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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축구에 이어 술이다. 둘 다 여전히 관심이 없는 분야이며, 음유한 적이 없는 바깥 취향의 주제다. 예비대학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발휘한 학교 밴드의 노래를 듣다 검은 토사물을 분출하게 한 맥주도, 별반 마땅치도 않는 애교심을 강요한 과내 축구 시간에 마신 쓰레기 같은 막걸리의 뒤끝도, 요즘의 술자리에서도 술이란 것은 그 자체로 별로인 존재였다. 그래도 이번에도 구매해서 읽었다. 김혼비의 책을 사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책에서 좀 더 명확해졌다. 글을 잘 쓴다. 술을 모르니 술자리엔 비유를 못하겠지만, 맨밥과 냉수 하나 있는 식탁 위에서도 젓가락이 자주 가는 김치를 집어서 씹는데 그 맛이 그럴싸하게 남는 식사와 흡사하다. 잘 쓴다. 잘 쓰니 자신이 ‘배추’라고 자칭하는 학창 시절의 그의 일화에 부담스러운..

지금까지의 황정은의 세계를 조성하던 혼미한 인상의 문장은 여전한데, 그것을 구성하는 이야기와 배경은 달라 보인다. 촛불이 채워지던 거리를 중심으로 두 편의 소설은 세운상가 - 청계천 - 광화문 광장 등을 오가며 기록과 인상을 새긴다. 매번 황정은의 소설은 세월호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죽음의 냄새를 드리우며, 부채감과 상흔을 남겼는데 보다 직접적인 호명과 언급을 꾹꾹 눌러쓴다. 그럼에도 안노 히데야키의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오시이 마모루 [스카이 크롤러] 같은 서브 컬처에 대한 언급에서부터 인문 영역 곳곳의 인용과 읽기 취향을 피력하며 지금 시대의 사유와 생생함(생경함?)을 남긴다. 정치와 혁명만큼 중요한 언급은 황정은 단편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일상 안의 폭력과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압제들이다. 이..

사회 안의 익숙한 규정 속에서 가족 됨/자식 됨/시민사회 속 구성원됨의 규칙을 압박하는 부모 세대와의 갈등, 이로 인한 성 정체성과 현실의 충돌 등을 다룬 작품으로 보인다.... 지만 나는 일단 이게 창작론에 대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했다. 외부와 내부가 꾸준히 조성하는 마음의 장벽과 유폐를 강요당하는 마음의 지옥도에서 창작자의 창작 의욕과 행동은 어떻게 싹이 돋고 극복을 향해 한 발가락 나가는가. 그 과정을 보여준다. 가장 좋은 것은 이것이 미완의 이야기이자 서툴게 삶을 경영하는 실시간의 작가의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에 SNS 채널 등을 중심으로 유명세를 타고, 하나의 완연한 출판물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병원이라는 공간을 영상 매체가 선호하는 이유를 알 듯하다. 연애는 기본에 가장 그럴싸한 이성애 기반 유교 가족 휴먼 스토리를 넣기에 가장 무난하고(병과 죽음, 극복이 있다!) 근간에는 정치 드라마 뺨치는 욕망과 가투가 서린 서사도 가능하고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미니어처 화조차 가능한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정세랑 작가가 이 한정된 공간, 어쩌면 드넓게 확장할수도 있을지 모를 이 공간의 주변부 곳곳에 50명을 배치한다.(한 독자는 정확히 51명이라고 한다) 잘 읽히고 재미난 책이다. 굳이 말하자면 내겐 [보건교사 안은영] 보다 [재인, 재욱, 재훈] 계열로 읽혔다. 그렇다. 덜 미숙해도 언제나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바른 마음을 먹는 일반적인 사람들이 세상에 한 톨씩 기여를 하는 그런 이야기다..
