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20. 12. 3. 16:59

게임업계와 저널은 매해 연말연시에 고티 (GOTY : Game Of The Year)라는 이름으로 결산을 한다. 나야 한정적인 플랫폼과 라이브러리로 게임 이력은 극히 제한적이니 나 홀로 고티는 그 점을 이해하시길. 이미 매체들은 고티를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라스트 오브 어스 2]에서의 애비를 이미 열심히 마음속으로 죽이고 있겠지.

- 올타임 레전드 : the witcher 3 complete edition

영미권도 아닌, 동유럽에서 날아온 AAA급 RPG 대작이란 설정은 어쨌거나 낯설다. 의기투합한 선인들이 뭉쳐서 우정과 연애 감정을 두고 세상에 기적을 행사하는 JRPG 대작과도 다르고 - 심지어 야숨조차도 이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듯 - 게임을 시작한 내게 다가오는 것은 고전 화풍과 극사실주의가 교차하는 디자인과 주변의 수없이 지나가는 NPC들이 주인공인 나를 대개는 경멸하는, 자학적인 신선한 경험이었다.

거리와 왕국의 부끄러운 해결사인 나, 게롤트는 간소한 마법 한 두가지와 딱딱한 도덕률 같은 얼마 안 되는 재산으로 지탱하다 암살도 하고, 야수들을 도륙하고, 구차한 일들을 하며 잠수도 하고 낙하하다 골절로 사망한다.

1편과 2편을 하지 않고 스토리와 세계관 주입도 안된 낯선 상태지만, 그 일들을 진행하다 어느새인가 나는 익숙해진다. 나는 내게 심적으로 의존하는 몇 안 되는 일들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고 혐오하는 몇몇 이들을 가급적 원하는 대로 처리해간다. 그때쯤 알게 된다. 끝을 봐야겠다는 다짐과 개조-인간인 내 자신보다 훨씬 강력한 초자연적 존재들을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술 취한 취객의 토사물과 불륜 및 음모로 인해 교살 당한 사람들의 혈흔이 왕국의 그림자 뒤편 여기저기에 남은 길바닥을 걸으며 탐정질을 하고, 퇴마를 하며 성장을 하고 몇몇 불편한 UI과 동시대 다른 게임에 비해 표 나게 다른 조작법을 견뎌낸다. 심지어 옹호하게 된다... 

그렇게 본편과 두 편의 DLC - [하츠 오브 스톤], [블러드 앤 와인] -를 온전히 끝냈고, 결과는? 게임은 잠시 종료일지 모르나 이 패키지는 간직해야 할 물품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난 술을 전혀 못하지만, 이 왕국의 맥주와 와인을 들며!

- 올해의 게임 : animal crossing : new horizons

참 닌텐도 답고, 그들이니까 능숙하게 만들 수 있는 타이틀일지 모른다. 귀농 욕구를 채워주는 성인적 타이틀이면서도 놀이터 모래 가지고 놀기 / 인형 옷 입히기 / 장난감 스토리 만들기 등의 욕구도 만족시키는 유소년적 타이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걸 1년이 넘는 실시간을 바탕으로 엔딩 없이 진행한다. 좋은 게임은 간혹 게임이라는 매체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데, 역시나 동물의 숲 시리즈 또한 그런 자격을 지닌 타이틀이다. 

- 올해의 JRPG : xenoblade chronicles definitive edition

자기들의 콘솔 생태계에 어떤 식으로든 [파이널 판타지] 같은 대표급 대작 JRPG를 뿌리내리고 싶어 했던 욕망은 이 시리즈를 낳은 듯하다. 턴제 전투 방식에 실시간 액션을 가미하려던 시도는 훗날 동시대 대작과 유사한 계열을 형성했고, 오픈 월드형 세계관은 근간의 경향과도 통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는 거대한 자연을 묘사하는 필드의 아름다움과 반복되는 서브 퀘스트의 나른함을 합친 결과다. 분명 인상적인 풍광과 캡처하고픈 비주얼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리마스터 당시의 경황 탓으로 인물의 모델링은 분명 한계가 뚜렷하다. 이 부족한 부분에 대한 정립은 2편에서 어느 정도 방향을 찾은 모양.

한편 J-서브 컬처에 흔히 볼 수 있는 인물형과 서사는 익숙한데, 딱 덜 느끼한 경계선에서 아슬하게 버틴 듯하다. 여담이지만 이 쪽 시장의 창작물이 제법 천착하는 소멸과 재생의 구조는 매번 씁쓸하면서도 흥미롭다. 원폭의 나라라 그런 것인지 인류의 탄생과 역사의 형성을 명분으로 매번 리셋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듯하다.

- 현재의 영 건 : HADES 

자이언트 게임즈가 좋은 디자인과 일러스트를 넘어 실제로 아주 재밌는 게임을 만든 역량의 결정판을 만들어낸 연말이로구나. 그동안 얼리 액세스를 통해 다듬은 공정의 결과가 잘 나와 제작사에 지지를 보내온 사람으로서 참 좋았다. 신화적 살부의 공간으로 가보자. 얏호.

> 관련 외부 작성 쓰레드는 여기서 : https://minimap.net/user/trex00/post/1072494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20. 2. 20. 19:39

웹진 음악취향Y( MUSICY.KR ) 의 연말 결산의 일환으로 싱글 결산을 하였습니다. 제가 언급을 적은 곡들에 대한 목록을 정리하였습니다. 장르 명칭은 수석 에디터 기준으로 표기하며 명칭과 분류는 이에 대해 저는 100% 동의한 것은 아님을 밝힙니다.

=== = ===== ======

포크/팝 부문

드린지오 (Dringe Augh) 「Breeze」- 올라탄 열차의 진동에도 아랑곳없이, 갈 길을 따라 열어주는 첼로의 굵은 선율은 보이지 않는 여정의 불안을 덮어준다. 방랑하고 고민하는 이에게도 이것은 안식이었을지 알 수는 없다. 그의 기타는 쩔꺽쩔꺽하며 제 주인의 마음을 알듯이.


