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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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6화

trex 2011. 5. 9. 09:13

20회라는 턱에서 넘어갈랑말랑하는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 음악취향Y 업데이트 : http://cafe.naver.com/musicy/13724 

 

[지난회 줄거리] 소년의 음악취향 발상지는 사촌누나네 방이었다. 그곳에서 이정석, 이문세를 만났고, 왬과 듀란듀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중학교 시절 바비 브라운, 뉴 키즈 온더 블럭과 함께 한다.

 
2011/04/2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화
2011/04/26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2화
2011/04/29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3화
2011/05/0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4화
2011/05/04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5화

 

- 고등학교는 인근 도시에서 다니게 되었다. 매일 비둘기호(지금은 없어졌다)를 타기 위해 300원짜리 차표를 끊으면, 창구에는 "100원만" 할머니가 버티고 있었다. 한번도 동전을 준 적은 없다. 사실 비둘기호를 타기 전까지는 이웃 도시로 등하교하는 학생들을 한번에 태우는 '봉고차'를 타기도 했다.(월초에 차비를 한번에 지급한다) 같은 봉고차를 탄 여학생 중 한명이 예뻐서 괜히 한번 더 얼굴 보겠다고, 하교길 정류장에서 미리 버티고 서있었던 적도 비일비재했다. 사춘기였다. 학교 환경은 무난했다. 소림사 같다는 소문을 들어서 걱정도 했지만, 폭력이 횡행하기는커녕 어떤 의미론 구미애들 보다 유순했다. 무식하고 투박한 아이들이었고, 녀석들은 만화책은 [드래곤볼]보다 [시티헌터]와 [북두신권]을 선호하였다. 난 당시에도 [드래곤볼]이 더 좋았다.

 

투박한 아이들 사이에서 음악 이야기할 겨를은 없었다. 적어도 1학년까지는 그랬다. 어떤 계기였는지는 기억도 안 나지만 보이즈 투 멘 1집을 사들었다. 앨범 [Cooleyhighharmony]는 내가 기억하기로는 옛 성음사/직배사 이름으로는 폴리그램에서 발매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직배사의 시대였다. 워너뮤직코리아/EMI계몽사/한국BMG/소니뮤직/폴리그램 등 유수의 거대 레이블산 앨범들이 한국에서 직배의 형태로 유통되었던 때였다. 좋은 점도 있긴 했지만, 나쁜 점도 있었는데 각 직배사마다 앨범 커버 옆쪽 레이아웃이 제각각 통일되어서 오리지널 앨범과 차이가 있다는 점이 그랬다. 간혹 앨범 수록곡란엔 제명을 한글로 번역하는, 안하니만 못한 짓도 하는 직배사도 있었다. 잘하기나 했으면 말을 않지만.

 

아무튼 보이즈 투 멘의 몇몇 곡들은 좋았지만 몇몇 곡에 묻어나있는 끈적함이 조금 취향과 다른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눈길을 돌리니 이번엔 MC해머의 [Please Hammer, Don't Hurt 'Em]가 눈에 띄였다. 하교길에 기대해서 구매했고 집에선 몇 바퀴 돌아가지 못했다. 'U Can't Touch This', 'Pray', 'Have You Seen Her?' 세곡만 듣고 버티기엔 본전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조금 심각하게 재고할 거리가 생겼다. "내가 내게 맞는 음반을 알아보는 능력이 많이 부족한가보다" 하는. 보이즈 투 멘과 MC해머를 계기로 새로운 취향의 물꼬가 텄다면, 지금쯤 듣는 음반들의 취향은 많이 달라졌을 듯 하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되진 못했다. 아마도 당시에도 구매 기준이 바비 브라운이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뭔가 맥을 잘못 짚은 셈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이즈 투 멘은 훗날 영화 [부메랑] 사운드트랙도 구매하고, 바로 그 노래 'End of the road' 때문에 [Cooleyhighharmony] 보강판('End of the road'가 추가된 버전의 앨범/커버도 다르다)도 구매했었다. 그나마 MC해머 보단 보이즈 투 멘 취향이었나 보다. 2집도 구매했었고 말이지.

 

보이즈 투 멘 보다 어떤 의미에서 더 자주 들은 목록은 컬러 미 배드(Color me Badd)였다. 모타운 레코드의 신성 보이즈 투 멘은 정통성을 강조했다면, 컬러 미 배드는 보다 다인종 구성에 적당히 능글맞은 분위기가 있었다. 앨범 [C.M.B.]에 실린 'All 4 Love', 'I Wanna Sex You Up'은 아직도 생각난다. 이 뒤에 나온 앨범 [Time and Chance]도 좋았었다. 이걸 보면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보컬' 기반의 음반들을 좋아했던 것이다. 이후 아무 생각없이 좋아할 수 있는 앨범을 발견하였다. 뉴 키즈 온더 블럭 멤버 도니 월버그의 동생 마크 월버그가 결성한 랩 그룹 마키 마크 앤 펑키 번치(Marky Mark and the Funky Bunch)였다. 앨범 [Music for the People]은 도니 월버그가 프로듀서 전반에 손을 댄 음반이었는데, 당시엔 두 형제의 외모도 제법 닮았었다. 이쪽이 MC해머 보다 보다 더 내 취향이었다. 즉 최종 결론은 약간 백인 취향의 흑인 음악? 이런 식으로 슬슬 랩 넘버들이 한국에도 슬슬 들어오고 있었다.


 

사춘기엔 부끄러운 일도 간혹 생기기 마련인데,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많이 치명타다. 영화 [터미네이터2]를 보고 너무 좋아서 사운드트랙을 수소문하다, 그만 시내 레코드점에서 CD를 훔치다가 적발된 것이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얼굴이 발개진 상태에 CD를 들고 매장을 나왔지만 아직도 생각하면 아찔하다. 91년이 비밀을 간직한 채 조용히 흘러갔다. 그 레코드 가게 아저씨도 수년전에 가게를 접고 다른 일을 시작하셨을게다.



[110506]

 

[7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