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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스트레스, 허락과 통제

trex 2011. 4. 28. 10:20
+ 한겨레 웹진 HOOK에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26396

    시선 관리가 곤란한 지하철 내부. 간혹 고개를 돌리다보면 상대의 핸드폰 액정에 낯익은 노란 대화창이 보인다. 1천만 시대를 열었다는 카카오톡이 아닌가 싶다. 고작 카카오톡 할려고 스마트폰 샀냐는 빈축을 듣는 도시인들이지만, 카카오톡이 이용자들에게 파급 효과가 유효한 브랜드임은 사실인 듯 하다. 소녀시대의 목소리를 빌어 ‘카카오는 말을 못하지’라고 농담조 시비를 건 포털 회사의 TV CF에도 불구하고, 정작 브랜드 인지도에선 카카오톡이 우세하다. 아마 새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되어도 스마트폰 이용자들의 필수 목록엔 이 브랜드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을 것이며, 지하철 안의 수많은 이들은 카카오톡 대화창에 피로한 눈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 인지도만큼이나 카카오톡은 최근 통신사들의 시비거리가 되었다. 데이터 부하 등의 빌미였지만 세간의 평은 통신 모델 발굴에 게으른 기존 통신사들이 한 IT 기업의 성장세를 곱게 보지 않았다는 입장에 가깝다. 현재는 비교적 조용해진 편이지만 카카오톡이 기능을 확장하고 파급력을 높일수록 시시비비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아무튼 카카오톡이 일반 이용자로선 편한 툴임엔 틀림없다. 비슷한 기능의 왓츠앱(WhatsApp)이라는 도구가 있지만 유료라는 가벼운(?) 장벽 차이가 한국 시장에서의 성패를 갈라놓았다. 친숙한 한국어 메뉴에 ‘무료’라는 메리트 등이 카카오톡을 스마트폰 초보 이용자들에게 필수 목록으로 인식케 하였다. 이를 보면 비교적 잦은 서비스 점검 등이 큰 장애요소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카카오톡의 활황은 역시나 아이폰 발매를 필두로 한 한국 통신 환경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재빨리 자리매김을 했고, 몇가지 부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자리잡았다. 상대방과의 연락처 매칭으로 손쉽게 인맥이 자동으로 등록되고, 등록된 인맥으로 문자 메시지와 음성 메시지 전달 등이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이들이라면 이젠 인맥의 목록에 자신의 친구, 직장동료와 상사, 친지들의 이름을 발견하는데 익숙할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추천 목록이 추가될 때는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외근 중 급한대로 연락을 취한 제휴사 직원, 자기 번호를 저장하시면 좋을거 같다고 말한 보험설계사, 몇년간 연락할 일조차 없었던 퇴사자 등이 목록에 ‘new’ 아이콘을 달고 추천 등록되어 있으면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이윽고 고민이 시작된다. 너무 쉽게 (연락처)정보들끼리 관계가 형성되고, 인맥으로 (강제적으로)주입이 되는 것은 아닐까?

카카오톡의 성장 과정에 있었던 부침 중 하나는 연락처 정보를 대표로 하는 개인정보 보안 문제였다. 상호간의 전화번호 연락처 정보를 연동하는 기존의 왓츠앱(WhatsApp) 류의 서비스 모델과 달리, 카카오톡은 한쪽만 전화번호 연락처를 알아도 쉬이 연결되는 구조라 친구 추천이 잦다. 이 때문에 내 개인정보가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맞닿는지 알 도리가 없는 이용자들의 불안감은 물론 커져갔다. 카카오톡 업체는 수차례의 업데이트와 수차례의 공지로 보안상의 문제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으며, 이에 대한 이야기들은 한결 잦아든 상태다. 온라인 도청 등 흉흉한 소리가 돌았던 것은, 국내 유수 포털과 온라인마켓 등이 저지른(!) 개인정보 유출과 이에 대한 늑장 대처, 이용자 불신 등의 전력 탓이 크다. 갓 성장하는 모바일 생태계가 탄탄한 보안의 성벽을 쌓기 보다는 함량 미달의 어플리케이션 판매와 부실한 어플리케이션 스토어, 통신 기기 스펙 경쟁에만 몰두한 이유도 있다. 또한 한국 웹환경의 보안이라는 것이 nprotect와 공인인증서에 기댄 불안한 환경이라 이용자들 사이의 은연중 불신이 생래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용자들의 불안감은 당연해 보이며 이는 어쩌면 앞으로 상당한 보안 불안 증후군을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단 카카오톡 뿐만 아니라 근간의 소위 소셜 네트워크는 ‘보다 드넓은 관계와 영향력’을 강조한 덕인지, 관계 매커니즘 자체가 1:1이 아닌 1:1에서 건너간 또다른 ‘1:다수’를 지향하고 있다. 내가 관계를 맺은 팔로우(관계 친구)의 또다른 팔로우를 추천하는 Who to Follow 기능의 트위터나, 놀라움을 유발하는 함수로 내 개인의 연락처와 E-mail, 친구의 친구까지도 다각적으로 조회해 관계에 대한 푸쉬를 넣는 페이스북 등이 그렇다. 나에게 원고를 청탁한 데스크 담당자의 E-mail 주소를 안다는 이유로, 페이스북은 나와 그 담당자가 친구가 되라고 푸쉬를 넣는다.



드문드문한 관계나 갈등의 소지가 없는 경우면 다행이지만 본의 아니게 클릭 몇번의 실수로 군 시절 폭언을 아끼지 않은 사람과 페이스북상의 친구가 된다면? 블랙 코미디풍 예시지만 ‘관계 스트레스’의 전조는 사실 여기저기서 보인다. 성공 서비스를 벤치마킹할 수 밖에 없는 한국 포털의 현실이지만, 친구의 친구를 추천하는 네이버 블로그나 ‘옛 남자친구’와 ‘사이버 스토커’ 따위를 일촌으로 추천해준다며 울상짖는 싸이월드 이용자들의 반감은 한번쯤 숙고해볼 이야기들이다. ‘관계의 확장’을 유도하지만 그만큼 뜻하지 않는 매칭으로 심적 스트레스를, 연락처 DB의 전파를 통한 보안 문제는 없을까하는 이중 스트레스를 이용자들은 동시에 감당하고 있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쫓아 영향력을 확보하기에 급급한 거대.군소 업체들이 이러한 부분의 깊은 고민을 해봤으면 하는 세태다.

최근 ‘아이폰 위치추적 파문’의 발견자인 ‘앨러스대어 앨런’과 ‘피트 워든’은 ‘허락(permission)’과 ‘통제(control)’라는 말로 이런 세태에 주요한 시사점을 피력했다. 고객들에게 자신들의 정보가 ‘기록되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동의받아야 할 의무’와 ‘기록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 위치추적 파문은 현재형이지만, 적어도 이런 시사점은 적은 수의 바이트를 가진 어플리케이션부터 거대 커뮤니티까지 보편적으로 인지해야 할 사실이 아닐까.

단순히 친구 추천을 해놓고 맘에 들지 않는다면 차단 버튼을 클릭하면 된다는 간편한 대응이 아니라, 서비스의 본질 자체가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고 있다는 인지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야 할 터이다. 2011년은 아마도 ‘관계 스트레스’와 ‘보안 스트레스’에 대한 대안과 해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될 해로 기억될 것이다. 이 글을 적는 시각,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 네트워크 PSN이 개인정보 7700만건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104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