스텔라장 (Stella Jang) 「일산화탄소」- 음반의 대표 자리를 차지한 「미세먼지」 대신 앞서 자리한 이 곡이 조금 더 땡겼다. 이젠 잊어도 될 상대에 대한 맵싸한 맛의 원성, 이과식 위트 - 그래, 그의 곡엔 언제나 전매특허 같은 위트가 있었다 - 이 위트와 연계한 랩, 그래도 새길 것은 새기는 쌉쌀함의 여운이 잘 살아있다.

헤비니스

에이틴에이프릴 (Eighteen April) 「Dreamer」- 별다른 생각이 없었고, 웹진 안에서도 일찍이 주목했던 신진 중 하나였던 밴드였건만 정작 나만 무심했다. 클린 보컬과 그로울링의 교차, 튜닝의 무게감과 타격감이 기분좋게 난도하는 음반 곳곳의 대목은 진정한 각인을 새겼다.

체인리액션 (Chain Reaction) 「In The Beginning : Album Ver.」- 명료하게 들리는 가사, 위악으로 무장하지 않은 태도, 주먹을 움켜쥐게 만드는 사운드가 ‘올해 저물기 전 한국 스크리모 한 장 획득하는구나!’라는 작은 희열감을 안긴다.

록/모던록

까데호 (Cadejo) 「여름방학」-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탐구생활》에서 가장 쉬운 페이지의 해답을 일찌감치 적고, 차가운 방바닥에 드러눕던 그 여름방학의 시대를 딱 닮았다. 무대에서 얼마나 자신의 연주에 대한 확신과 여유를 지닌 사람인지 확연히 드러나는 이태훈의 캐릭터와 더불어, 세 사람이 자아내는 리듬감과 그루브함은 일상의 완충 과정 자체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Eyre Flew 「Moeve 」 - 포스트록이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상은 단순히 하늘색이라고 형언할 수 없는, 매번 다른 색채감이다. 익숙한 듯하면서도 새삼 참 다르구나 깨닫게 하는 매번의 뭉클함.

로큰롤라디오 (Rock'N Roll Radio) 「Take Me Home」 - 양보 없는 전력질주 속에서도 또박또박 짚어주는 대목의 정확성과 휘청거림의 공존. 건실한 연주와 탄탄한 건강함이 밴드의 장점을 부각한다.

씨에이치에스 (CHS) 「Lady」 - 올해 여름은 까데호와 씨에이치에스였다. 까데호가 일상과 지인의 영역이었다면, 씨에이치에스는 의도적인 이국의 맛과 향락과 휴양의 맛이었다. 트로피컬한 정서에 얼반의 맛이 있는 분위기는 1년에 한 번 허락하는 일탈의 맛이 함유된 농염함이 있었다.

오칠 (Oh Chill) 「Oh, Two Animals」 - 때론 Foo Fighters가 ‘죽여주던 시절’을 상기하게도 하는데, 대한민국 서울 마포구 지하 클럽 바다비를 원산지로 둔 오칠의 개러지는 아메리칸 하드록의 온기가 아닌 보다 속수무책의 공격성을 발휘한다.

아톰뮤직하트 「Lilac (feat. 김도연」- 자칫하면 씬에서 자연히 안녕을 고할 뻔한 훈조의 이력 연장이 일단 반갑고, 고전 록의 재현과 현재 시점의 자신들이 지닌 혈기를 조화한 고민이 듣기 좋다. 

재즈


경기남부재즈 (Southern Gyeonggi Jazz) 「Marching」- 경기남부민요에 대한 인식에 담겨있는 함의는 경쾌함과 낙천성이다. (좁은 식견에 의한 고정관념일 수도 있겠다.) 경기남부재즈의 두 번째 음반 안에 깃든 주된 정서는 그 왁자한 분위기가 아닌, 왠지 내세와 주술의 기운이다. ‘이수 건너 백로 가자’에 이어 자연스레 따라올 ‘쾌지나 칭칭 나네’의 구절은 정작 따라오지 않는다. 수수께끼를 쥔다.

크로스오버/월드뮤직

노선택과소울소스 「정들고 싶네」 - 흥겨움의 이면 속에서 밴드는 장르를 무위 상태로 해장시키고, 구성원들이 가질 이질감을 화합과 교란 사이에 녹여버리는 매혹을 발휘한다.

동양고주파 「파도」 - 단순히 국악기가 있는 크로스오버 성향의 밴드를 넘어, 동양고주파에 있어 앙금은 자기만의 의지를 갖추고 앞서가는 프로그레시브한 악기가 된다. 앙금은 여기에 심해의 알 수 없는 사연을 숨기며 요동하는 베이스와 격랑 하는 타악기들과 만나 3인조의 혼신을 들려준다.

두번째달 「비나리 (feat.채수현)」 -  경기남부재즈의 신보에서 예상했던 경기소리의 경쾌한 맛을 여기에선 소리꾼 채수현이 책임지고, 예의 에스닉한 장기는 두번째달이 책임진다. 두번째달은 한 해의 결산에서 익숙함이라는 원죄로 웬걸 소홀하게 지나갈 이름일지도 모르나, 이 성실한 탐구와 값진 음악 맛의 가치는 이번에도 새삼 강조해야 하지 싶다.

블랙스트링 (Black String) 「Exhale-Puri」 - 허윤정의 거문고와 오정수의 기타가 이인삼각을 하다, 황민왕의 소리가 휘젓듯이 지배력을 발휘하는 와중에 말미에 심연을 짚는 이아람의 단소가 블랙스트링의 곡을 완성한다. 이 추동력 있는 연주를 들을 때마다 록 음반을 듣는 듯한 어떤 힘을 느낀다.

일렉트로니카

룸306 (Room306) 「밤이 Night Comes」- 연말을 맞이하는 나와 우리들을 위한 가장 이상적인 위안이자, 한 해 동안 꾸준히 누적한 상실감에 대한 고별인사 식순에 의한 트랙. 음반이 꾸준히 지키는 쓸쓸한 기조를 마지막 대목까지 잘 유지하고 있다.

바가지바이펙스써틴 (Bagagee Viphex13) 「Sunshine」 - 간단명료함이 만연함과 당연히 다른 표현이며, 단조로움과도 유사한 단어가 아님을 입증하는 테크노 넘버. 더 주목받았어야 할 음반의 포문을 여는 디제이 시니어의 품질보증.

