향의 주제다. 예비대학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발휘한 학교 밴드의 노래를 듣다 검은 토사물을 분출하게 한 맥주도, 별반 마땅치도 않는 애교심을 강요한 과내 축구 시간에 마신 쓰레기 같은 막걸리의 뒤끝도, 요즘의 술자리에서도 술이란 것은 그 자체로 별로인 존재였다.
그래도 이번에도 구매해서 읽었다. 김혼비의 책을 사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책에서 좀 더 명확해졌다. 글을 잘 쓴다. 술을 모르니 술자리엔 비유를 못하겠지만, 맨밥과 냉수 하나 있는 식탁 위에서도 젓가락이 자주 가는 김치를 집어서 씹는데 그 맛이 그럴싸하게 남는 식사와 흡사하다. 잘 쓴다. 잘 쓰니 자신이 ‘배추’라고 자칭하는 학창 시절의 그의 일화에 부담스러운 가식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고 흔쾌히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웬걸 오늘만큼은 늦게 귀가해도 될 좋은 술자리에서 남의 연애사 초입의 끄트머리까지 잘 듣고 가는 기분을 느끼는 게 아닌가 한다.
그리고 여전히 권말에 여전히 그의 축구 이야기 책에 세상살이를 소심하고 경계하게 만드는 육시럴놈들의 남자 이야기들이 있다. 술맛 물맛 밥맛 떨어지게 하는 이 못난 놈들이 조성한 세상사 안에서 즐거운 이들이 즐겁게 가질 술자리의 온전한 즐거움만은 응원하게끔 한다. 모두 다는 아니고 일부는. 그 정도는 괜찮다. 괜찮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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