퇴근길엔 카프카를국내도서저자 : 의외의사실출판 : 민음사 2018.08.31상세보기작가 의외의사실을 작품 [마루의 사실]을 통해 그림체와 정서를 익숙하게 예습(?)한 나로선 참 놓치기 힘든 도서였다. 과연 그가 이 그림체로 다룰 세계문학의 표정과 이야기는 어떨까 내심 궁금했다. 사실 이런 궁금함은 이미 공개된 해당 출판사의 블로그 연재 시리즈에서 일부 풀리긴 했다. 하지만 문학을 다루는 시리즈이기에 이렇게 묶인 출판물을 읽는 것은 새삼스런 만족감을 준다. 의외로 서사가 명확하거나 통념상 그림과 스토리로 감상을 말하기 쉬울 작품을 다루지 않고 관념과 역사를 다룬 작품들도 포용하고 있다. 물론 출판사 특성상 민음사 세계문학 라이브러리 안에서 선택을 하였겠지만, 일단은 제목처럼 지하철 안의 출퇴근길과 카페 안..
적지 않은 독자들은 [먹는존재](특히 1부)를 소위 ‘사이다 대사 항연’으로 기억하거나 구매에서의 동기로 삼은 듯했다. [먹는존재] 외전의 2부와는 다소 다른 리듬감과 놓아버린(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연한 흐름을 상기한다면 이런 갸우뚱은 배가 된다. 소위 사이다 서사로만 규정하기엔 작가의 장점을 딱 이렇다 규정하기엔 찜찜하단 말입니다. [족하]에서 확연해진 관찰의 결과로 만들어진 서사와 통찰의 대목들은 ‘캬 시원한 탄산’으로 말하기엔 ‘아니에요. 이건 공력입니다’라고 말하고픈 장면들의 연속이다. 직접 낳은 아이가 아닌 고모라는 위계상의 한계와 비혼주의자라는 입장에서의 흐릿한 외부자로서의 자기규정, 이 한계를 명확히 인정하는 주인공이 ‘아이 하나 제대로 키워내기 힘든 세상’을 바라보는 위태로운 개입..
한참 때 강동 쪽에서 데이트를 자주 했다. 아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올림픽공원의 측면으로 돌다 송파구로 빠지는 길 중 하나엔 바로 여성축구 구장 및 연습장 하나가 있었다. 소속된 팀(들)은 있는지 상시 원활히 잘 운영하고 있는 곳인지는 모르나 단정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정작 거기서 벌어지는 시합이든 뭔가를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간혹 매체를 통해 접하는 여성축구라는 존재에 대해 가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는 점 하나, 그 상징성(?)이라도 느낄 수 있다는 장정만은 확실했다. 실제로 그 자신이 프로축구의 열렬한 팬이었던 저자는 ‘정작 내겐 필드에 뛰는 축구라는 경험은 없지 않은가?’라는 의문으로 시작해 축구팀에 덜컥 가입해 버린다. 이것은 호기심과 탐사를 위한 경험치 배..
블로그를 운영하다보니 뜻하지 않게 이 짧은 글 [원문]을 좀 더 보강해 잡지에 실었음 한다는 요청이 있어 응했습니다.잡지 [Chaeg] 1.2월호에 하단의 내용과 같이 황정은의 작품 [아무도 아닌]에 대한 글이 실렸습니다. 다른 독자분 3분과 함께 실렸는데, 세월호 이야길 한 제 입장에선 좀 너무 니같이/나같이 잡았다 싶기도 하구요. 아무튼 적었습니다!== 렉스 (음악 글쓰는 사람)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건, 2014년 4월 16일. 이날은 적지 않은 이들은 알고 있겠지만 예술가들에게 망연자실한 침묵과 더불어 여러 발언의 통로가 막히는 협심증 등의 증후를 주었다. 어디 예술가들뿐이겠는가. 이는 여러 시민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발언해야 할 책무감을 씌우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음악인들은 음악을 만들고… 문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