레인보우99 (Rainbow99) 「상패동」- 모노리스를 닮은 검고 반듯한 추모비나 고정되어 박힌 배경음악의 운명을 거부하고, 한반도의 역사 한 장 안에서 생생하게 대화를 건다.

아이돌 팝


설리 「고블린」 - 한 음악인의 자아를 건 고백과 실토는 제대로 전달이 되기도 전에.

있지 (Itzy) 「달라달라」 - 가능성의 여지를 회생시키지 못하고 날려버린 미쓰에이의 이력에 이어 트와이스를 통한 연타로 기가 부쩍 살아난 기획사가 기시감을 빌어 형성한 올해의 신인. 이 기획사의 얼굴 수장이 자주 쓰는 화법을 재현한 작곡팀의 수훈과 힘겨운 조련을 견뎌내고 세상 밖에 등장한 멤버들의 기량이 어색하지 않은 데뷔를 실현...아니 그래도 미숙하긴 했으나 그것을 용인할 수 있는 나이대와 이력에 걸맞아 그게 더 절묘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8. 1. 11:58

- 2018년 12월 1일 ~ 2019년 5월 31일 발매작
- EP 및 정규반 무관 / 순위 무관
- 문장 재활용이 상당수 있습니다

룸306 『겹』 
영기획 / 웨스트브릿지 엔터테인먼트 | 2019년 1월 발매

한글 가사를 만나 보다 더욱 명료해진 외로움의 기조가 공기 위를 짚는 일렉트로니카의 기류를 만나 뚜렷해졌다. (더욱더 흐릿해졌다?) 곡 여기저기에서 노래 잘 부르는 보컬 홍효진의 존재감은 중요하다. 흔히들 ‘관계‘라고 부르는 서툰 상호 간의 손길을 묘사한 트랙들이 쓸쓸함을 배가시킨다. 교감보다는 체념조에 가까운 그만의 목소리에 실려 아슬아슬한 감정들은 부유하다 낙상한다. 아련하다.


엑스엑스엑스 『Second Language』 
바나 / SM 엔터테인먼트 | 2019년 2월 발매

전작으로 받은 전체적인 인상과는 다른 감상을 주는 첫 곡 「무뢰배」의 도입이 짧게 마무리되면, 「괜찮아」 등의 트랙들은 이 팀을 듣는 행위 자체를 실감하게 한다. 예술 운운과 씬을 바라보는 김심야의 공격적으로 날 선 태도는 여전하며, 여기에 「Language」, 「우아」 등에선 타 장르 애호가까지 귀를 당기는 프랭크의 역량은 이번에도 즐겁게 살아있다. 넘실거리는 반골리즘과 그늘진 호전적인 면모가 이 듀오의 이름을 매번 결산에 올리게 만든다.


로큰롤라디오 『You've Never Had It So Good』 
미러볼뮤직 | 2019년 2월 발매

낙관하지 않는 사람들이 조성하는 그루브함과 역동의 흥이 주는 아이러니함이 진하게 스며든다. 속임수 같았던 첫 싱글 「The Mist」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고통스러운 수난이라는 궤, 그 단단한 근육의 힘이 느껴졌다. 첫 곡 「Here comes the sun」에서부터 남은 11개의 트랙까지의 행로를 기대를 품게 하는 사운드 스케이프를 펼친 밴드는 「Danse Macabre」 등에 이르면 청자에게 지배력을 발휘하며 유능한 밴드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한다. 좋은 트랙들, 뚜렷한 목소리와 연주가 무게 있게 실린 음반.


노선택과소울소스 with 김율희 『Version』 
동양표준음악사 / 소니뮤직 코리아 | 2019년 3월 발매

공기의 진폭과 휘청이는 연주를 뿜어내는 악기의 진동, 이야기 구전자의 김율희가 야기하는 파장까지 실감하게 하는 녹음은 여기저기 엉킨 경계를 와해하며 무채색을 채색으로 물들인다. 장르를 무위 상태로 해장시키고, 구성원들이 가질 이질감을 화합과 교란 사이에 녹여버리는 매혹이 수수께끼같이 시간을 채운다. 세상 사람들 다 아는 이야길 새겨듣게 만드는 실력 좋은 이들이 이렇게 규합하였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 Eyre Llew 『Carrier』 
비라인레코즈 | 2019년 4월 발매

‘우리는’에서 ‘당신들까지’ 포용하게 되었고, 다큐멘터리였다면 끝까지 시청하고 관람하며 엔딩 크레딧의 여운까지 느꼈을 일이 생겼다. 포스트록이 언제나 청자의 상상의 영토를 확장하며 광야로 내몰곤 했지만 이곳엔 아득함보단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는 ‘진심’ 또는, 아니 최소한 ‘거짓말이 아닌 감정’이 실감 나게 휘감고 있다. 이것이 누군가에겐 비록 근 몇 년 사이의 가장 좋은 장르 음악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음악이라는 매체가 주는 본질은 ‘감동’이란 것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우둔하게 단단히 굳어있던 부분을 일깨운 음반.

사자최우준 『Saza』 
SAZA CAVE / 미러볼뮤직 | 2019년 4월 발매

한 남자가 자신의 욕망과 모순의 거짓말과 진실을 토로하며 9분여의 시간을 할애한다. 그이가 보고 싶다는 ‘연기’는 진실의 내면을 직시하는데 방해와 위장을 하는 모호함 그 자체를 말하는 듯도 하고, 직접적인 돕(Dope)에의 욕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9분은 전혀 지겹지 않고, 록 출신의 혈통 피력에 이은 (네오)블루스 현직에 대한 확고함 그리고 완숙해진 사이키델리아 창조의 과정을 보여주는 시간이다. 이 타이틀곡 「연기가 보고 싶다 : 금단」을 필두로 최우준의 음악은 천성적으로 유려한 가사엔 애초부터 재능 없음을 보여주며 실력과 완력으로 음반을 채운다. 솔직하고 까슬한 질감으로 수북하게.


