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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탄저병인가? : 규제만이 능사인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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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탄저병인가? : 규제만이 능사인가.

trex 2012. 2. 14. 19:00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가 얌전을 떠는 보수 언론이나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동네북 취급을 당해 온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이젠 동네북이 아니라 아예 탄저병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보수 언론이라는 표현이 아까운 우익 대표 일간지는 근 며칠간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함으로써, 이쪽의 식견이나 고민이 없는 독자층에게 자연스럽게 호도된 지식을 주입하였다. '공포'야말로 일반인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결집시키고, 위기에 대응케하는 결속력을 만들기에 적절한 방법론일 것이다. 매일 새롭게 보도되는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는 단 하나의 이유인 게임으로 독자들에게 이해될 것이다. '웹툰 두들기기'의 바람이 잠시 지나가자, 길고 집요한 '게임 죽이기'의 계절이 시작된 셈이다.


    게임이 폭력을 추동하고, 범죄 성향을 낳는다는 오래된 오해는 2002년 발간된 일본의 모리 아키오 교수의 저서 [게임뇌의 공포]에서 나온 듯 하다. 이 땅의 상당수 학부모들과 교육전문가들이 흔히 인식하는 '게임을 많이 하면 짐승의 뇌가 된다'는 개념은 이 책에서 주창되었는데, 사실상 이 책이 학술적 권위는커녕 그 신뢰도부터 의심된다는 점에서 현재의 '게임 중독'에 대한 시각 재고를 요구하게 만든다. 실은 '게임을 많이 하면 짐승의 뇌가 된다 : 게임뇌의 공포'라는 문구 자체가 화끈한 선정성을 띄고 있지 않은가? 이 문구가 가진 - 논거 부족에도 불구하고 - 화끈한 온도가 상당수의 식자들에게 게임에 대한 인식을 완강하게 굳히는데 나름 큰 일조를 했다고 나는 믿는다.


    되짚어보자면, 정권 교체 후 정보통신부가 해체됨으로써(일부는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와 통합하여 지식경제부 / 일부는 문화관광부와 통합하여 문화체육관광부) 게임 정책을 실질적으로 관장할 부서가 부재한 상태였다. 이로 인한 컨트롤 타워의 부재가 현재의 여가부의 '셧다운제' 도입 및 각 부서간 의견 난립으로 이어진게 아닌가 싶은데, 이 와중에 교과부의 '쿨링오프제'가 새로운 키워드로 떠올랐다. 게임중독과 인터넷중독 사이의 선명한 구분법 대신 혼용을 택한 정부 부서는 신속한 속도로 학교폭력의 주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고 근절대책의 일환인 '청소년 게임규제 방안 시행'을 도입하게 되었다. 규제방안엔 하루 2시간 단위로 게임 플레이를 차단하는 - 하루 최장 4시간 이내 - 쿨링오프제를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은 물론이거니와 셧다운제에 이은 이중규제 또는 규제번복으로 물의가 예상된다. 


    규제만 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우려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순서라는 기본 개념조차 그들이 인식하지 않음에 기인한다. 학교 폭력은 게임에 의해 조장된다라는 단순 접근으로는 절대 학교 폭력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없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인 소위 '일진' 아이들이 정작 게임보다는 성인층과 흡사한 향음과 과속, 힘없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에 더 익숙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정말 모르는건가? 혹시 그건 건드릴 메스를 찾지 못해 애써 모르는 척 하는 것인가? 게임을 향유하는 상당수 아이들을 '찌질이'라고 지칭하며, 약자로 규정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계층(! :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자신들 사이에 분명한 계급의 법칙이 흐름을 인식하고 있다고 한다)은 따로 있다. 게임을 하지 않는 일진들이 행사하는 폭력에 대한 해법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폭력의 그늘에 숨죽이며 온라인 게임의 공간에서 대체 폭력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누가 들을 것인가?


    학교폭력 근절대책이 담고 있는 기가 막힌 내용은 '게임업계의 기금출연'이다. 학교폭력 근절과 게임중독 치료를 위한 기금조성을 업계의 부담으로 씌우겠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쿨링오프제와 '게임중독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무장한 이들의 등급심의 반영으로 시장성까지 위협받는 게임업계의 입장으로선 답답할 노릇이다. 빈부의 격차가 큰 게임업계의 생리로선, 특히나 군소 게임업체의 입장에선 부담이 가는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큰 업체들 역시 나름 할 말이 있는 것이 사회적 기부를 통한 환원과 내부규제의 기준을 수년간 가져왔는데, 정부 부서간의 '분열'된 목소리로 인해 하루 아침에 이중/삼중 규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제서야 게임업계들은 항변의 목소리를 조금씩 내고 있지만 여전히 힘에 부친다. 오히려 진보신당이 '교과부의 근절대책과 기금출연은 게임업체들로부터 자금을 출연하도록 강제'하는, '골드파밍'이라는 비판으로 목소릴 적극적으로 내세운 것이 인상적인 풍경이었다.


    게임은 한때 해외 수출과 해외 온라인 게임 런칭 등을 통해 성장동력으로 주목받았고, 말 옮기기 좋아하는 치들에 의해 소위 '한류'가 되었다. 그러다 최근 몇년간 '한국엔 왜 닌텐도 같은걸 못 만드냐'라는 당치도 않은 채근을 듣기도 했고, 이젠 급기야 전염병마냥 악의 축 취급을 당하고 있다. 이건 단순히 게임을 둘러싼 문제라기 보다, 필요에 의해 '윗선의 그들'이 지목하는 현대사회의 병폐 원인들이 게임이 될 수도 있고, 앞으로 영화가 될 수도 있고 음악이 지목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대중문화 전반에 대한 취약한 인식과 원인과 결과를 호도하는 논리구조가 그들의 머리 안에 있는 한 무엇이든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억울하기 그지 없는 기금 출원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런 곳에서 창작자들의 권익을 말할 수 있는 풍토는커녕... '한국의 스티브 잡스' 운운하는 우스꽝스럽고 당치도 않은 조어들이나 공허하게 떠돌 것은 앞으로도 훤한 사실이다. [120213]



+ 한겨레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9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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