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노스페이스, 아이들, 다시 학교.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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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페이스, 아이들, 다시 학교.

trex 2011. 12. 14. 11:00



    겨울이다. 예사롭지 않은 추위의 기운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몸은 자연히 움츠려들고 손이 얼새라 주머니에 깊숙히 집어넣은채 제 갈 길을 간다. 수많은 계층과 수많은 직업군이 한데 모여있는 거리와 대중교통 사이사이마다 눈에 띄는 복장이 있다. 곧 방학을 앞둔 중고생, 특히 남학생들의 패딩 패션이다. 몇년 전엔 교복 위에 덧입은 더플 코트 일색이더니 요샌 검은색을 기조로 한 패딩들이 주류를 이룬다. 개중 상당수는 특정 브랜드다. 아시다시피 그 브랜드는 아웃도어 패션 브랜드 ‘노스페이스’다.


    다시 반복하자면 겨울이다. 추운 계절이니 교복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추위가 당연히 있고 보온의 기능으로 패딩을 입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비슷한 디자인, 비슷한 색감, 게다가 하나의 브랜드를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히 물음표를 머리 위에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왜 노스페이스가 지금 혈기로 가득찬 아이들의 성장기의 외투가 된 것일까. [스타쉽 트루퍼즈]의 ‘강화복’을 연상케하는 과시적이고 힘에 넘치는, 일종의 유니폼 또는 삶의 군복인 셈인가? 똑같은 복장을 입은 아이들은 그래도 경직된 표정이 아닌, 자신감을 얻은 듯 동무들과 왁자하게 웃으며 수다를 떨며 저벅저벅 걷는다.


    낯선 이야기는 아니다. NICE 운동화에 기를 쓰고 매직펜으로 선을 그으며 ‘NIKE’ 운동화로 만들려했던 소년의 이야기는 단편영화 등으로 이미 익숙하다. 시장에서 사온 4줄 세로선의 운동화에서 줄을 하얗게 지우며, 3줄짜리 ‘아디다스’로 만들려던 이야기는 굳이 단편영화로 보지 않아도 바로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 동무들의 무리에 합류하고픈 욕구는 자본주의의 몽둥이가 붕붕 도는 작금이 아닌 과거에도 있어온 이야기였다. 노스페이스가 문제랴. 이미 우린 수년 전에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던, 아이들의 등에 있던 이스트팩 가방을 기억한다. 그 유행의 속사정을 밝히는 것은 아이들의 불가해한 속마음을 밝히려는 흐릿한 랜턴 빛줄기처럼 속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는 놀랄만한 일이기는 하다. No.1이라는 품질 자신감과 그에 따른 만만치 않은 가격대를 지닌 브랜드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서슴없이 구매욕을 보이고 패딩 동무들의 집단에 합류한다. 최근 아웃도어 브랜드 광고 모델이 10-30대 젊은층에 소구력을 지닌 스타들로 좁혀진 것은 이런 시장 움직임과도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노스페이스 매장에 패딩을 구매하려는 30대 이상의 소비층이 ‘교복 패딩’이라는 주변의 인식 때문에 위축된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들리는 판국이다.


    아이들의 윗 세대에 속하는 젊은 웹툰 작가 ‘기안84′는 이런 세태에 대한 반영으로 기묘하고 매력적인 단편 작품을 그리기도 하였다. ( http://kr.news.yahoo.com/service/cartoon/shelllist.htm?linkid=toon_series&work_idx=111 ) 패딩 복장을 한 아이들은 서로 뭉쳐져 하나의 거대한 번데기가 된다. 이 과정 안에서 아이들이 원하는 것에 대한 질문이 무덤덤하게 스쳐 지나간다. 작품 역시 그것에 대해 미완의 답을 내지만, 사실 우리 역시 그에 대해 추측성 답변 외엔 낼 것이 없을 듯 하다. 물론 몇몇은 획일적인 유행 일변도와 적지 않은 가격대, 구매를 위한 계급 추수주의적인 세태를 근심하기도 하다. 많은 아이들이 노스페이스를 입고 있지만, 분명 더많은 대다수의 아이들은 노스페이스를 욕망하는 단계에서 멈춰 구매욕을 누를 수 밖에 없는 엄정한 현실일 터이다.

[기안84의 웹툰 '단편선' 중]

    획일성과 계급적 소속감에 대한 섣부른 욕구는 비단 10대만의 문제일까? 유행과 취미 소비는 기성 세대의 문제이기도 하다. 건강과 여가 - 실은 교류와 교제를 위한 집단 소속감 욕구 때문에 아웃도어 장비와 패션을 소비하는 중장년들, 젬베와 우클렐레 같은 어쿠스틱 악기를 구매하고 실력을 연마하다 내팽개치는 음악팬층, 상당수의 스마트폰 이용자들 모두 유행 추구라는 문제에서 자유롭게 보이진 않는다. 다만 노스페이스 일변도의 '교복 패션'의 아이들이 더 획일화돼 보이는 것은, 그들의 생활 전반과 욕구의 도태가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학교라는 '잿빛' 공간에서 나온게 아닐까한다. 하루 절반 이상의 생활 근거지에서 개성과 동일화라는 아이러니한 두 욕망이 만나고, 이런 아이들의 소비욕이 발현되는 묘한 접점은 노스페이스라는 교복 패션으로 표현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스페이스 자체보다 아이들에게 있어 학교라는 공간이 지닌 의미를 다시금 질문하고픈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한겨레 HOOK에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668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