게르다 『Uprooted』 
자체 제작 | 2019년 4월 발매

창백한 피아노는 세상을 보는 시선을 긍정적으로 교정할 수 없는 비통함과 장중함으로 청자를 누른다. 음반이 가진 컨셉과 스토리라인에 맞게 군인의 행렬을 닮은 드럼, 서늘한 신시사이저와 오케스트레이션은 앙상하게 세상을 구성하고, 기타는 인간들의 비명처럼 메마르게 울부짖는다. 포프엑스포프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단테와 밀턴이 만든 종교 서사시의 웅장함을 프랜시스 베이컨이 그린 절규하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암울하게 들려주는 듯한 그 광경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을 닮았다면 게르다의 음악은 영상자료원 상영작 라인업을 닮았다. 이상한 비교에 대한 양해를 바란다. 3부작 구성의 음반 컨셉과 스토리라인 안에서 이어지는 비극의 풍경, 암흑 안에서의 인간성이라는 것의 의지와 그 종막이 장중하게 기다리고 있다. 풍경과 장면이 절로 그려지는 음반.


황소윤 『So!yoon!』 
붕가붕가레코드 /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2019년 5월 발매

나를 비롯해 황소윤이라는 이름에 대해서 (장르상으로) 떠올리는 인상이 있을 터인데, 그 인상을 지배하는 주된 장력은 아무래도 밴드 새소년에 관한 것일 테다. 이를 가볍게 배신하며 들려지는 R&B 사운드와 재키와이의 협연 등은 어쨌거나 일차적으로 ‘근사하다!’라는 인상을 준다. Patricia Piccinini의 작품을 커버로 내건 파격(?)에서부터 – 이 글을 쓰는 이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애호를 또 한 번 자극해버린... - 그 스스로 이종(異種)을 자인한 자세로 내비치며, 숱한 피처링에 자칫 함몰될 위기조차도 포용과 확장의 가능성으로 대체하는 듯하다. 이런 기세라면 함몰은커녕 이 이종의 영향력과 확장 가능성에 설렘을.

[190730]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8. 7. 16. 16:15

- 2017년 12월 1일 ~ 2018년 5월 31일 발매작

- EP 및 정규반 무관 / 순위 무관

- 문장 재활용이 아주 많습니다.


==



빌리 카터 (Billy Carter) 『The Green』 & 『The Orange』 

일렉트로뮤즈 | 워너뮤직코리아 / 2017년 12월 발매


빌리 카터는 경력 내내 로커빌리, 컨츄리, 블루지한 로큰롤 등의 장르로 다채롭지만 일관되게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확고한 성취도를 보여주었다. 잠시간의 침묵으로 또 하나의 기대되는 밴드의 행보가 자연 소멸될까 우려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일주일 간격으로 연작 EP를 내놓은 생산성을 보여주었다. 이젠 역으로 그 기획력의 원동을 물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이 두 개의 연작은 일종의 컨셉과 스토리를 통해 생명의 태동을 비유하는 듯한 지축을 울리는 거대한 일렉음으로 시작해, 서슬 퍼런 온정 없는 분위기로 외면하기 힘든 이슈에 대해 힘겹게 말하는 곡으로 마무리된다. 관계과 무정으로 엉킨 파국의 고민 등이라는 개인의 이슈에서 앞으로는 이를 물고 바깥의 이야기를 내던질 수 있는 여지를 보여주었다. 지금 당장의 큰 만족을 말하긴 어렵더라도 밴드의 여정에 대해선 지켜봐야 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9 (송재경) 『고고학자』 

오름엔터테인먼트 | 소니뮤직직코리아 / 2018년 1월 발매


솔로로 와도 여전한 것은 간혹 존대로 말하는 가사의 공손함이다. 사려와 조심스러움, 때론 움츠려있음으로도 보이는 그 조심스러운 태도는 여전하다. 이젠 모던록 싱어송라이터의 자리에서 가요로 지평이 확산되어 가는 듯하다. 몇몇 곡들이 가요에 가깝게 들려진다는 것이 이 노래 안의 신파와 질적 하향을 뜻하는 것이냐고. 천만에. 보편적 감정을 캐내는 사람, 장르를 새삼 발굴하는 자, 한국 대중음악 감성계의 고고학자 헨리 존스 2세, 인디아나 존스, 송재경의 빛나는 역할이 여기에 있다. 그가 만들어 내는 곡들이 관통하고 경유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의 몇몇 정수와 기시감들이 반갑다. 여담이지만 이런 성취를 투잡의 환경에서 이뤄내는 것에 대한 경의를(눈물).



강아솔 『사랑의 시절』 

일렉트로뮤즈 | 워너뮤직코리아 / 2018년 2월 발매


시간이 지속되어도 퇴색되지 않고 되려 덧칠을 통해 소장되며 훗날 발굴할 소중한 시간, 그래도 눅눅하게 쌓여갈 내음과 먼지로 인해 본의 아니게 변색할 시간. 그 시간들이 쌓여 줄기를 만든 시절을 말하는 목소리로 더없이 차분하고 이상적인 강아솔의 목소리는 개인적인 사유와 더불어 여러 이들의 마음의 외벽을 스미고 지나간다. 하반기에도 오래 남을 그런 목소리와 가사다.



김해원 『바다와나의변화』 

자체제작 / 2018년 3월 발매


포크는 회의주의자들의 음악인지라(지나치게 편견에 치우친 난삽한 시선인가), 세계를 관망하는 가사와 단조롭게 들리지만 길고 깊게 남는 곡들이 포진해 있다. 김해원이 만든 곡들은 대체로 짐짓 음울하게 들리지만, 좋은 포크 음악들이 여태까지 그러했듯 성스러운 경지에까지 닿으려 한다. 음반 부클릿에 담긴 사진과 자연의 배경들이 남기는 여운 또한 감상에 적지 않은 비중으로 플러스 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플러그드 클래식 (Plugged Classic) 『Sabai』 

99센츠 | 미러볼뮤직 / 2018년 3월 발매


까슬까슬하다 못해 아주 뻑뻑하게 날 것의 육체로 거리감을 유지하지 않고 접근한다. 그래도 외면하기 힘들다. 전작 EP에서 하드록을 기조로 Nirvana 풍의 그런지까지 오가던 분노는 장막을 젖힌 후 더욱 강력해졌다. 하드코어에 근접한 질감과 스멀거림 안에서도 역동하는 힘을 더욱 헐벗은 채로 노출한다. 새삼 레코딩과 믹싱이라는 매체의 생산이라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 감사를 느끼게 되는 대목들.



