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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구입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이상한 나라의 조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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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구입을 고민하는 당신을 위한 이상한 나라의 조언.

trex 2010. 8. 16. 10:29
장대비가 물러간 중부 지방의 조용하고 눌린 일요일. 조용하게 그러나 은근히 루머로 퍼졌던 아이폰 예약판매 소식이 공식화 되었다. '직영점도 아니고 그냥 대리점에서 예약한 너희들은 순서 밀려 ㅋㅋㅋ'라는 공식의 위엄, 금주 수요일 오전부터 예약이 시작되며 출시는 9월이라는 아직은 흐릿한 상황이다. 몇몇 사람들의 흥분과 설레임이 웹을 통해 기분 좋게 전해지는 요즘, 난데없이 스마트폰 구매 가이드를 작성하게 되었다. 적극 참조하지 마시고 경험자의 현실성 있는 개그로 받아주시면 되겠다.


1.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그게 당신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인가. 되짚어보자. 이어폰 안 끼고 지하철에서 DMB 보다가 욕처먹는 짓은 일반폰으로도 가능하다. 당신은 그거 외에 뭘하고 싶은가? 지하철 노선도? 일반폰에 내장되어 있잖아. 버스 언제 오는지 알고 싶다구? 확인 번호 있잖아. 메모 및 스케쥴 관리? 프랭클린 다이어리 내장폰도 있잖아. 카메라? 장난하나. 그 어떤 것도 뛰어넘는 소유욕의 발화 정도가 아니라면 숨 고르고 다시 짚어보자. 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2. 당장에 회사에서 지원해준다면.

그럼 괜찮다. 약정이 지속되는 기간 동안의 일정 지원이 보장되면 괜찮다. 회사가 널 저버릴거 같다. 그럼 주의해라. 당신이 회사를 저버릴거 같다. 그것도 고려해라. 회사도 안정적이고 당신도 눌러 살겠다면 괜찮다. 하나 장만해봐라. 더욱 좋은 것은 당신이 아무리 손만 대도 기계가 맥을 못 추는 저주의 소유자라도, 옆자리 최대리가 당신보다는 스마트폰에 대해서 좀 꿰고 있다면 필요할 때마다 SOS를 치면 쓰는덴 지장 없을 것이다. 물론 최대리는 당신을 귀찮게구는 게으른 등신으로 알겠지만, 당신은 귀찮게구는 게으른 등신이 맞으니까 상관 없다.


3. 엄밀히 말해서 이건 폰이 아니다.

당신은 그동안 핸드폰을 사용하면서 이런저런 장애를 겪어본 적이 있을 수 있다. 컬러 액정이 맛이 간다거나 키패드가 언젠가부터 말을 안 듣는다거나 수신율이 이상하다거나 뭐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이 스마트폰을 가진다는 것은 언젠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폰이 벽돌이 된다거나, 잘 사용하던 프로그램(이걸 스마트폰 상에선 어플[리케이션]이라고 부른다)이 환장하게 느려진다거나, 재부팅(말 그대로 재부팅이다. 당신이 자주 겪는 그 문제의 재부팅)이 필요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여는 J과장의 일상] 같은 신문 기사가 전해주는 쾌락, 그게 어느정도 사실일수는 있다.(그런데 사실은 아니다) 그런데 그 쾌락만큼의 고민도 당신이 짊어지게 될 것이다. 


4. 남의 말을 너무 듣지 마라.

당장에 사겠다고 결정을 내린 점심시간 후부터 주변 사람들은 옆에서, 메신저로, 술자리에서 뭐라고 조언을 할 것이다. 귀로 듣고 속으로 무시해라. "햅틱 UI를 애플이 베낀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실제로 본 적이 있다. 굴지의 글로벌기업 삼성에선 세뇌교육도 시키나! 암튼... 타인이 전해주는 조언과 지식은 그 사람의 협소한 머리통 속에서 나온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맞는 것도 있겠지만 틀린 것도 부지기수이다.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여는 J과장의 일상] 같은 신문 기사들처럼 스마트폰이 생긴다고 하루와 일상이 송두리채 뒤바뀌진 않는다. 그렇게 바뀌는 사람은 이미 그럴 수 있는 소양을 미리 갖췄거나, 준비를 했거나, 그렇게 안간힘을 쓰는거다. 아직도 상당수의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인코딩 동영상을 보고 트위터를 확인하고 비쥬얼드 퍼즐이나 맞추면서 집에 간다. 당신이 J과장처럼 될려면 일정부분 분명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폰은 노인들도 바로 5분 내에 적응이 가능한 UI라는 말도 너무 믿지 마라. 전국 부모님들이 다 그렇다는 보장도 없다. 당신도 그러하다. 


