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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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0화

trex 2011. 5. 30. 17:07

20회라는 턱에서 넘어갈랑말랑하는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얼터너티브의 열풍이 미주 시장을 흔들었지만, 그냥 듣고 싶은 마이클 잭슨과 자넷 잭슨을 듣고 제 방식대로 포이즌과 판테라를 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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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이었다. 남아 있는 인생의 항로를 결정짓는(다고 알려진) 대입을 앞두고 EBS 교재를 벗삼아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잠을 자고 테이프를 사들었다. 그리고 가족은 잠시 재결합하였다. 야간자율학습 시간 전의 우동맛은 아직은 기억이 난다. 학교 부근에 있던 시외버스터미널 이발소에서 [나디아]를 보며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인 기억도 난다. 스포츠 머리 단돈 2,000원이었나 3,000원이었나. 머리와 교복에 대한 통제가 유별났던 학교였다. 어느 년도엔 소풍 때 교련복을 입고 오라고해서 아연했던 일도 있었다. 이런 학교에 다니면서 락 아니고선 뭐가 맞았겠는가. 하하. 그저 학교 건너편 레코드 가게가 고마웠을 뿐이다.

너바나는 안 좋아했는데, 이상하게 펄 잼(Pearl Jam)은 뭔가 있어 좋아했다. 뭐 그마저도 93년 초에 구매한 데뷔반 [Ten], 그리고 연말에 생일선물로 급우에게 사달라고 한 2집 [Vs.]에서 듣기 이력이 끊어졌지만. 펄 잼을 그래도 좋아했던건 너바나와 달리 하드 락풍의 '익숙한' 기운이 있었던 탓이 컸다. [핫뮤직]을 읽어도 관심가는 밴드 글은 더 자세히 읽고, 관심없는 밴드 글은 대충 읽는게 확연했다. 너바나에서 머리 길고 눈 퀭한 저새끼 못생겼다라고 한게 무색하게 21세기 들어서 푸 파이터즈(Foo Fighters)를 좋아하게 되었다. 사실 사람 일이라는게 다 그런거 같다.

 

 

연말 생일 선물 이야기를 하자면, 내 생년월일이 12월이다. 방학 시즌에 덜컥 걸리기 일쑤라 축하받기에도 굉장히 애매한 시점에 있다. 어린 시절엔 그냥 지나가고 그랬는데,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엔 뭔가 '챙겨받기'에 천착한 면이 있었다. 그 해에 펄 잼의 [Vs.]를 선물받은건 고마운 일이었는데, 그만 다른 급우 애가 날 생각해준다고 음악 테이프를 하나 선물해줬다. 당연히 고마워해야 하는데...그래야 하는데 이런. 친구가 선물해준 것은 마이클 볼튼(Michael Bolton)의 [The One Thing]이었다. 이미 그 해의 인상적인 앨범 중 하나가 에어로스미스(Aerosmith)의 [Get a Grip]인 사람의 귀에 마이클 볼튼이 반가울 수는 없었다. 참 미안하게도 급우에게 '고맙긴 한데 솔직히 이런 선물 별로야'라는 표를 조금 드러낸 듯 하다. 고3은 어른이 아니었다. 어렸다.

 

 

그렇다. 93년 중반엔 서태지와 아이들의 2집이 나왔다. '하여가' 한 곡만은 1집 전체만큼 좋아했던거 같다. 그야말로 내내 들었으니까. '난 알아요'의 영어 버전 'Blind Love'를 노래방에서 부를 줄 안다고 자랑했던 급우는 '하여가'에서 그만 난이도(?)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갔다. 아무튼 92년부터 한국의 무대들은 바뀌기 시작했다. 현진영이 나오고, 탁이와 준이가 나오고, 듀스가 나오고. 듀스는 1집이 나올 당시엔 그냥 지나갔는데 이상하게 동네 매장에 꽂힌 2집 [Duexism]이 내내 걸리다 결국 구매했다. 내가 뭘 안다고, 당시에 들으면서 "와 참 알차고 성의있게 만들었구나." 이런 감상을 느끼기도 했다. '우리는'의 중반부는 지금도 들으면 어떤 힘이 난다. 아이고 어느새 94년이 오고야 말았다.

  이미지 출처 : www.maniadb.co.kr / 사이즈 수정 및 편집 

 

수능 첫 세대였다. 어쩌다 1년에 두번 수능을 봐야했던 세대. 지금 생각해보니 이런 별것도 웃긴다. 그리고 이듬해 대학이라는 곳에 들어갔다. 졸업을 하고나니 또 생활하는 지역이 바뀌게 되었다. 앨범을 구매하는 매장도 바뀌게 되었다. 그래도 취향은 단절될 수는 없었다. 집안에 있는 테이프들을 틈나는대로 하숙집으로 가져왔다. 어글리 키드 조(Ugly Kid Joe)의 [America's Least Wanted] 같은 앨범도, [NOW] 시리즈 같은 컴플레이션 앨범도 있었다. 음악은 여전하고 사람들은 새로웠다. 94학번이 되었다. [110527]

 

[11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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