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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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16화

trex 2011. 9. 27. 09:30

[노래 한 곡과 A4지 한 장] 시리즈에 이은 새로운 기획. [가늘고 짧은 취향 편력기.R] 입니다. 이 시리즈는 한 사람의 청소년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오는 음악 편력기를 통해, 취향이 한 인간의 성장과 사고 전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인류학적 고찰...이 아닌 그냥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성질머리의 한 예시입니다. 여러분은 앞으로 이 연재물을 통하여 이문세, 뉴키즈온더블럭, 건즈앤로지스, 신해철, 마를린 맨슨, 툴 등의 다양한 뮤지션들을 알차게 만날 수 있습니다라고 적기엔 너무나도 죄송할 뿐입니다. 아무튼 시작합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 입대 후 듣기를 원하지 않은 음악 사이에 놓이다, 몰래 듣고픈 음악들을 한두개씩 모으기 시작했다.

 

입대 후 이등병들은 아무래도 첫 휴가, 100일 휴가를 기다린다. 요새도 100일 휴가라고 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고향으로 내려가는 차 시간대를 느슨하게 잡고 연신내의 오락실에서 '스트리트 파이터3'를 구경하였고, 서울역 부근에 있던 레코드 매장에서 들을 앨범을 찾았다. 듣는 음악 테이프 정도는 반입이 가능했던 당시의 헐렁한 보안 규정이 이럴땐 고마웠던 때다.(물론 고참들이 후임병들이 바깥에서 뭔가를 사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좋아하진 않았다) 패닉의 1집도 사듣지 않았던 나였는데 괜한 이끌림에 패닉의 2집 [밑]을 구매하였고, 당연한 일이라는 듯이 메탈리카의 [Load] 앨범을 구매했다. [게임라인]과 [IMAZINE] 등의 잡지를 넣은 쇼핑백을 그만 서울역 공중전화 위에 놔뒀다가 깜빡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럼에도 다시 자리에 가보니 있더라. 훌륭한 서울의 시민 의식?


 

패닉의 앨범이나 메탈리카의 앨범이나 공히 당대의 논란작(?)이었다. 패닉은 맘에 들었다. 자대 배치 받고 난 뒤에 TV 모니터 속 패닉은 색스폰 부르고 머리 세운 보컬 남자가 피아노에서 '달팽이'가 어쩌고 노래 부르던 비호감이었는데, 이 앨범은 다른 분위기였다. 적어도 이 노래들을 TV 속에선 상당히 보기 힘들 것은 확실했다. 어느 DJ나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를 청취자들에게 들려주면, DJ 쪽이나 청취자 쪽이나 심난하지 않았을까. '벌레'나 'mama'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선생님 보고 이 악 물고 다굴 당할 대기나 타고 있으라는 노래나 어머니 이런 썅 미친 년 이라고 부르는 노래가 세상에 널리널리 퍼질래야 퍼질수가... 가장 장관은 '삐삐밴드'와 함께 한 '불면증' 이었다. 끝간데없이 끝까지 뻗어가고 꼬여가던 그 곡. 앨범 가운데서 '江'도 참 좋아했다. 관심 없던 팀에 대해서 호의가 급상승하게 되었다.


 

반면 메탈리카의 [Load]는 'Hero of the Day' 정도 건진 듯 하다. 즉 '얼터리카'가 되어서 싫었다기 보다 - Hero of the Day도 쎄기는커녕 하드락 주사 맞은 호소력 넘버 아닌가 - 그냥 내가 원하는 그 어떤 것은 아니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라는 징조야 어차피 [Metallica] 앨범에서부터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음해에 [ReLoad]도 구매하고, 이 밴드가 먹고 사는데 벼룩 내장만큼의 기여를 계속하게 되었다. 아무튼 다른 부대는 4박 5일인데, 우리 부대만 유독 3박 4일의 짧은 100일 휴가였다. 후딱 지나갔다. 사회여 또 잠시 안녕.

 

내무실에 가면 김건모의 '스피드' 앨범만 하루 종일 틀어대는 통에 살의를 느끼게 만들었던 말년 병장도 있었고 - 살의가 병장을 향한 것인지 김건모를 향한 것인지는... 아마 둘다 였을거다. - 클론이 라이브만 한다고 우긴 내무반장도 있었다. 이 사람들 사이에 침상을 닦다가 이승환이 [빅쇼]에 나온걸 '들은 적'도 있었다.(침상 닦다가 모니터를 빤히 쳐다보면 고참이 휴지통을 내 머리를 향해 던졌을테니) 이승환은 '천일동안'의 피날레 부분에서 무대의 아래로 내려갔는데 나는 침상만 닦고 있어. 이승환은 앵콜을 위해 다시 무대 위로 올라오는데 나는 침상만 닦고 있어. 뭐 군대란 곳이 그런거 아니겠는가.

 

한편 신해철과 넥스트의 앨범은 그때가 한참인지 잊을만 하면 나왔다. 96년도엔 [The World] 라이브반이 나온걸 늦게 알고 외박 때 구매했고, 하루는 무기고에서 예비군용 칼빈 소총을 기름으로 닦는데 'Here I stand for you'가 라디오에 나와서 외박 나가는 후임병에게 사달라고 부탁했었다. 97년 상병 휴가 때였던가. 그때는 [R.U Ready?] 앨범을 샀었다. 상병 되고 난 뒤엔 기상 시간에 일부러 'Here I stand for you'를  침상을 개면서 내무실에서 들었는데 후임병은 후임병대로 고참은 고참대로 싫었을거다. 그 말년고참이 그랬듯 김건모의 '스피드' 앨범처럼 하루종일 틀지는 않았지만.


 

같은 내무실 동기 중 한명이 음악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악이 나하고 많이 달라서 문제긴 했지만 그 녀석 덕에 채리나 등이 결성한 3인조 디바(이름 참 거창해!)나, 고영욱이 활동했던 Player 같은 팀의 음반이라는 것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 고영욱과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남자 멤버는 1집에 '무려' 유재하의 '지난 날'도 리메이크를 했다. 참담한 노래방질... 세상엔 아무튼 별 음악인들이 있었다. 그 친구의 목록 중 개중 이현도 1집이나 [사랑해] 싱글 앨범 같은 괜찮은 목록들이 있기는 했고, 무엇보다 고마운게 그 친구가 그냥 무상으로 내 품에 턱하니 스매싱 펌킨스의 [멜랑꼴리...] 앨범을 준 적도 있었다. 그것도 수입반으로! 부클릿에 향수 내음이 난다던가하는 그 앨범이었다. 나는 당시 무슨 생각으로 그게 고마워서 프로디지의 [The Fat Of The Land]를 사주기도 했다.(나중엔 후회했다 ㅎㅎ) 부대 안의 우정 이런건 아니었고, 서로의 편의가 맞아 들어간 것이었다. 시간을 견대낼 수 있다면 좀 미운 구석이 있어도 서로 참아내던.

 



[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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