5. 요금제

금리상승기에;; 기존에 사용했던 요금과 스마트폰 구입 이후의 요금의 차이가 2배, 3배 정도면.... 좀 위험하다. 고려해봐라.


6. 기타 부수적인 소비도 일부분 불가피하다.

당장에 스마트폰을 구매했고, 써본다. 이 터치감과 UI 죽여준다. 감탄한다. 그러다보면 사실 눈 돌아가는 데가 있다. 유료 어플들이 그렇고, 악세사리가 그렇다. 악세사리는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한데 몇 만원 받아먹는 케이스, 거치대부터 시작해 말도 안되는 오디오 시스템까지 다양하다. 물론 무료 어플 사용과 '악세사리 없음' 노선으로 간다면 이 부분은 조절이 가능하다. 아무튼 좀 꾸미겠다고 결정하는 순간부터 예산이 예상 외로 들어간다는 것도 알아두자.


7. 관련 카페 가입이 도움이 된다.

어떤 운영체제, 어떤 스마트폰 라인업이든 공고한 대표급 카페들이 형성되어 있다. 구매 전에 가입해두고 분위기와 누적된 자료들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구매 후에 후회할 부분(분명히 생긴다!)과 그에 대한 대처가 가능할 수 있을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요새 카페 가입 제도는 좀 뭐 같아서 어느 정도 활동을 해줘야 승급을 해주지만 감당해서 몇가지 조언이라도 얻고자하는 생각이 있다면 더러워서라도 좀 해보시길. 꼭 카페 가입이 아니더라도 요금제 파악부터 시작해서, 요런저런 리뷰들, 3G와 와이파이의 차이점, 운영체제별 요즘 분위기 같은 것들을 1개월~2개월 고민하면서 알아봐두는 것도 좋다. 아 옵티머스Q 위키 지식란 같은 것들은 꽤나 쓸만했다. 다른 스마트폰 라인업은 어떤지 모르겠다.


8. 스마트폰 이용 선배들은 사실 일정부분 손해를 감수하고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주변의 사람들, 모두 다 제각각 이유가 있다. 거창하게 모바일 디바이스 전쟁과 클라우드 컴퓨팅의 미래를 내다보고 내가 그 물결에 타겠어~라고 다짐한 돈키호테들도 있고, 그냥 개발자로서 구매한 사람도 있고, 회사에서 반강제로 이용하라고 해서 산 사람들도 있고, 순수한 이용자도 있다. 특히 순수한 이용자들은 알고 있다. 어떤 부분이 좋아서 사용하고 있고, 어떤 부분은 포기를 감내하고 사용하고 있는지를. 블랙베리 이용자들은 타 운영체제 UI의 쾌락과 큼직한 화면 비율이 싫어서 구매 안한게 아니다. 아이폰 이용자들은 거지 같은 사후 서비스 정책을 몰라서 구매한게 아니다. 옴니아2 이용자들은...관두자.

다 감내하고 구매했고, 만족하며 쓰고 있고, 향후엔 다른 경험치에 대해서 고민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게시판에서 박터지게 싸우며 시간 낭비하고 있는거다. 스마트폰 이용에 대해서 그들은 어느정도 묘한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물론 바깥 세상에선 서로들에 대해 철저히 무심하다 ㅎㅎ) 당신은 거기에서 딱 한가지 사실만 깨달으면 된다. 아 완벽한 스마트폰이란 없구나라고.


9. 구매를 결정했다면 믿을 수 있는데서 사자.

구매해놓고, 아이폰으로 넷스팟존 이용 가능하다는데 어떻게 써요? 엉엉 같은거 묻지 말고 알아서 해주는 곳이나 잘 가르쳐주는 곳에서 구매해라.


10. 보너스트랙 : 동영상 볼 때 이어폰 끼자.

안 끼면 혼난대이. 좀.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 당신이 스마트폰을 구매한 후엔 독서 등의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지 모른다. 구매 후의 시간 안배도 될 수 있으면 진지하게 고민해봐라. 스마트폰 산다고 누가 떠먹여주는 손이 생기는건 아니다. 더욱 근면해져야 하는 의무감, 이게 스마트폰이 당신에게 주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