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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뱀(박병장님)은 이회창 뽑았지 말입니다?" 본문

생각하고뭐라칸다/일기에가까운이야기

"박뱀(박병장님)은 이회창 뽑았지 말입니다?"

trex 2009. 8. 19. 09:17
그렇게 부재자 투표장소 앞에서 당시 전라도 출신 후임병은 물었다. 90년대말을 살아가는 20대에게도 여전히 심상의 지역감정선이 골 깊게 가르던 모양이다.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니 난 김대중 뽑았는데?"

아들의 병역 비리 이런 문제를 떠나서 이회창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민정당의 정신적 핏줄을 이어받은 신한국당에 표를 줄 이유가 없었다. 입대 이전 선배들에게 '학습'된 것들은 전무했고, 이념과 사회는 나를 여전히 누르는 불가해하고 묵직한 주제였다.

김대중을 선택한 원동의 근원은 지금 되돌아봤을 때 잘 모르겠다. 격동의 현대사를 헤쳐나온 이에 대한 예우라고 보기엔 나는 아는게 없었다. 아무튼 결과적으로 몇번은 후회했고 몇번은 자랑스러워했다. 끝내 등돌리게 만들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노무현을 이어서 선택한 것도 사실 김대중을 택했던 내 투표 양상의 반복형이었을 것이다..라고 지금은 되뇌인다. 노무현을 택한 것을 훗날에 자랑스러워하진 않겠지만, 김대중을 택한 것을 앞으로도 자랑스러워할 것은 명확하다.

며칠간은 그 자랑스러움을 접고 나를 둘러싼 어떤 시대가 '그야말로' 산산조각 났으며, 다시는 회복 되지 못할 것임을 섬뜩하게 체감할 것이다. 살아있는 자들이 감당해야 할 무시무시한 죄값인가 보다.

나와 몇몇 우리들은 어제 첫 대통령을 그렇게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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