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2012, 그냥 보내긴 아쉬운 음반 3장 본문
+ 한겨레 hook에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47875
2012년의 한국 대중음악을 이야기하자면, 열에 아홉은 ‘강남스타일’을 말할 수 밖에 없는 모양새다. 그렇지만 그 정도로만 간략하게 넘어가기엔 아깝지 않은 일인가. 2012년에도 여전히 수많은 이름의 아이돌들이 명멸하였고, 소수의 영광을 받았다. 한편으론 작은 클럽 여기저기에선 자비 출반한 음반을 판매하는 인디 뮤지션들이 두 자리 수의 관객들을 모으며 자신들만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들이 음악을 하는 것은 스타의 만신전에 이름을 올리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명예욕이 아닌, 삶 자체로서의 호흡으로 기억될 수많은 음악들. 그중 2012년 그냥 흘려버리기엔 아까운 음반들을 3장 정도라도 소개해두고 작년 일의 수습을 마친다.
정태춘,박은옥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상당수의 사람들에겐 만족감이나 충만함 보다는 다소의 아쉬움으로 기억될지 모를 음반이다. 어떤 의미에선 정태춘, 박은옥의 목소리와 가사가 사무치게 와닿는 정국이 아닌 날이 오길 바라기도 했다. 빛바랜 정서라는 고리타분한 표현으로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결국 우리의 5년은 아득하고 아찔한 방식으로 연장되었다. 그래서 본작은 다시 꺼내 들을 수 밖에 없는 음반이 되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관념적으로 들리기도 하다. 음반 안엔 노골적으로 ‘물’의 이미지가 자주 호명된다. 제명에 표기된 ‘고래’, ‘강’, ‘바다’, ‘오리배’ 등은 크기와 폭을 떠나서 흐르는 물과 그 물을 건너는 방법론에 관한 거론이다. 물은 시원(始原)의 장소이자 태초의 이미지, 생명체가 태동하고 자라나는 공간으로써 흔히들 해석된다. 정태춘의 가사에서의 물은 언제나 우리가 흘러가야 할 공간, 도달해야 할 이상적 – 허나 아련한 – 태고의 장소인 듯 하다.
이 관념적인 상상력과 열망의 다른 지점엔 다시 부른 ‘92년 장마, 종로에서’의 설득력이 존재하고 있다. 지금 현실이 물의 안식 대신 현실의 ‘물대포’가 기다리는 엄연한 마당이라 뇌가 쓰라린다. 정태춘의 곡절서린 목소리와 성스럽게까지 들리는 박은옥의 목소리는 50여분의 위안을 주지만, 재생이 끝난 후의 자리엔 삭풍이 불어온다. 첫곡 ‘서울역 이 씨’는 얼어죽은 노숙자 이야기이기도 하다.
퓨어 킴 (Puer Kim) [ㅇ (이응)]
홍대 음악씬은 일명 ‘신전’이라 불리기도 한다. 마케팅적 고려에 의한 타의로 몇몇 여성 뮤지션들이 ‘여신’으로 불린 탓이고, 여기에 비아냥이 더해진 이유 때문이다. 청명하고 낭랑한 톤과 HB 연필로 사각사각 써내린 듯한 소박한 가사들이 이들에게 덧씌워진 일관된 이미지인데, 실은 명백한 오해다. 이들 중 서로를 닮은 이들은 단 한명도 없고 제각각 다른 음악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여신이니 공주 대접이나 받고자 통기타나 우클렐레 등을 들고 나온 이들은 아무도 없다.
‘아’. ‘야’, ‘어’, ‘여’ 등의 1음절 모음 표기 제목으로 구성한 곡들을 묶은 이 음반의 주인공 퓨어 킴 역시 마찬가지이다. 음악은 일견 포크 팝처럼 들리고 보컬은 그냥 그런가 싶던 고양이 같은 목소리이지만, 가사는 범상치 않다.(부모님의 섹스를 거론하고, 유기농 식품에 대한 가사를 읇조리다 서로간에 뿌린 마음의 씨앗에 대한 이야길 혼잣말처럼 뇌까린다.) 무엇보다 들쑥날쑥하지 않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반의 끝까지 인도한다.
솔직하되 불편하지 않고 아는 것이 많은 듯 펼쳐 보이지만 젠체하지 않는, 그럼에도 음악하는 이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은 적절한 신비감까지 구비하였다. 상당히 매력적인 (요샛말로)’멘탈’이다. 무엇보다 계속 곱씹어 들어보게 하는 음악 자체들이 좋다.
404 [1]
이 글을 쓰는 나와 몇몇 사람들은 락 음악을 짐승이나 야수에 비유하기도 한다. 아마도 락 음악이 가지고 있는 혈기방장한 육체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락 음악은 땀방울의 음악이자, 듣는 이의 피와 심장박동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는 덕이리라. 404도 그런 지점에서 작년 한 해 나온 팀들 중 주목할만한 팀이다. 정말이지 단촐한 구성의 2인조 밴드지만, 다른 편성의 밴드들에 연주력이나 에너지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근간의 유행(?)인 EP나 미니 앨범의 형식으로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음반을 당당하게 ‘1′이란 숫자를 박고 정규작으로 출시하였다. 선명한 멜로디라인 보다는 빽빽한 기타 리프로 가득한 수록곡들은 로 파이(Lo-Fi)한 분위기로 ‘날것’의 기운을 타며 요동친다. 축축한 어둠 속에서도 생동감이 넘치고, 빈틈은 좀체로 보이지 않는다. 탄탄한 음반이다.
운이 좋아서 본 공연 덕에 더 좋아진 ‘춤’ 같은 곡은 물론이고, 제명에서부터 한국적 뽕끼에 대한 애정을 담은 ‘날 보러와요’ 등 기억할만한 곡들이 많다. 무엇보다 단순히 음반을 듣는 행위만으로 만족을 주지 않는다. 이런 음악들이 추운 겨울 공기를 박차고, 이들이 뛰고 있는 무대로 오라하는 손짓을 한다. 기꺼이 응해야 한다. 그것이 세상 속에 락 음악이 있는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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