히피는 집시였다 『연어』 

스톤쉽 | 지니뮤직 / 2018년 4월 발매


이 나지막한 적막들의 순간은 이 음악을 감싸는 장르와 씬의 유사한 음악들과 비교해도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준다. 섬세한 파장을 그대로 노출하는 보컬과 새벽의 적막 같은 선율은 귀의 감상과 가사의 구독을 동시에 요하게 한다. 



데이 오브 모닝 (Day Of Mourning) 『This Too Will Pass』 

왓치아웃!레코즈 | 미러볼뮤직 / 2018년 4월 발매


잘게 썰린 젠트가 정갈하게 나열하여 줄을 서며 난무한다. Carlos Gurrero의 탁월한 보컬이 클린과 사타닉을 오가듯, 드라마틱한 그루브감과 아르페지오가 교대하는 연주는 곡 내내 변화무쌍하게 탈바꿈한다. 멤버들의 역량과 저력을 염두하면 왠지 라이브 무대 때 100%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인상이 강했는데, 이번 정규반을 통해 확실히 반론을 제기하는 듯하다. 최근 2년여 간의 와치아웃!레코즈의 심상치 않은 행보와 성취를 가장 잘 설명하는 싱글 중 하나. 젠트를 기반으로 한 메탈코어의 융성과 성취에 대해선 하반기 또 하나의 음반이 증명해내고 있으니, 대세라고 할 수 밖에. 이 대세를 아는 사람들만 계속 안다는 사실 밖엔.


 


페퍼톤스 (Peppertones) 『Long Way』 

지니뮤직 / 2018년 5월 발매


'청춘'이라는 테마는 앞날 내다볼 전망 없는 한국 밴드(와 더불어 그 청자들)의 단골 주제어였던 것 같다. 낙천과 낙천으로 위장한 아득함을 대표하던 이 주제어는 페퍼톤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이들에겐 음악적 테마를 넘어서 아예 이 단어를 음악 자체로 구현해온 과정 자체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이제 그 단어를 말해온 밴드는 이를 여정과 회고로 화답하고 있다. 이전 음반 몇몇들에선 분명 흡족함을 찾기는 쉽진 않았으나,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이 밴드의 약력과 더불어 이런 일관된 목표 지향성은 결실을 또 한번 맺은 듯하다. 여느 때보다 주먹 쥔 진심이 느껴지는 신재평의 열창(!)과 영원불멸의 이과 선배가 작곡한 밴드 사운드는 유난스러운 소회를 안겨준다. 

 


아시안 체어샷 (Asian Chairshot) 『Ignite』 

웨스트브릿지 / 2018년 5월 발매


아시안체어샷은 희망이었다. 씬의 선배 중 일부는 기대주와 신진들에게 잠비나이와 이들을 모델로 하여 쫓으라 촉구하였다. 그 연유는 흥과 타령, 끓는 소리가 서린 소위 한국적인 무엇과 서구의 개러지/사이키델릭과의 접합이라는 어떤 이상형을 구현한 탓일 것이다. 조금 앞서 등장한 개러지 록 씬의 밴드가 주춤하던 시기였던 이유도 컸을 것이다. 매체에서 타 밴드들보다 올라간 인지도를 가지게 되기도 하였으나, 정작 비단 융단을 깔아줄 밴드 씬의 환경은 마련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 멤버 교체의 난항은 적지 않은 제동이 되었을 터. 이런 국면들은 만신전(萬神殿)을 연상케 하는 범 아시아적인 음반 아트웍이 주는 어지러움 안에 이식된 듯하다. 이런 '빙글뱅글'한 상황 뒤에도 우리가 아시안체어샷에게서 기대하던 대개의 기대치를 음반은 만족시키고 있다. 한국 전통음악 일부에서 추출되는 흥과 격동의 리듬감, 여전히 진군하는 록 넘버의 구성은 밴드의 건재한 귀환을 보여준다. 굳이 그들에게 칭찬을 구걸한 적 없으나, 그토록 ‘우리 것’ 밝히는 – 그다지 보태준 것도 없는 – 그 양반들을 흥이 나게 할 순간들이 곳곳에 빛을 밝히고 있다. 무엇보다 「꿈」과 「각성」이 안겨주는 쾌감은 너무나도 직접적이다.



데카당 (decadent) 『decadent』 

웨스트브릿지 / 2018년 5월 발매


블랙 뮤직의 색채를 바탕으로 간혹 프로그레시브/익스페리먼트의 붓칠로 휘젓는 몇몇 장관들. 결산이란 지금까지 올곧게 또는 융통성 있는 변주의 과정을 거치며 생존해 온 이들에게도 주어지겠지만, 이처럼 어디선가 착지한 외계 생명체들에게도 그 자격이 주어질 것이다. 이 새 발견에 작은 희열을 느낀다. 


[20180716]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8. 1. 19. 14:15

- 웹진의 연말 결산은 음반 단위로 투표로 결정되는데, 별도로 개인 필자별 취향대로 추천 싱글 목록들도 받았다. 몇 곡에 대해 짧게 코멘트하고 제출하였다.


===


김재하 : The Essential - 더이상 우리 시대의 기타 영웅을 원하지 않는 시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등장했다. 클래시컬한 구성과 모던한 외형을 한번에 구축하려는 분투의 연주.


어비스 (Abyss) : May Bloody May - 올해 최강의 헤비니스 음반이 낳은 수록곡 중 하나. 골수 헤비니스 동지들 사이에서 구박받으며 성장해온 뉴메탈 키드는 물론 그루브메탈 이후 아직 생존해있다는 일군의 사람들까지 만족시킬 쾌작.


포멀애퍼시 : 「The Upper Hand」 - 화려한 공작새의 길이 아닌, 울퉁불퉁한 갑주의 등을 안고 습지를 묵직하게 보행하는 악어의 길을 택한다. 틈을 주지 않으려는 빼곡한 드러밍과 그 위에 씌워진 그물 같은 리프가 청자를 포획한다.


글렌체크 : 「Long Strange Days Pt.1」 - 젊음의 지표를 쾌청하게 증명해낸 과거의 이력과 달리, 성숙했다는 표식을 여기저기 박는다. 그래도 여전히 빛나는 밴드.


