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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신기하게도 데뷔 시기 이야길 하는 감독의 육성 자체가 자신들의 작품을 닮아있다. 허진호의 이야기는 허진호 답게 얌전하고, 양익준의 이야기는 양인준 답게 거칠다. 양익준에겐 동년배들과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태우던 질풍노도의 시기에 봉지 안에 들어간 본드 이야기가 삽입되고, 이준익의 이야기엔 제작사에서 감독으로 들어서기까지의 투박한 덩어리들의 이야기가 산란하게 들어가 있다. 마치 자신의 필모그래피 모양마냥. 봉준호 같은 재담꾼들의 이야기가 탁월하게 재밌음은 말할 나위가 없고. 영화 현장에서의 상세한 고군분부 보다는 입봉 하나만을 위해 달려온 삶의 이력과 지나고 난 뒤의 소회에 주력하고 있다. 즉 영화학도들의 심금보다는 보편적 독자들, 특히나 삶의 어느 순간에 닿은 이들에게 줄 울림도 고려하고 있는 듯한 책...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읽기 전에 진작에 [파씨의 입문]으로 입문했어야 했다. 분명 특유의 리듬이 있으나 쉽게 타기엔, 초행으론 어려움이 있는 화법(파씨의 입문)과 동시에 환상성(옹기전)을 품고 있는 황정은식 세계관을 소설집이 고이 품고 있었던거다. 개인의 성장사와 맞물린 에피소드(디디의 우산) 모티브가 [계속해보겠습니다] 같은 장편에서도 살짜기 포함되어 있으며, 무엇보다 망가진 가족과 근친의 관계망(야행夜行)에도 불구하고 지리하게 지속되는 삶의 감각(낙하하다, 묘씨생猫氏生)이 보다 적극적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 다부짐은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처연한 절망과 돌연의 순간보다 따스한 호흡을 가지고 있다. 계속해보겠습니다국내도서저자 : 황정은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14.11.05상세보기 파씨의 입문..
제목만 보자면, 당신의 감수성을 간지럽힐 듯 하지만 간지럽힌다기 보다는 긁어준달까. 가벼운 독설가 정바비가 차려놓은 이 '불편의점'은 개인주의와 위악 사이의 어떤 근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섹스를 중심으로 한 연애에 관한 소회와 입장정리들이다. 이런걸 꺼리는 독자들도 많겠지. 나도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비치 보이스와 스피츠에 대한 사랑을 숨기지 않는 이 음악인은 '그냥 음악인이 책을 냈다' 정도의 의미쯤은 넘는 필력을 과시한다. 개인 프로젝트와 밴드 활동 사이를 오가는 한 음악인의 작사작곡의 뿌리를 탐방하기엔 좋은 근거 중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네. 너의 세계를 스칠 때국내도서저자 : 정바비출판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4.06.03상세보기
일단 재밌고 잘 읽힌다. 일본에서 발간된다는 이야길 들었을 때 내심 국내에서도 출간되길 바랐는데 아무튼 다행이다. 외부의 시선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이쪽 씬의 역사와 함께한 사람인만큼 씬을 보는 시선도 어느정도 정확한 편이고, (지금은 사라진)청계천 일대의 레코드 수집기는 남의 일이니 시츄에이션이지 나름 시큰함이. 인터뷰 위주의 구성이나 그럼에도 하세가와 요헤이의 여리면서도 강단있는 캐릭터성이 여기저기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이런 부분도 흥미로웠고... 음악 이야기에 어느 정도만 관심이 있다면 쉬이 따라올 수 있는 구성! 고고! 대한 록 탐방기국내도서저자 : 하세가와 요헤이(a.k.a.양평이형) / 신혜정역출판 : 북노마드 2015.01.07상세보기
[오무라이스 잼잼]으로 최근 가장 잘 알려진 조경규의 이력 모음집. 그의 이력과 함께 한 주요 클라이언트와의 사연, 그에 따른 포트폴리오가 빼곡 차 있다. 웹디자인에서부터 각종 그래픽 디자인, 딱지 치기 같은 추억의 아이템 굿즈, 기업 및 공익 관련 수주 작업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웹툰 작가로서의 그의 작업만 봐온 이들에겐 이채로울 것이고, 일부 웹에 알려진 그의 중국 유학 시절 작품들과는 또다른 공정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짖궂은 미학과 키치와는 좀 다른 개념의 고퀄리티 지향성이 엿보인다. 아트워크 작업으로 자신만의 일가를 꿈꾸는 이들에겐 좋은 자극이 될만한, 국내의 드문 사례집. 조경규 대백과국내도서저자 : 조경규출판 : 지콜론북 2014.12.11상세보기
[퀴즈쇼] 덕에 김영하에 대한 잡티 같은 관심을 접을 수 있었는데, 우연치 않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날렵하게 잘 읽히고 분명한 흡입력이 있다.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정의감과 의분을 품고 읽다가 막판에 하나둘 아아 무너지는 구조라니. 기록과 메모들은 [메멘토] 주인공의 문신마냥 허무한 것이었고, 기억으로 쌓은 육체는 실은 텅빈 공간이었다. 개인이 항변할 수 있는 크기를 넘어선 타인의 규정과 외부의 완강함, 기분좋은 무기력함을 선사한다. 살인자의 기억법국내도서저자 : 김영하(Young Ha Kim)출판 : 문학동네 2013.07.24상세보기
나이 42세. 병으로 부인을 보낸 홀아버지, 아이를 낳자마자 집을 나간 아내, 조용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않고 '아버지'라고 호명해주지 않는 딸, 그리고 나이 42세의 자신. 난데없이 직장에 사표를 내고 만화가 전업을 선언한다. 모두가 환영할리가 만무하다. 재능이 있는지도 불분명하고 무엇보다 당장에 성과가 나지 않는 일이다. 가능할까? 캐릭터의 매력도로 보자면 1권으로 판단내리기 힘들다. 권수가 쌓일수록 캐릭터들의 사연이 쌓이고 교차하며, 이야기들이 하나로 수렴한다. 그 큰 줄기는 다름아닌 '아버지'이다. 아버지들은 무책임하게 사표를 내고, 장사를 시작하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자살을 성공(?)하기도 한다. 미안하다고 입을 열기도 전에 황망하게 죽어버린 아버지 이야기도 있다. 작품은 다소 집..
마치 월터 아이작슨의 [스티브 잡스]의 부록 같은 저서인데, 재미가 아무래도 덜하다. 아무래도 태생에 대한 스토리부터 시작해 LSD, 불미스러운 퇴장, 췌장암 같은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잡스에 비해 조너선 아이브의 이야기는 범생 계열이거니와 인생의 기복도 비교적 덜 하다. 이 책을 집을 이들은 아무래도 나같이 기업 애플 안에서 극도의 심플한 디자인을 추구하던 조너선 아이브와 일군의 디자인팀들의 고군분투한 사정이 궁금해서가 아닐까. 그마저도 순탄하게 읽히니 쉬이 넘어간다. 다만 결정적으로 그게 나에게 뭘 남겼는지는 다소 흐릿하다. 알력 다툼과 빛나는 업적 안에서도 달라붙은 얼룩 같은 과오도 짚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쪽은 역시나 함량이 낮다. 조너선 아이브국내도서저자 : 리앤더 카니(Leander Kah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