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책]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 : 시계바늘 위 청소년들을 위하여. 본문
달리 강조할 필요조차도 없는 말이지만 우리, 내 주변은 음악으로 가득차 있다. 동네 버스정류장 앞 와인가게에서 지나치게 큰 볼륨으로 들려오는 케니G의 90년대 음반, 트위터 타임라인에 새삼 링크가 대롱대롱 걸리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케이블 채널을 돌리면 하루가 멀다하고 나오는 ‘세시봉’ 재방송, 그리고 그것들과의 거리감을 위하여 존재하는 내 이어폰 안의 음악들까지. 365일 매일 내용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우리 주변엔 이미 많은 음악들이 존재하고, 앞으로 잊혀질 것이고, 다른 것들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이런저런 많은 이야길 나눈다. 누구는 신보 그게 나왔대 좀 받아줄래라고 메신저로 말을 걸고, 누군 술자리에서 홍대 음악 요새 연성화 되었다매? 그럴 줄 알았어라고 비아냥대고, 다른 누군가는 서바이벌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으로 한국가요계가 부활한다는 헛소리들을 언제까지 들어야 하냐며 울분을 터트린다. 이렇듯 음악을 듣는 대중들은 취향의 거미줄을 치며 서로를 구분하고 새로움을 노리고 낚는다.
이런저런 거미줄 사이의 이야기들을 뱉고 듣다 좀 지쳐가는 가운데, 우연히 저자 윤호준의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을 집어들었다. 표지 뒷장에 선명하게 박혀있지만 일단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은 ‘청소년을 위한 본격적인 대중음악 이야기’책이다. 그럼에도 읽게 된 것은 저자 윤호준이 철학과 논리에 관한 책을 낸 적이 있던 이력 탓과 적어도 그가 거짓말을 하는 ‘음악매니아’가 아니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돈된 문장으로 그가 현재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궁금했던 터였다. 청소년과 대중음악. 그렇다. 내가 문장을 적어내면 당신이 떠올릴 풍경이 대략 짐작이 간다. 일단은 오토튠으로 범벅이 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와 강박적으로 특정 후렴을 반복하는 후크송들의 범람, 유난히 시끄러운 목청의 아이돌 팬덤, 1시간 내내 쳐다봐도 도무지 맘에 드는 곡 하나 고르기 힘든 TV가요쇼 등을 떠올릴 것이다. 그래서 자연히 생각하게 된다. [주머니 속의 대중음악]은 이런 작금의 현실과 청소년을 향한 계도문일까?
아니. 적어도 그런 심술궂은 기대감을 저버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윤호준이 책 속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은 지금 세대에 보내는 긍정과 공감이다. 희미한 빛으로 가르는 새벽의 기운과 쓸쓸한 불야성의 도심 풍경으로 마무리하는 청소년들의 다난한 하루 속에서, MP3P 속에 숨은채로 아이들의 귀와 가슴을 달래주는 숱한 음악들이 삶의 BGM이자 성장과 취향의 편린임을 긍정한다. 저자는 마치 자신이 그랬듯 – 어떤 친구에 의해 음악 듣는 취향이 국면전환을 하고, 가지고 싶은 앨범이 눈앞에 나왔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를 도덕적인 시험을 겪게 되고,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타인과 보이지 않는 수많은 대상들에게 하찮은 문장일지라도 표현하고 싶은 – 이 땅의 친구들이 그럴 것이며, 앞으로 그럴 수 있었음하는 바람을 표현한다. 그가 이 땅의 친구들에게 말걸기 위해 책 안에서 택한 방법은 장르 구분법이나 암기 공식 같은 복잡한 계보론 강의가 아니라, 음악을 즐기는 방향에 대한 조언 정도이다. 여기엔 어른들이 뭐라고 해도 지금 너희들이 듣는 음악에 대해 긍정해도 된다는 지지와 응원의 주먹 한 웅큼도 포함이다.