러브엑스테레오 : 「Instalove」 - 인스타그램 시대의 사랑인가요. 얼터너티브 이력을 표내면서도 이 밴드의 인장인 애니의 보컬이 가진 분명함도 함께 새긴다. 무엇보다 올해 부지런한 밴드 중 하나였다.


엔씨티127 : 「無限的我:Limitless」 - 중2를 제거하지 않으면서도 기획사 특유의 SMP한 기조는 유지하되 현 음악씬의 경향성을 적절히 추수했다.


도마 : 「Is This Love」 - 맑고, 여유있고, 들썩거리고, 무엇보다 듣는 내가 까닥까닥할 수 있는 여지와 안락한 공간감을 주는 사운드 메이킹.


위수 : 「미끄럼틀」 - 나를 믿고 들려주는 누군가의 은밀한 이야기를 듣는듯한 공감의 연출. 등장해주셔서 감사한 싱어송라이터들의 한 해.


입술을깨물다 : 「내버려두지마요」 - 호소를 구하거나 호소를 연출하는 곡들은 많지만, 정말 손을 건네고픈 노래는 이처럼 따로 있는 법이죠.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7. 7. 10. 21:00

- 2016년 12월 1일 ~ 2017년 05월 31일 발매작

- EP 및 정규반 무관 / 순위 무관

- 문장 재활용이 상당수 있습니다.




신승은 『넌 별로 날 안 좋아해』 

허수아비레코드 / 미러볼레코드 | 2016년 12월 발매


또 한 명의 포크 스타의 탄생일까요. 중성적인 톤의 목소리, 소소하지만 솔직하다는 세간의 평을 받을법한 가사, 단출한 구성에도 사람 들썩이게 할 줄 아는 효과적인 편곡 등 쉽게 넘기려다 붙잡게 하는 요소들이 있다. (여기에 공연을 찾아가면 당신을 최소 몇 번 웃게 할 싱어 본인의 강한 캐릭터가 있다) 한편으로는 영화계 언저리에 발을 디뎠다가 머리 싸매는 젊은 예술계 노동자의 번민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버릇처럼 들이키는 술잔으로 유발되는 가사 안의 진실과 방어막이 내재하고 있다. 마포구를 자주 오갈지도 모를 당신의 유효한 배경음악 중 하나.




3호선버터플라이 『Divided By Zero』 

오름엔터 / 소니뮤직코리아 | 2017년 01월 발매


밴드는 주 멤버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이를 둘러싼 주변의 우려들을 가볍게 종식했다. 포스트록의 대지 위에 전자음의 두꺼운 외벽을 형성한 듯한 첫 싱글에서부터 댄서블한 넘버들의 당혹스러우면서도 유쾌한 돌진, 그러다 어느샌가 차분히 가라앉은 안식에까지 이르는 비대칭 데칼코마니(형용모순!)의 여정은 2017년 첫 명작의 등장을 목격하게 한다. 일렉트로니카와 뉴웨이브 신스팝 성향이 도드라졌지만, 곳곳에서 3호선의 공기와 역동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빛과소음 『Irregular』 

일렉트로뮤즈 / 워너뮤직코리아 | 2017년 01월 발매


번쩍이는 등장과 지글지글하는 일렉음의 일렁이는 파형, 밴드명을 실천하는 이들이다. 그렇다고 노이즈의 봉우리나 바닥을 찍기보다는, 드론 사운드는 서프록의 경쾌한 기운과 사이키델릭한 터치를 오가며 젊은 밴드의 태동에 설렘을 배가시킨다. 다섯 곡을 재청하다 보면 묘하게 새겨지는 긍정적인 기운 덕에 소음 보다 ‘빛’에 좀 더 점을 찍게 된다.




끝없는잔향속에서우리는 『우연의 연속에 의한 필연』 

자체제작 / KT&G 상상마당 | 2017년 02월 발매


도입은 소탈한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위안을 주는 목소리로 문을 연다. 이러던 ‘안다영밴드’의 새 이름에 대한 신고식은 더욱 깊어지더니 포스트록을 닮아가고, 밴드 체제의 음악은 공간을 좌우로 아래위로 확장하며 우리를 기울어지게 하다가 이내 눕힌다. 점점 침묵을 닮아가는 구성은 검은 바탕과 하얀 점들이 빼곡히 박힌 어떤 상상력의 공간으로 소환한다. 스칼렛 요한슨의 [언더 더 스킨]의 ‘그 방’을 닮은, 그러나 잔혹하지 않은 검은 방. 꼭 총천연색으로 규정되지 않아도 될 청춘이라는 서정적인 단어의 검은 방. 




신해경 『나의 가역반응』 

영기획 | 2017년 02월 발매


음반 제목은 당연히 작가 이상의 시(詩) 제목인 [異常한 可逆反應]에서 따온 것이다. 이상의 본명은 아시다시피 김해경인데, 이 공교로운 동명이인의 대목은 의도적인 것일까. 공교롭게 첫 곡은 「권태」, 이상에게도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었다.(신해경이 앞으로 「종생기」같은 제목으로 곡을 더 낸다면 거의 확신의 수준일 듯하다) 기타 노이즈의 잔영이 유구하게 흐르는 가운데 부유물처럼 떠 있는 감정의 일면들이 애상을 배가시킨다. 어떤 방향을 추구한 음악인지 알 듯하다. 창가에 촉촉하게 더덕더덕 달라붙은 것은 사운드의 조각들인가요 미련인가요. 노래들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애상은 침대 위 뒹굴며 밤을 헤며 설쳐댄 ‘이불 발차기 달인’ 시절의 기억을 건드린다. 엉뚱하지만 9와숫자들의 첫 음반에 실렸던 가사들의 공손함(과 징그러움)도 더불어 떠올랐다. 더 엉뚱하지만 난 이런 시도들에서 어떤 야함을 느낀다.




