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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키워드 :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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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개의 키워드 : [위대한 탄생], [나는 가수다]

trex 2011. 5. 13. 10:18
+ 한겨레 웹진 HOOK에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27345


주말 후 월요일 오전부터 직장인들이 말할 수 있는 화제거리가 생겨 다행인가 싶은 일이 하나 있다. MBC의 [위대한 탄생]과 [우리들의 일밤] 부속 코너인 [나는 가수다] 이야기이다. 지지하는 출연자 이야기를 하고, 역시 가수는 가창력이지라는 닳도록 당연한 소릴 새삼스레 한다. 누가 생존하게 될까라고 물으면 실력순이지라고 답은 하지만, [위대한 탄생]의 안타까운 탈락자와 [나는 가수다]의 부활 제도에 대해선 다른 의견이 오가기도 한다. 이윽고 누가 그 쇼에 나왔으면 좋겠다 말하면서 바람을 투영하기도 하며,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농담조를 뱉으면서도 실은 매주 생존자를 궁금해한다. 이런 풍경을 두고 소위 음악매니아들은 뾰죽한 말투로 쏘아대고 근심을 토로하지만, 숫적으로 빵빵한 나머지 대중들의 반응을 이기기엔 좀체 어렵다.

한 케이블방송이 외국 성공 사례를 따와 만든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공전의 시청률을 자랑하자, 아마도 공중파 사장님은 저거다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급조한 모양새치고는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의 현재 돌아가는 모양새는 괜찮은 편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위대한 탄생]이 중반 분위기에 비해 긴장감이 떨어진 편이라면, [나는 가수다]는 뭔가 물을 만난 듯 붐을 조성하고 있다. 비록 긴장감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위대한 탄생]의 경우는 이미 2시즌 공고를 하며 1시즌 장사가 제법 괜찮았음을 밝혔다. [나는 가수다]도 현재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면 별 무리 없이 현재의 위치를 지킬 수 있을 듯 하다.(물론 제작하는 당사자들의 속내는 이웃 방송국 프로그램을 이기는 것이겠지만)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가 조성한 숱한 와글와글을 보고 떠오르는 3개의 키워드가 있어 적어보고자 한다. 이 키워드로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들을 애호하는 이유에 가볍게나마 접근해 보자는 의도이다.

1. 김태원 : 김태원은 현재 [위대한 탄생]의 가장 중요한 축이(되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방영할 당시에는 해외 예선이니 국내 예션이니 하는 절차를 보여주며, 떨어지는 감각의 자막이나 편집의 미숙함으로 지금같은 재미는 선사하지 못했다. 김태원은 본 방송의 핵심 멘토 5인 중의 한명이기는 했지만, 예선 심사를 맡았던 윤상 같은 존재감이나 멘토 방시혁의 까칠함과는 짙은 인상에는 닿지 못했다. ‘아름다움’으로 대표되는 김태원의 심사 판단 기준은 ‘발성법’과 ‘엔터테이너로서의 가능성’ 같은 기준을 내세우는 여타 심사위원과는 한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그만큼 기술적으로나 비지니스적으로나 설득력은 부재했고, 자뭇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해 보였다. 그런데 현재 시작 엄연하게도 김태원의 3명의 제자격 캐릭터(멘티)들은 생존해있다. 서바이벌쇼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실력이 아닌, 운과 당대의 대중들의 선택인 투표에 기인한 생존이라는 점에서 김태원은 뭔가를 획득한 것이다.


* mbc 홈페이지에서 캡처
 
김태원의 성공은 이 쇼가 성공한 지점 중 하나를 설명하고 있다. [위대한 탄생]은 – 음악매니아들의 입장에서는 불행하게도 – 실력 우위의 원칙보다는 소위 인간적 호소력이라는 동인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부분에 의해 충실히 돌아가고 있음을 김태원의 멘티들은 보여주고 있다. 물론 김태원의 멘티인 백청강, 이태권, 손진영은 각자의 지점에서 실력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매 무대마다 보여주고 있다.(엄밀히 말하자면 덜컹거리는 부분이 많은 엄연한 아마추어들이며, 나름 분전하고 있다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경에 깔린 김태원과 이 3명과의 관계가 자아내는 드라마틱한 캐릭터성, 각자의 뒷 배경이 보여주는 인간적 호소력이 다른 팀멤버들에 비해 유독 강하다는 것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김태원은 이 부분은 간파하고 있었을까? 의도적이고 지능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현재 방송인으로서의 김태원이 TV화면을 보는 시청자들을 쉽게 웃기고 울리는 당대의 캐릭터로 서있는 증거라고 하겠다. 완고한 발성법에 대한 법칙을 가지고 있는 이은미나, 은근한 자기 취향의 고집을 피력하는 김윤아 같은 멘토들보단 TV매체가 김태원 편인 것은 확실한 듯 하다.

