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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고감상정리

[해운대]

trex 2009. 8. 17. 10:19



쉽게 번 돈을 쉽게 쓴다고 했던가. 쉽게 들어온 기프티콘을 모종의 이유로 [해운대]에 썼다.


물에 대한 묘사는 출중하다. 액션에 대한 그림도 좋다. 다마스 유리창에 머리를 박아버리는 갈매기, 컨테이너 장면(아주머니 관객들과 어린이 관객들의 웃음소리 덕분에 몰입이 깨진 덕에 잠시 그들의 머리통을 컨테이너로 뭉개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라이터 장면 등 쓸만한 장면이 제법 있다. 감독의 이름 덕에 액션에 대한 그림이 별로일까 싶었던 것은 우려였다. 다만 물과 더불어 함께 하는 오브제들은 별로다. 무너지는 건물들은 밀도가 안 보이고 거대한 배는 게임 화면처럼 폭파한다.


후반부를 채우는 재난의 섬칫함은 전기 감전이라는 장치로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반면에 2/3 이상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역시나 윤제균이다. '겔포스' 샴푸 장면에서 [색즉시공]의 정액 후라이를 떠올리지 않기란 힘든 것이었고, 연신 빽빽 울어대는 아이들을 보며 [1번가의 기적]을 떠올리게 되었다. [두사부일체]의 전력 답게 여전히 사람 잡아패는걸 즐긴다. 못 봐주겠다. 아주 막판에는 결혼 승낙 받는 여자 주인공 처자가 시어머니 될 사람 앞에서 뭐가 미안한지 눈물을 쏟는데 질려버렸다.


[해운대]의 치명적인 단점 중 하나는 주연, 조연, 단역 모두 합심하여 좋은 연기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국 영화의 수작들은 밑에서 받치는 힘을 연상케하듯 조연들과 단역들의 연기와 디테일이 적소에 박히는데, [해운대]에선 전무하다. 그중 박중훈의 출중한 연기력은 빛을 발휘하는데, 스펙터클하게 일그러진 얼굴에서 나오는 평이한 어투는 실로 감동적이다. 게다가 그 어투로 뱉는 대사의 단어단어 하나가 정성스럽게 씹혀있다. 우리나라의 중견배우라는 사람의 연기력에 대해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믿음도 무너뜨리는 진정한 '재난의 순간'이었다.


사실 윤제균 감독은 나쁜 감독이 아니다. 적어도 영화를 보면서 '내가 극장 안에서 왜 이런 물건을 보고 있어야하지?'라고 고뇌하게 하는 틈 자체를 주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연출의 묘를 박아놓고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연출의 묘에 대한 감각 덕에 중반부 팁 한푼 못 받고 나간 어떤 아저씨는 후반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맡고... 뭐 그런게 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몇몇 관객들은 설득되어 눈물을 흘리고 자주 웃음을 내뱉는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동의할 수 있는 영화가 전혀 아니다.


[해운대]가 천만명을 앞두고 현재 꽤나 희희낙낙한 분위기인 모양이다. 고작 이 정도가 한반도의 천만명을 극장으로 이끌게하는 설득력이란 말인가. 나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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