도재명 『토성의 영향 아래』 

오름엔터 / 미러볼레코드 | 2017년 03월 발매


밴드가 해산한 뒤, 짐작건대 도재명은 적지 않은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그만큼 로로스는 좋은 밴드였고, 그 자신이 밴드의 여러 일면을 조성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가진 인물이었던 탓이다. 돌아온 그가 들려주는 음악들을 들으면 그가 영화나 영상물들을 위해 작업하는 작업이 영상 안에서 어떻게 다시 들려질까 나름대로 기대가 되었다. 로로스가 대뇌피질로 전달되다 부식되는 꿈의 영역이나 대기권 바깥의 사정을 헤아렸다면, 그의 개인 작업들은 보다 이야기가 선명하거나 익숙한 감정의 공감대를 건드린다는 인상이 강했다. 문학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조탁 된 언어들이 가사로 쓰였고, 주변부 사람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채집해온 듯이 연출한 나래이션의 방식은 인상적이다. 뮤직비디오 작업이 이런 그의 접근법을 느끼하거나 과욕으로 보이지 않게 진지하고 매끄럽게 한 공도 적지 않은 듯하다. 아무튼 음반을 만드는 과정 자체에서 쏟은 정성들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음반이다. 곳곳에 박힌 교양적인 가사와 적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 사려있는 연주들.




티에프오 『ㅂㅂ』 

그랙타니 / 케이티뮤직 | 2017년 03월 발매


음반명부터 이미 친절함과는 담을 쌓았다. 바닥에 떨어뜨려서 산산조각이 샅샅이 흩어진 비트들이 제 마음으로 조합되고, 때론 똬리 치는 진풍경이 펼쳐지는 듯하다. 묵직하고 퀴퀴한 공기 안에서 조소의 기운을 품기는 래핑이 오가고, 구체적인 심상으로 잡으려 해도 제목과 아트워크의 단서들은 추상적인 인상이 강하다. 그런데, 아니 그래서 근간의 한국 힙합의 움직임들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나 같은 사람의 귀를 잡는 부분이 있었다. 음, 조금 어긋나있다는 점만으로 쉽게 혹한걸까?




로다운30 『B』 

붕가붕가레코드 / 미러볼레코드 | 2017년 03월 발매




카프카 『Asura』 

매직스트로베리사운드 / 웨스트브릿지 | 2017년 03월 발매


이들이 수년간 트립합으로 지은 구조물을 무너뜨리기 위해 인더스트리얼 중장비가 몰려오는 기분이다. 팝과 록의 교합을 기조로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덧씌우는 것을 추구해 온 카프카는 네스티요나와 미니스트리(ministry)의 만남을 주선하는 듯한 태도를 이번에 더욱 뚜렷하게 내세웠다. 그 결과물은 마치 나인 인치 네일즈(nine inch nails)가 『Broken』(1992)와 싱글 「Burn」(1994) 등의 곡으로 지옥의 ‘딴스홀’을 달구던 당시 질감의 향수를 자극한다.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내는 골조들을 무진장 깨부수는 강철 사운드의 질감과 그 안의 아련함을 발휘하는 팝의 감각기관들... 이것이 매직스트로베리의 그 카프카가 만든 결과물임을 상기해도 다소 낯설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 신작의 음반 제목은 당연히 영화감독 김성수의 근작을 상기하게 한다. 물론 난 김성수의 결과물보다 이쪽을 훨씬 긍정한다. 이쪽의 아수리언이 되겠다.




분홍7 『빨강보라의 근원』 

칠리뮤직코리아 | 2017년 05월 발매


상반기 결산이 5월 31일까지라고 치고, 하반기 결산이 11월 30일까지라고 친다면 5월 말과 11월 말에 발매되는 음반들은 왠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5월 29일 세상에 갑자기 등장한 분홍7의 싱글과 음반은 결산 목록을 다시 손보게 할 만치 매력적이다. 개러지 록의 기조에 각인을 새기는 리프의 아이디어에 사이키델릭을 지향하는 혼미한 콤보는 좀체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모던풍의 애상과 펑크 폭도를 오가는 까랑까랑한 보컬과 응집력 있는 3인 파트의 단합력은 자연히 라이브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부추긴다. EP이기 때문에 이들이 보유한 ‘근원’의 정체는 아직 노출도 안된 듯하다. 더욱 까발려 주시길 바란다.



+ 그리고 이 10장에 올해 5월 신작을 낸 러브엑스스테레오의 『37A』를 보탠다. 이 신작의 물리음반 발매를 기원하며.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7. 1. 21. 16:50

- 2016년 6월 1일 ~ 2016년 11월 30일 발매작

- EP 및 정규반 무관 / 순위 무관

- 문장 재활용이 상당수 있습니다.



* 상반기 국내음반 10장은 이러하였습니다.


13 스텝스 『Venom』 

방백 『너의 손』 

키라라 『Moves』 

수상한 커튼 『수상한 커튼의 1년』 

위댄스 『Produced Unfixed Vol.3』 

레인보우99 『Calendar』 

전범선과 양반들 『혁명가』 

단편선과 선원들 『뿔』 

파리아 『One』 

줄리아드림 『불안의 세계』 


= 상반기 결산 글 읽기 : 링크 / 링크2



-----------------------------------------



잠비나이 『 A Hermitage (은서;隱棲)』 

더 텔 테일 하트 / 유니버셜뮤직 코리아 | 2016년 6월 발매


한국을 대표하는 장르 분쇄기가 된 잠비나이의 행보는 거침없고, 지금도 진일보 중이다. 단순히 국악과 메탈의 퓨전이 아닌 도무지 행보를 짐작하기 힘든, 포스트록의 광야와 인더스트리얼의 황폐해진 대지까지 재현해내는 스펙트럼은 어떤 경지를 보여준다. 『A Hermitage (은서;隱棲)』는 『차연(Differance)』(2012) 이후 합당한 음반일 뿐만 아니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이번에도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얼스바운드 『Artown』 

미러볼뮤직 | 2016년 7월 발매


얼스바운드는 항상 그랬다. 숙취 후의 고통과 잔영을 애써 음악의 언어로 풀어헤치는 노력, 지난 밤 잠자리의 대상에 대한 미련 맞은 애착의 끈끈함. 이런 정서들이 모여 알듯 모를듯한 가사와 제목으로 하나의 음반으로 구성되었다. 1집이 그랬는데 2집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젠 2장의 구성이고 당연히 부피든 두께든 커지고 두꺼워졌다. 그런데 여전히 집중력 있는 합주가 있고, 멤버 탈퇴의 난항에도 최강의 3인조는 최강의 2인조로 다듬어졌다. 우려는 종식되었고 기억하고 믿을 수 있는 밴드의 목록은 추가되었다. 심지어 음반 커버 디자인도 훨씬 좋아졌다!



