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에세이 : 보물 고블린. 본문

생각하고뭐라칸다/시사/매체/게임등등

에세이 : 보물 고블린.

trex 2012. 7. 13. 16:13
아무 생각없이 그린 그림이었다. 그걸 두고 그 녀석이 눈물을 훔치게 될 줄은 몰랐다. 발단은 이 링크 ( http://trex.tistory.com/m/1693 ) 때문이었다. 나조차도 그린지 1,2주가 넘어가는 쓰레드라 아무 생각이 없었던 링크였는데, 녀석은 두고두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한다. 보물을 가진 죄 하나로 영웅과 노인의 발길질에 놀아나는 고블린의 신세를 보고 울 수 밖에 없었다 한다. 이런.

디아블로3를 한 이들은 모두 보물 고블린을 알 것이다. 특정 장소에 출몰하여 자잘한 골드 뭉치들과 어쩌면 유용할지도 모를 희귀 아이템들을 쏟아내는 그 보물 고블린 말이다. 그렇다고 보물 고블린이 발견 후 순순히 아이템들을 내보여주진 않는다. 필사적인 추격과 공격타만이 만족스러운 아이템 제공을 낳는다. 그렇지 않으면 보물 고블린은 어느샌가 포털을 열고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 녀석의 동정심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그저 자신의 짐을 들고 가는 고블린에게 왜 플레이어들이 폭력을 행사하느냐 이것이다. 디아블로3는 아이템과 레벨의 게임이다. 레벨에 어울리는, 아니 평균을 상회하는 아이템을 장착해야만 이런저런 능력치를 올릴 수 있고 원활한 플레이가 가능하다. 보물 고블린은 단비 같은 존재이다. 물론 실컷 쫓아가 습득하여도 마땅찮은 아이템을 주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확률에 거는거다. 그래서 보물 고블린을 괴롭힐 수 밖에 없다. 그 녀석의 눈물은 이해하지만 기본 생리가 이럴진대...

이제 그 녀석은 고블린 석자만 들어도 눈물이 맺힌다고 한다. 고블린이 그렇게 귀여운 존재가 아니라는 증거인 구글링으로 서치한 캡처샷도 소용없고, 게임 생리에 대한 설명으로도 설득되지 않았다. 난감한 일이었다. 지난 링크를 보고 우는 일도 당혹스러운 일이었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고블린의 신세에 대한 측은지심을 느낀 적이 없었기에 말이다. 그저 흐릿하게 고블린이 짐을 잔뜩 지고 가는 것은 보물 수집벽이 있거나, 일종의 도둑 길드 같은 생태계를 형성해서가 아닐까하는 짐작만을 했었다. 무엇보다 디아블로 시리즈의 줄기에서 보물 고블린의 존재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는 보너스 요소에 불과했다.

말을 듣고난 뒤에 그 녀석과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의 2차 창작물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많지도 않았다. 기껏해야 두세개? 한가지 흥미로운 점이라면 영웅의 뒷치기에 당하는 고블린은 가난함을 등에 업고 병든 노모 또는 가련한 부인과 자식이 있다는 설정을 한 것이다. 포털 너머엔 자신의 소식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는 설정인거지. 참 처연한 신파다. 그런 가련한 고블린의 짐을 뺏고 사살하는(!) 영웅은 인정도 없는 악당인 셈이다.

게임의 설정을 들은 그 녀석은 역으로 고블린을 수호하는 가드 영웅이나, PvsP가 가능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였다. 아주 유감스럽게도 디아블로3는 그럴만치 자유도가 높은 MMORPG가 아닌 그저 네트워크 플레이가 가능한 액션형 RPG일 뿐인데 말이지. 게다가 미완성된 컨텐츠인 투기장을 놔두고 서툴게 출시된 - 블리자드, 미쳤나... - 디아블로3는 아직 PvsP가 불가능하다. 투기장이 아닌 곳에서 고블린 사냥을 막는 과제형 PvsP가 가능하다면? 그 녀석의 시름은 좀 나아질지도 모른다. 적어도 영웅 중 자신의 생각과 같은 소수라도 있다는 발견일테니.

하지만 그런 일이 생길리는 만무하고, 지금도 내일도 성역의 영웅들은 보물 고블린을 잡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고 투석기를 날릴 것이다. 그 녀석이 고블린에 대해 더 슬픈 소식을 들을 수 없게 하는 수 밖엔 없겠다.


itistory-photo-1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