항시 시계바늘 위에 아슬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청소년들을 향해 저자는 간단히 몇가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등하교길 이어폰으로 듣는 음악들이 항시 당시의 상황과 맥락에 닿아 매번 달리 들리는 소소한 기적의 공감, 그리고 음악을 보다 즐겁게 즐길 수 있고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지름길로써의 매체 추천, 공연 관람법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짜릿하게 빛나는 부분은 각 챕터별 음반/뮤지션 추천이다. 버블검(Bubblegum) 뮤직이라는 천대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어느새 대중시장의 핵으로 떠오른 아이돌계부터, 연봉 2000을 목놓아 부르다 세상의 뒤안길로 퇴직한 뮤지션 이진원(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주노동자의 울분과 천민자본주의의 그림자를 말하는 연영석, 숨겨진 일렉팝 수작을 낸 적이 있는 엄정화까지 그 스펙트럼은 은근히 넓다. 짧지만 해당 음반의 매력도를 적확하게 집어내는 짧은 단평도 볼만하다.
비단 어린 세대를 위한 입문서 역할뿐만 아니라 이 책이 동년배 또는 나이 든 독자들에게도 읽힐 수 있는 것은 한 음악평론가의 성장기인 덕도 크다. 그가 1991년 한 짝궁에게 킹 크림슨(King Crimson)을 소개받아 취향의 국면전환을 했다는 대목을 보고, 난 이듬해 1992년 한 짝궁에게 퀸(Queen)과 스키드 로우(Skid Row)를 소개받은 기억이 났다. 그가 1998년 델리 스파이스를 듣고 한국대중음악의 ‘새로운 움직임’에 경도될 당시, 나는 신해철과 서태지의 귀환에 몸을 부르르 떨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대중음악평론가로서의 저자의 고백도 눈여겨 볼만하다. ‘대중음악 비평은 하나의 의구심으로부터 시작된다. 의구심은 내가 무조건적으로 좋아하고 지지했던 뮤지션의 음악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다.’(p.138) 사사로운 취향의 편린이 쌓여 성장하게 되고, 이후 ‘10대의 가슴’을 지닌 나이 든 글쟁이들은 평론가가 된다. 그리고 동시대의 음악들에 대해 발언한다.
대중음악은 철저히 나에게 달려있다. 나는 때로 더 많이 팔려는 제작자의 바람대로 한때의 오락으로 음악을 소비하지만, 때로는 고단하고 지친 삶을 위로받기 위해, 때로는 사회의 부조리에 관한 날카로운 시선을 얻기 위해, 때로는 그저 순수하게 멜로디와 리듬에 도취되기 위해 음악을 듣는다. 이처럼 무엇을 의도하고 들을 수도 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뜻밖의 의미와 감정에 휩싸일 수 있다. 돈을 쫓는 음반 제작자든 예술을 추구하는 뮤지션이든 만난 사람의 의도와 어긋나게 들을 수 있고, 또 그렇게 들리는 것이 바로 대중음악이다.(p.26)
본저가 손을 내미는 첫번째 대상은 청소년들이지만, 도심 속에서 자신만의 벽을 쌓고 이어폰 속의 휴식을 갈구하는 모든 세대일수도 있다. 그만큼 다종다양한 멜로디와 비트 사이에서 하루를 채우고, 휴식의 시간에도 취향이라는 이름의 창과 방패로 상대와 아웅다웅 다투는 현대인들. 그들에게 당신이 처음 좋아했던 음악은 무엇이며, 그 음악을 들었을 때의 짜릿함과 청량감을 상기하냐고 묻는다. 읽는 독자들 모두에게 저자는 여전히 앞으로도 ‘10대의 가슴’으로 대중음악을 듣겠다고 선언한다. 부러워할만한 다짐이다. 우리 역시 시계바늘 위 일상에서 크게 다르지 않기에, 잠시라도 바늘에서 벗어나 같이 걷고 싶다는 안달이 난다. 모두들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11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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