강성모 『Concept 01』 

유니버셜뮤직 코리아 | 2016년 7월 발매


노이즈와 규칙, 그 안에 스며든 로맨틱한 감각과 즉흥의 발상 등 서로 다른 것들이 깔끔하게 어우러져 있다. 그 안에 읽히는 재즈를 위시한 장르에 대한 다종 취향과 공간감이 도드라진 사운드 메이킹 등도 흥미롭다. 음반이 짧지만, 감상의 집중도도 떨어지지 않고 주목할 만 내용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유독 홀대받은(?) 일렉트로니카 음반이라는 입장이다. 



이랑 『신의놀이』 

소모임음반 | 2016년 7월 발매


읽을 책자가 우선하는 음반. 나는 이번 음반을 통해 이랑 음악 속 가사의 진솔함이나 그 바탕이 될만한 책 속의 문장보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한 예술인의 자의식 자체였다. 그 자의식이 대단치도 않은 기준으로 이런 류의 음악을 아마추어리즘으로 재단하는 사람들을 사뿐히 밟는 작은 쾌감, 여기에 더불어 과연 이것을 진솔함이라고 명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작은 의문도 가지게 되었다. 



이상의날개 『의식의흐름』 

석기시대 / 미러볼뮤직 | 2016년 9월 발매


나에게 있어 포스토록이라는 장르명에 가장 익숙한 형태의 음악들이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소멸하며 부글대는 구름의 장막들이 새로운 빛을 내며, 주시하는 인간들의 시선을 먹먹하게 만드는 순간들. 그런데도 특정 장르의 구태의연함보다 그것을 가장 유용하게. 무엇보다 씩씩하게 2장의 음반 안에 빼곡하게 담았다. 상반기 줄리아드림의 더블 음반을 듣고 올해의 획득인가 뿌듯해했다가 하반기 얼스바운드와 더불어 이상의날개 덕에 2016년이 어떤 특별한 연도로 남겠다는 확신이 섰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고, 밴드에 가장 맞는 날개를 만난 것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램넌츠 오브 더 폴른 『Shadow Walk』 

왓치아웃 레코즈 / 미러볼뮤직 | 2016년 10월 발매


정규 음반으로 드러나는 한 음반의 성장세, 군 복무 제도라는 한국적 상황과 멤버 교체의 난항에도 불구하고 해내고야 마는 근성에 대한 한숨, NWOHM를 위시한 메탈코어 장르가 한국 밴드씬에 끼친 어떤 영향력을 충실히 드러낸 표본 등 여러 의미로 읽힌다. 무엇보다 싱글 단위 단위마다 쾌감이 좋다. 뿌듯할 수 있는 음반이다.



조동진 『나무가 되어』 

푸른곰팡이 | 2016년 11월 발매


세상이 그에게 은둔자, 음유시인의 이미지를 덧씌우고 신비화함에도 불구하고 이 음악들엔 당대의 음악들이 가진 동시대성이 분명히 내재해있고 그가 어떤 식으로든 세간의 일들과 흐름에 소통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을 이렇게 음반의 형태로 일깨워줘서 천만다행이다. 



해오 『Actress』 

세레모니뮤직 / 웨스트브릿지 | 2016년 11월 발매


정규 2집을 통해 가장 인상적인 국면전환을 보여준 해오는 이번 작품을 통해 일종의 굳히기를 한 셈이다. 데뷔작이 전생이라면, 이후의 행보는 윤회를 통한 현생이다. 스스로 택한 이 현세는 일렉트로니카로 여는 여명이자, 뉴웨이브의 잔영이 안개처럼 자욱한 곳이다. 새벽을 깨우는 김보영의 목소리는 차갑고, 위안을 준다기보다 새로운 삶을 촉진하는 일깨움 같다. 『Structure』(2014)가 차라리 과도기로 비칠 만치 이젠 완숙하게 전자음으로 조성된 세계관을 형성하였다.



9와 숫자들 『수렴과 발산 (SOLITUDE AND SOLIDARITY)』 

튠테이블무브먼트 / 소니뮤직 코리아 | 2016년 11월 발매


처음에 9와 숫자들은 인상적인 가사로 기억했다. 그다음 9와 숫자들의 음반을 들었을 때는 좋은 작곡으로 기억했고, 지금에 이르러선 편곡 그리고 점층 된 지금까지의 이력 자체가 좋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지난 정규작이 좋았던 만큼 이번 음반도 출중해서 밴드의 입장에선 일종의 연타석 홈런을 날린 셈이다. 음반 제목과 음반 속 내용에 관한 송재경의 변에도 불구하고 내겐 이들 음악의 메시지만큼이나 따스하게 스며든 브라스가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을 통해 이들이 현재 한국의 모던록을 말할 수 있는 어떤 존재로 자리매김했음을 실감하였다.



마하트마 『New Justice』 

도프엔터테인먼트 | 2016년 11월 발매


크래쉬는 어른이 되었고, 메써드는 씬 최강의 자리에 군림하는 동안 마하트마는 잊히는가 했었다. 그래서 음반 서두의 반복하는 'Wake Up' 메시지는 장르 팬들의 동결을 깨우는 지령 같으면서도 이들 자신의 자성 예언 같이 들렸다. 음악 듣기의 초행길에 친숙하게 배어있다 다시금 잠을 깨운 스래쉬 메탈의 인자는 이번 신작으로 통해 청자 안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다. 정교함이 유난히 빛나는 대목들이 귀에 들어오는데, 이 감동을 배가시킬 녹음에 다소 아쉬움을 표한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7. 1. 9. 13:12

티스토리가 안하던 일을 했는데, 2016년 개인 블로그별 결산을 해줬다.



- 글 작성 개수 : 131ea

- 방문자 수 : 79,992명

- 댓글 수 : 13개 (블로그는 죽은 매체 ㄱㅅ ㅎㅎㅎ)



- 영화 카테고리 작성 55ea / 음악 카테고리 작성 51ea

- 가장 자주 사용한 해쉬태그는 음악취향Y






이상!!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