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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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1화

trex 2011. 7. 6. 15:25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본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하드락과 팝 사이에 자연스럽게 오락가락하던 고등학교 시절을 마감하고 대학에 입학하는데...


+ 음악취향Y에서 업데이트 : http://cafe.naver.com/musicy/13880


대학 입학을 하였다. 예비대학에서 본 학교밴드는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다. 본 조비의 넘버와 B612의 넘버 '나만의 그대 모습'을 번갈아 불렀지만 와닿는건 없었다. 학과 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확실히 감이 왔다. 음악 이야길 나눌 사람은 없겠구나. 1년 선배 중 한명이 머틀리 크루와 건즈 앤 로지스 등을 알고 있었지만, 이야길 한두번 나눠보니 어느만큼 '얕은지'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내 하숙방은 학교와 거리가 좀 있었고, 하숙방에 있으면 나홀로를 위한 음악은 흘렀다. 같은 하숙집에 있던 아이들이 내가 듣는 목록에 대해서 그렇게 이해를 잘해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가 그렇게 골수가 아니었음에도.


건즈 앤 로지스에 대한 믿음과 기다림 때문에 [The Spaghetti Incident?]를 구매하였다. 건즈 앤 로지스는 갑작스러운 팝펑크의 부흥을 예견이라고 한걸까? 아니 뭐 그런거 같진 않다. 그저 하고 싶은걸 했을 뿐인데, 전작이 하고 싶은대로 2장을 한꺼번에 낸 것에 반해 이 쪽은 아무래도 평과 반응이 갈렸다. 7,8분 대작이나 4,5분 하드락도 부재했던 이 앨범에 대해서도 나 역시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좋아했었다. 건즈 앤 로지스니까 이미 뭘 가린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했던 것 같다. 그 마음 때문에 [Chinese Democracy] 같은 물건도 10년 넘게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결과로 보자면... 아무튼 적어도 저 때는 슬래쉬도 있었고, 더프 맥케이건도 있었다. 그게 중요했다.



아무튼 팝펑크의 시대가 왔다. 당연히 첫 수혜자는 그린 데이(Green Day)의 [Dookie]였다. 제법 살벌한 가사에도 불구하고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Dookie' 덕에 이 앨범을 구매한 이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학교가 있던 도시의 시장 레코드점(아직도 있더라!)에서 본작을 구매해서 들었다. 그래도 이거 하나 들었다고 펑크에 대해서 알아요라고 여기저기 나불대지는 않으니 안심하셔도 되겠다. 35분 남짓한 총 길이에 인상적인 기억을 꼭 남기는 곡들의 구조. 돌이켜보고 지금의 모습에 대비해보면 그린 데이는 이런저런 의미로 많이 커진 듯 하다. 제작한 앨범이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원작으로 서는걸 보면, 역사적 의미로나 장르적 특성으로나 이미 펑크라는 테두리 바깥에서 이제는 그린 데이를 설명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Dookie]의 친밀함에 비하면, 나인 인치 네일즈의 [The Downward Spiral]은 친밀함은커녕 불친절과 성벽의 완강함으로 가득한 물건이었다. [핫뮤직]에서 이 앨범에 대해 나름 설명을 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글로써는 상상히기 힘든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처음부터 좋았고 지금에 와선 시큰둥한 앨범이 있고, 처음엔 당혹스러운데 감히 인생을 걸고 말하는 앨범이 있다. [The Downward Spiral]은 후자에 가까운 앨범이 되었다. 나 혼자서 '이것이 내 진짜 얼터너티브였다'고 말하는 앨범.(글 속에 커버 이미지는 당시 구매했던 커버 이미지다. 물론 지금은 다른 커버 이미지로 더 유명한 앨범이다) 이후 올리버 스톤의 영화 [내츄럴 본 킬러]를 보러 갔음도 물론이거니와 사운드트랙을 산 것도 당연한 일이 되었다. [내츄럴 본 킬러]를 보고 난 뒤 선배와 말없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누며, 얼굴을 마주쳤다.



"아 (씨발) 최고다..."
고등학교 당시 없었던, 들끓고 파괴적인 뭔가가 당시에 내겐 있었다.


이 정도만 적어도 한 해의 기억으로 좋다 싶은데, 결정적으로 넥스트의 [The Return Of N.Ex.T Part 1 : The Being] 앨범은 대단했다. 내가 이 음악 테이프의 비닐 껍질을 벗기고 플레이 버튼을 눌러 듣는다는 것 자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했다. 어느 나이대 이상이 되고 나서부터는 그런 기분 자체에 대해 무던해졌다. 즉 그 때의 입장에서야 가능했던 기분이랄까. 아무튼 아트워크나 가사나 내용물이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날 설득시켰다. 왜 그랬나 부끄럽지도 않다. 그냥 1994년은 딱 그랬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좋아했던 1집과 다른 감정으로 2집부터 넥스트를 대했던 것 같다. '날아라 병아리'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맘에 들었던 앨범이다.

이미지 출처 : www.maniadb.co.kr / 사이즈 수정 및 편집 

넥스트의 앨범은 94년의 앨범이자 1학기의 앨범이었다. 여름방학이 되었다. 창원에서 신병검사를 받았고 - 본적이 경남 밀양인 탓이다 - 3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더운 여름이었다. 마산과 부산 사이 도로안에 갇혀 누군가가 컴백 방송을 한다고 하길래 전전긍긍했다. 친척분의 자가용은 느렸고 방송을 보기는 글렀다. 앨범을 사는 수 밖엔 없겠다 싶었다. 그게 서태지와 아이들의 [3집]이었다. [110706]


- 12화에 계속 -

2011/04/22 - [음악듣고문장나옴] -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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