2. 임재범 : 한편 [나는 가수다]에서 현재 시점 가장 중요해진 존재는 임재범이다. ‘김건모 7위’를 둘러싸고 적잖은 파란(!)이 있었던 [나는 가수다]에서 쏟아진 웹상의 맹공들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동안 아무도 일요일 저녁 5시 20분에서 7시 50분 사이에서 [일밤]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큰 변화라 하겠다. ‘파란’ 이후 재정비한 쇼는 나름 시청자들의 의견을 수용한 덕인지 편집상이나 음향상으로 개선된 부분이 보였다.(만족의 척도는 각자 다를 것이다.) 가장 큰 변화의 요점을 만들어낸 것은 임재범이었다. 사실 한국대중음악사는 숱한 은둔자와 재야고수들을 품고 있다. 재평가의 여지를 항시 안고 있는 ‘살아있는 공룡’ 한대수나 매니아들이 오매불망 신작을 기다리는 장필순, 새삼 세시봉의 전설로 회자되는 이장희 등 이렇듯 많은 이름들이 있다. 그중 MBC는 임재범을 새삼 내세웠다. 임재범이라는 이름 석자는 ’고해’ , ‘사랑보다 깊은 상처’ 등으로 익숙한 듯 하면서도 흐릿한 이미지가 있다. 이는 상당수의 대중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메탈 밴드 ‘아시아나’ 등의 이력 같은 무협 고수담이 서린 탓이다.


* mbc 홈페이지에서 캡처
 
솔직히 말하자면 ‘아시아나’ 당시는 물론이며, 그를 이해하기 위해 필히 청음해봐야 할 솔로 3집 당시의 임재범은 지금 없다. 부르는 마디마디 호흡은 길지 못하고, 헤비니스 음악과 소울풀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었던 절정의 보컬리스트 임재범은 재현되지 못했다. 대신 TV화면 속에 선 그는 포털을 뒤덮는 뉴스(부인과의 에피소드 등)의 아우라를 등지고 서있는 복귀한 남자의 모습에 가까웠다. 재활이라고 말하기엔 좀 잔인하고, 당분간은 매주 1회는 노래를 대중들에게 불러야하는 싱어의 운명을 받아들인 듯 하다. 그의 음악을 ‘음반 전체’로는 잘 파악하지 못했던 대중들에겐 그게 유효하게 먹힌 모양이다. 재야 은둔고수의 이미지와 남다른 보컬에, ‘펑크내지 않겠습니다’라는 선언이 심정적으로 시청자들을 감동시키는 장치가 되었다. 그 진지함과 무게감에 반한 젊은 시청자들은 그가 사용하는 헤드폰의 가격을 수소문했고, 나이 든 시청자들은 그만의 방식으로 부른 ‘빈잔’을 듣고 감동서린 일요일밤을 보낼 수 있었다. 여러 보컬리스트들이 가진 특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임재범만이 가진 스토리성에 시청자들은 혹한 것이다.

3. 중장년 시청자 : 그런데 이 두 쇼가 가장 유효하게 마음을 흔든 대상은 아마 중장년 시청자들이 아닐까 한다. 그들은 [위대한 탄생]의 ‘미라클맨’ 손진영의 고군분투에 설득되고, 재중동포 백청강의 분전에 박수를 보낸다. 물론 이들이 응원하며 ARS를 보내는 대상도 이들이다. 그들의 스토리에 설득되고 응원하며, 노래를 부르는 대견함에 한 표를 보내는 셈이다. 어쩌면 발성학과 장르적 고집으로 뭉친 다른 멘토에 비해,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내세우는 김태원 멘토에 가장 동조를 보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이 [나는 가수다]에 보내는 관심도 그 지점과 멀지 않은 듯 하다. 소년소녀들의 애교로 범벅이 된 차트쇼 아니면, 노회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룹 사운드가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서는 [7080]쇼 류의 중간 지점에 임재범이라는 희귀한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닐런지. 초원의 사자 같은 고독의 이미지에 절륜의 보컬로 중장년 시청자들에게 새삼 새로운 볼거리, 들을거리로 인식된 것은 아닐까?

풍족하지 않은 저작권료 수입에 기댄 일상과 부인의 병환 등 불황시대에 설득력 있는 스토리까지 주입되었으니 가히 완벽하다. 평소에 문화적 허기를 자주 토로하던 세대니 이들에게 맞는 쇼인 셈이다. 거기에 표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공중파에서의 첫 시도다보니 성공 여부에 대해 갸우뚱하던 외부의 시선들이 바뀌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겠다. 이웃 방송국에서 ‘직장인 밴드부터 아마추어까지’를 대상으로 한 ‘밴드 서바이벌’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 또한 분명 아이돌쇼와 7080쇼 중간의 지점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으리라는 짐작이 든다. 다만 이들 시청자 세대가 (대중음악)문화 저변의 지형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지 않지만.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 아니 이들의 전조가 된 [슈퍼스타K] 등의 서바이벌쇼들은 언제나 답변은 유보한채 의문만을 진행형으로 남겨두고 있다. 1등만이 영광을 차지하는 줄세우기식 구성이 대중음악의 평판을 좌지우지하는 기준이라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 각종 서바이벌 쇼들이 세대 차이와 장르론을 껴안을 수 있을만치 품이 넓기나 한 것인가, 기본적으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젊은 싱어들과 프로 뮤지션들에게 합당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인가. 무엇보다 기존의 음악 프로그램들이 각각 담고 있었던 가치를 페지로 일거에 없애고, 이 서바이벌쇼 무대에서 다시 재현할 수 있기나 하겠는가라는 의문이 가장 크다. 물론 제작하는 입장에서의 가장 큰 과제는 당장에 이들 무대에 보내는 시청자들의 관심 유지와 재확산을 통해 유포되는 뉴스 이슈로 인한 지탱이겠지만.

이러나저러나 시청자들은 이번주 주말밤에도 ARS를 보내거나 응원을 하거나, 방송 후 덧글로 누가 무대에 생존하고 새로 투입되면 좋겠다고 바람을 차곡차곡 채울 것이다. 이렇듯 욕구를 비추는 창이라는 점에서 거울과 TV는 서로 닮아있다. [11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