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토이스토리3] 이 경지에. 본문

영화보고감상정리

[토이스토리3] 이 경지에.

trex 2010. 8. 7. 11:19
[장난감 놀이]

앤디처럼 방안에서 장난감과 놀았었다. 앤디처럼 쾌활하지도 못해서 바깥에 나가서 놀면 코피라도 터지는 줄 알고 - 실은 실제로 터진 적도 있고 - 혼자 노는 것이 좋았고, 누워서 변신 로봇과 '안'변신 로봇들을 양손에 쥐고 대결을 시키고 스토리를 짰다. 


친구가 생겼다. 더 많은 로봇들이 친구의 방 안 박스 속에 있었고, 이젠 둘이서 착한 편, 나쁜 편 나눠서 스토리를 짜고 대결을 하고 놀았다. 이게 완숙해지자 서로의 마음 속 조율까지 가능했다. 나쁜 편을 하는 쪽은 초반엔 굉장히 강력하게 착한 편을 몰아버리지만 후반에 착한 편이 힘을 각성하거나, 구원 격의 캐릭터가 등장할 때는 져주며 양보하는 법도 아는 완숙의 경지에 다다랐다. 


이런 조율과 규칙은 중간에 '제3자'의 친구나 동생이 생기면 다소 위협을 받는데, 껄끄럽게 넘어간 적도 있고 마찰이 있던 적도 있었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적용해 보았지만 잘 되진 않았다. 시간이 흐르며 친구와 나의 규칙은 견고해졌고 유대가 강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6학년이 되어서 우리는 깨달았다. 이제 이런 놀이를 하면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라는 것을, 이 장난감들을 동생에게 양보할 줄 아는 소양도 필요하고 심지어 어른이 되면 이것들은 아무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픽사]

픽사전(http://trex.egloos.com/3861654)에 갔을 때 제일 인상깊었던 것 중 하나는 이들이 작품을 만들 때의 세심한 공정을 그려낸 플로우였다. 참 말이야 쉽지. 그리고 부럽기도 하지. 이런 양가적인 마음을 품었는데, 그런 플로우가 자리매김하기 까지의 다난한 여정도 그렇지만 그게 가능할 수 있는 풍토가 자본과 인력이 늘어나는 동안에 변함없이 지속가능하다는게 놀라웠다. 가령 [토이스토리3]의 스토리를 만들 때 이들은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디즈니가 애초에 기획했던 버즈 대만 리콜 소동은 싹 잊읍시다. 어떻게 새로 시작할까요?"
"여기에 스패니쉬를 넣으면 어떨까요?"
"머핀? 아니 아니 부리또를 써먹어보죠?"
"이 장면에서 켄에겐 이 복장이 어울릴 듯 하네요!"
"물감 같은걸 끼얹으면 어떨까?"(...)


수많은 생각이 부딪히고, 그 안에서 최선의 방법이 뽑혀 나온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방법을 안다. 그들 안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방법을 안다. 이미 그 경지에 닿은 듯 하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토이스토리3]

마지막에 엔딩롤이 오르고 난 뒤에 디즈니와 픽사의 로고가 끝을 알릴 때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괜히 아이처럼 칭얼거리며 한번 더 보여달라고 조르고 싶을 정도였다. 이미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뭔가가 아릿했었다. 단편 [낮과 밤]이 주는 묘한 벅참과 흐뭇함에서 이미 몸의 온도가 오른 탓이었던걸까. 본편 초반의 홈비디오 장면에서 울컥하기 시작했던 마음은 혼이 빠질 정도의 코미디와 위기일발의 연속에서 회오리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급기야 마음을 흔드는 마지막 장면에선... 그렇게 놔두고 올 수 밖에 없고, 또는 버릴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조각들을 건드리며 '성인' 관객들의 속을 헤집고마는 픽사는 참으로 놀랍다. 관객들의 마음을 휘젓고 헤집기 위해서 픽사가 사용한 '흉기'(!)는 감수성의 바람개비다. 아프지도 않고 통증도 없지만 분명 보고 난 뒤의 산란해진 가슴 속 풍경은 본인만이 알 것이다. 심지어 제법 잔인하다는 퉁명스러움도 뱉으며 말이다.


+ 아마도 자사 인용, 디즈니 인용이 숱하게 숨어 있으리라고 본다. 내가 발견(?)한 것은 보니의 가방에 그려진 것은 픽사 여명기 단편 [앙드레와 월리B의 모험]에 나온 벌 캐릭터 같은데 맞는지 모르겠다. 이런저런 제보들이 착착 쌓였으면 좋겠다.

+ 월-E를 그리자. 슥삭슥삭. http://trex.egloos.com/3864356
+ [월-E] 저 하늘의 별들이 별점이 되었네. http://trex.egloos.com/3860319
+ [라따뚜이] : http://trex.egloos.com/3311174
+ [Cars] : 조용한 픽사의 선물. http://trex.egloos.com/259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