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오전 3시, 또는 노동의 새벽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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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3시, 또는 노동의 새벽

trex 2010. 9. 27. 11:22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http://hook.hani.co.kr/blog/archives/13136


    네무 요코의 [오전 3시의 무법지대] 총 3권을 최근 완독했다. 분량이 많지 않은 데다가 내용 주입이 쉽게 되는 장르 만화(본작의 1권 국내 이벤트 응모 사은품은 스킨케어 용품이었다. 타겟층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인지라 어렵지 않게 읽었다. 그럼에도 [오전 3시의 무법지대]를 굳이 웹 지면에 끌어오면서 감상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이 만화가 안겨준 몇 가지의 공감 가는 감정선이 있었던 덕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던 사회 초년생의 좌충우돌 진입기이다. 표지에서 분위기를 감지하셨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귀던 남자와 헤어지는 과정도 있고 새로운 남자를 알게 되는 과정도 있고 관찰자로서 문득 주변 사람들의 연애에 대한 상념을 살짝 곱씹기도 한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동년배 사회초년생의 블로그와 팬시 다이어리에서 추려내면 이 정도 이야기는 흔히 나올 법할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을 흔드는 예사롭지 않은 구석은 이 작품의 제목 ‘오전 3시’가 안겨주는 어떤 아득함 때문이다.

    주인공 모모코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지만, (아마도)당장의 집세 문제와 (확실히)당장에 입사를 해야 하는 나이대의 책무감 때문에 빠친코 매장 디스플레이 관련 디자인업을 하게 된다. 거친 ‘갑’을 상대하며 회사의 연명을 위해 닥치는 대로 살인적인 일정의 업무 수주를 따오는 영업 담당자와 인수인계를 도통 해주지 않는 선배들 틈새에서 모모코는 하나씩 일을 깨쳐 나간다. 윤택하지 않은 회사 살림과 빼곡한 업무 스케쥴 틈새에서 소위 ‘오피스레이디’풍의 존엄은 챙길 새가 없다. 햇볕에 말려야 하는걸 깜빡한 눅눅한 사내 이불과 하룻 동안의 화장을 녹여버리는 밤샘 근무에 그녀는 어느새 익숙해진다. 이게 도무지 남의 일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오피스텔 한 켠에 입주해서 ‘성장’이라는 단어로 스스로를 세뇌했던 초년의 나날과 불콰하게 취한 전임자의 조언들을 밤 11시에 들어줘야 했던 에이전시 업체에서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가장 쓰라린 대목은 빨라도 새벽 퇴근, 철야는 기본이었던 모모코가 자신의 실연마저도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채 망연히 받아들이는 대목이다. 이미 뭔가에 설레며 박동하던 심장의 리듬감도 사라지고, 정리정돈 되었던 뇌는 가히 친척집에서 놀러온 조카가 분탕질한 장식장의 상태처럼 흐트러진 뒤였다. 모모코는 얼마 뒤에서야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추슬러보다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기에도 벅찬 상태가 된다. 뭘 잘해보려 한 건지도, 뭘 실수한 건지도 알 새가 없다. 그냥 나는 어느새 갑자기 어른이 되었고, 몇 가지 일들이 나를 가혹하게 짓누른다. 이겨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무효하다. 당장의 어려움들이 지금 나의 현실이거늘. 이어 실감나는 대목들이 이어진다. 모모코는 독자인 내가 보기엔 3권이 끝나는 마당까지도 자신의 직업에 대한 확고한 자신감이나 비전을 가진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인가, 인생을 기어코 걸만한 일인가 등의 안철수 강연회 등에서 안겨주는 교훈과는 별개인 세상인 셈이다. 세상의 수많은 모모코와 나를 비롯한 이들이 의당 가져야 할 숱한 가치의 소중함보다 이런 삶의 당위에 부착되어 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일까, 인생을 걸만한 일일까라는 확고한 믿음보다 해보면 되지 않을까라는 흐릿한 희망과 당장의 걸림돌에 대한 체념어린 수긍들, 속상하지만 이게 사실이다.

    모르시는 분들이 여기까지 읽자면 [오전 3시의 무법지대]가 굉장히 사실적인 색채감으로 물든 작품으로 보일 수 있으리라. 사실 이런 감정을 풍부하게 안겨주는 것은 1권에 한정되어 있다. 남은 2권, 3권은 ‘오전 3시, 노동의 새벽’보다는 ‘휴식을 취하는 오후 1시 30분의 회사 옥상’의 분위기가 더욱 강렬하다. 먹고 살자고 연애를 하는 건지, 연애를 하자고 먹고 사는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우리네 삶의 풍경이 가벼운 터치로 다뤄진다. 여기서 아쉬움이 든다. 좀더 농밀하게 각박한 회사의 환경 안에서 모모코가 분투하고 쓰라린 몸을 추스르는 과정, 또는 아예 그녀가 회사를 박차고 나오는 결론을 바라지만, 여기서 작가의 역량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작가 네무 요코의 9개월간 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 작품의 두터움도 1년이 채 안 되는 ‘9개월짜리’인 셈이다. 그녀가 만약 5년간 근무를 했다면 제법 ‘경력급’ 작품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작가는 짧은 근무 기간이나마 한 개 이상의 경구는 건진 모양이다. 작품 속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회사는 마치 세포를 재생시키는 생물 같다.” 힘겨운 환경 안에서 적지 않은 이들이 제풀에 쓰러지고 순환하듯 새로운 인물들이 적응력이라는 이름의 핏대를 세우고 안간힘을 써가며 환경에 부착하려 한다.

    그리고, 분홍과 노랑으로 채색된 책 커버와 다른 색감의 이야기들이 우리 현실에서 맴돌고 있다. ‘본 분야 사관학교’라는 미명 아래 숙련이라는 혹독한 근무조건을 감내해야 하는 숱한 IT 기술자들과 기능자들. 그들에게 돌아오는 건강 악화와 예속된 삶의 조건들, 동종업 종사자임에도 쓰라리게 외면할 수 밖에 없었던 몇몇 안타까운 사례들. 그럼에도 마음 속엔 안간힘을 키우며 질문을 곱씹는다. 새벽 3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택시비 지급 요청하면 눈치를 주는 듯 하는 요즘 사내 분위기는 어쩔 것인가, 정말 결혼을 하면 어르신들 말씀처럼 사는 게 좀 나아지는 건가, CMA는 날 좀 웃게 해주려나, 방 탈출 게임이나 해볼까, 내가 이렇게 하는걸 부장은 왜 몰라주나, 야 이 여자야 자네마저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면 안 되는 거지, 문화센터 강의 듣고 싶다, 시간이 되려나, 내가 잘하는 게 뭐였더라, 몸이 너무 쑤신다 동대문에서 발 마사지나 받을까 돈을 더 들이면 전신 마시지도 가능할까, 잡스처럼 폼나게 프레젠테이션은 하고 살아봐야지, 그러니까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걸까. 이렇듯 오전 3시, 노동의 새벽 260여일이다. [1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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