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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고뭐라칸다/일기에가까운이야기

도란도란

trex 2010. 12. 27. 11:40


대학교 때 이야기다. 입학 당시만 하더라도 80년대와 90년대의 틈바구니여서 그런지 선후배 간의 묘한 완력의 긴장감이 있었던 때였다. 그래서 나같은 겁쟁이도 열사추모가요제 같은데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단체전이었고, 떨어졌다 ㅎㅎ), 국문학과는 민속학과 못지 않게 운동의 기운이 강해야 해라는 암묵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물론 90년대 중반 학번 특유의 정치적인 면에 대한 거부감이 학과를, 캠퍼스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제대를 하니 이런 무드가 완화된 것을 느낀 게 학과사무실 탁자에 놓여진 [도란도란]이라는 이름의 노트였다. 도란도란엔 익명(이지만 사실 글씨체나 성향상 누구의 작성물인지는 대략 알법 했다. 그냥 아는체 모른체였달까)으로 휘갈긴 수많은 낙서와 이야기들, 엽편 창작물, 인용의 글귀 등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서로간의 피드백도 있었으니, 사실상 지금의 익명게시판 격인 셈이었다. 하지만 플로피디스크로 인한 문서 저장도 힘겨워했던(실화다) 우리들로선(죽어도 나로선이라고는 안 적는) 게시판에 대한 관념은 희박했고, 도란도란엔 아날로그다운 정겨움이 있었다.


한 노트가 채워지면 책장에 꽂히고, 다음 도란도란이 될 연습장 노트를 누군가 문방구에서 사오고 그렇게 이야기는 채워졌다. 그런데 이 감성을 다소간 깬 것이 몹쓸 예비역들이었다. 나를 필두로 한 몇명의 94학번 남학우들은 차례로 제대 후 도란도란에 그림 자랑, 파괴된 유머, 연재물 등의 소위 도배질을 감행한 것이다. 80년대 껌 포장을 감싸던 싯귀 같은 감수성의 도란도란이 갑자기 시대를 뛰어넘어 DC인사이드적 감수성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되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그게 그렇게 보기 좋은 일은 아니었을텐데, 남학생의 비중은 현저히 적되 목소리는 컸던 학과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선배들 너무 재밌어요" 정도의 답변만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학과 사무실에 쟁반짬뽕 같은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신문지를 탁자에 깔고 냄새를 베이게 하던 몹쓸 선배들이었는데, 과거를 토로하고 현재를 기록하고 미래를 고민하던 도란도란을 몇몇 남자 선배들이 더럽히니 그게 보기가 좋았을까. 어느 정도 눈치를 챈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시시덕 거릴 수 있는 별도의 '예비역 전용' 노트를 만들었지만 이미 그땐 늦었다. 후배 아이들이 도란도란에 글귀를 남기는 빈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던 것. 좋은 쪽으로 이야기 하자면 도란도란에 새로운 활기와 아무도 하지 않았던 시도를 하며, 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한 우리들은 소위 '네임드'였지만 어떤 의미로선 파괴자였다.


훗날 플로피디스크에 한글 워드 문서를 저장할 줄 알게 되고(...), 교수님이 개장한 카페에 과제를 저장할 수 있게 된 우리들. 그리고 졸업 직전 1,2년 새에 부쩍 늘어난 커뮤니티와 졸업 후의 '싸이월드'와 '아이러브스쿨'을 경험한 우리들은 미리 깨우치게 된 셈이었다. 커뮤니티에서의 균형 감각과 의식적/무의식적 역할, 그 위태로움들에 대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세상이지만 여전히 본질적으로 상기되는 문제다. 새삼 도란도란을 떠올리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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