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삼성. 본문

국민(초등 아님)학교 시절 삼성라이온스 어린이야구응원단(야구단인지 응원단인지 정확한 명칭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이었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는 삼성 계열사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그로 인한 몇몇 수혜를 입고 있었다. 삼성 가전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다거나, (품질 좋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제일모직 계열의 옷을 역시 저렴하게 구입한다거나 등의 일이 그러했다. 삼상라이온스 어린이 어쩌구 역시 그런 맥락 덕분이었다.


삼성야구단을 복장을 빼어박은 어린이용 모자, 점퍼, 가방, 선수단 명단이 있는 수첩 등 기억도 가물한 선물들을 받았었다. 활동을 뭘해야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냐면 아무것도 안했기 때문이다. 스케치북에 그림 그리는 걸 더 좋아했던 나로선 아버지를 졸라 '대구구장'까지 가자고 칭얼댈 기질이나 호기심 자체가 없었다. 그냥 점퍼만 맘에 들어서 입고 다니며 등교한 기억이 간혹 나곤 한다.


아마 내가 삼성이라는 단어에 대해 최초로 인식한 시절이 그때부터 아니었을까 싶다. 게다가 사는 곳이 TK다 보니 TK = 삼성(라이온스)라는 인식이 박혔고, 공단의 삼성전자 단지가 구미라는 도시의 은근한 자랑이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애니콜 공장에서 매년 연예인 초청도 하고 '당시 생산 모델을 모두 활활 태우며, 다시 결의를 다졌습니다' 풍의 이야길 하는 노래+극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들 멍청하게 이효리를 기다리다가 그 호러쇼를 마주하던 순간만 생각하면...


다른 일반적인 가정만큼, 또는 그 이상만큼 삼성에 대한 신뢰가 강한 우리 가정이었다. 편리한 AS의 삼성, 잘 만드는 삼성, 튼튼한 삼성, 세계의 삼성. 그 박힌 이미지 덕에 첫 핸드폰이 '구매액이 필요했던' 애니콜이 아닌 '공짜였던' 싸이언이었던 나는 당시 못내 아쉬웠을거다. 그러저럭 쓸만하고 의외로 고장도 없이 잘 돌아가는, '생각보다 괜찮은' 싸이언, 하지만 꼭 용돈을 아껴서 다음엔 애니콜을 사야지하는 20대 초반의 희한한 다짐을 잊지 않으며.


견고한 편견이라는건 무서운거다. 그게 깨지는 것은 어느 순간의 벼락같은 깨달음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면서 무뎌지고 깎여나가는 완고함에 가까운 것이다. 진정한 깨달음은 곧 아득함이다. 그러니까 나는, 또는 앞으로 이 나라에 살아가는 동안에 삼성이라는 단어의 자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라는 지금 시점의 질문. 쉽지 않다. 그게 굉장히 쉽지 않을 것이라는 당장의 판단은 나를 주저하게 만든다. 누구보다도 내 자신을 잘 알듯이 나는 '불매 운동 투사'가 될 수가 없음을...


아마도 이 나라에서의 앞으로의 삶은 그 괴리와의 불행한 동거일 것이다. 내가 불편해하는 그 이름은 지금 당장 제일 큰 안락을 줄 수도 있을 것이며, 내가 느끼는 불편부당함과는 별개로 이미 충분히 내 육신을 내 시간을 감싸고 있을 것이다.


얼마나 거부하고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 질문만은 멈추지 않은 상태. 그나마 긍정해야 할까.


 

'생각하고뭐라칸다 > 일기에가까운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순이 생일.  (9) 2010.03.31
설날 - 그 이상하고 무서운 투서.  (6) 2010.02.17
고향  (2) 2010.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