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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

trex 2019. 7. 3. 20:58

인피니티 사가의 장대한 여정이 이렇게 마무리된다. 그동안 사람들의 MCU에 대한 익숙함은 급기야 피로감으로 전이했고, 이는 역으로 MCU의 새로운 Phase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으로 유력하게만 보인다. 이런 내부의 분명한 위협에도 마블의 승승장구의 비결은 명확해 보인다. “그럼에도 우린 해냈다.” 이 자신만만함이 극단으로 드러난 [어벤져스 : 엔드게임]의 휘황찬란한 막바지 액션들은 서사의 타당성과 설득력을 논외로 만들어버리는 과시로 충만하다.

MCU에서 좀체 찾아보기 힘든 파행적인 에너지와 과욕으로 가득한 [맨 오브 스틸]의 시도를 제외하고는,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이력을 관망시키는 힘을 매번 불안하게 지탱하는 [원더우먼], [아쿠아맨] 등이 거둔 반쪽 승리들은 아쉬운 연타였다. MCU 역시 이 작품들의 성취의 절반에도 닿지 못하는 [토르] 시리즈가 엄연히 존재하나 그것을 상기할 새도 없이 정신없이 채우는 남은 캐릭터들의 연타석이 공백을 메꾸는 역할을 해온 덕에 지금까지 안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블은 이 연대기를 ‘인피니티 사가’라고 낯간지럽고도 웅장한 명칭으로 명명하기에 이르고, 이것이 [아이언맨1]을 시작으로 한 토니 스타크가 문을 열고 토니 스타크가 문을 닫은 이야기임을 말없이 천명한다.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은 트레일러 공개 당시부터 딱히 그 의도를 숨기지 않았고, 다소 버거울 정도로 그 사실을 작품 내 매번 상기시킨다. 작품 전체를 지배한  자욱한 그림자는 토니 스타크와 아이언맨 캐릭터 지지자인 나조차도 역할 정도였는데, 스파이더맨이라는 독립적인 아이콘의 존립을 위협한다는 반감이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참으로 아이러니하게 피터 파커가 이 자욱한 그림자 아래 부담감으로 눌려있다 독립했다고 판단했던 그 순간, 진정한 위기의 존재는 의도를 명확히 드러낸다. 악당의 존재의 탄생 연원엔 생전에 토니 스타크 자신도 미처 알아채지 못한 업보의 결과가 있음을 관객은 알게 된다. 이런! 아이언맨 정통 계승자 역할이 버거워 덜어냈더니 그래도 나는 왕관의 위치를 책임감 있게 제자리에 돌려놔야 한다. 피터 파커는 슈트와 기술력의 지원이라는 전임자들과는 차별화된 강점에도 ‘고생길’이라는 기본 옵션을 덜지 못한다. (쿠키의 의도든 아니든을 떠나 이런 기본 옵션을 다시 강조하며 얹어주듯 ‘고생길’이 스파이더맨의 천형임을 강조한다)

그래도 이 덕분에 작품의 생기가 발생한다. 서두부터 배치된 멀티버스 핑계와 초자연적 현상을 닮은 엘리멘터리들의 존재에 대한 정보와 등장 타이밍이 내심 부담스러웠는데, 내막이 밝혀지고 본편이 펼쳐지니 전작 [스파이더맨 : 홈커밍]의 부족함을 덜어주는 장면들이 흥을 올린다. 코믹스 세계관의 설정 안에서 ‘환각’이란 키워드로 대표되었던 미스테리오의 어빌리티는 새로운 시대의 풍경에 어울리는 것을 바뀌었고, 그게 설득력이 제법 있다. 이로 인해 달라지는 액션의 풍경은 마치 지난번에 발매한 소니 플레이스테이션의 [스파이더맨] 게임판의 것을 연관하여 상상력을 자극하게 설계되었고, [나이트 크롤러]의 출연을 두고 캐스팅한 게 너무 분명한 제이크 질렌할의 대사들은 찰기가 지게 전달된다.

작품 안에 자욱하게 드리운 토니 스타크 내음을 덜기 위한 시도는 스파이더맨에게 ‘걸맞는 활공’을 넣어주자는 노력으로도 보이고 - 다분히 소니와 오래된 팬들의 불만을 반영한 듯 보인다 - 부족하게나마 채워진다. 정작 배우는 계약이 한편 남았다고 하는데 (그래요 계약이야 연장하면 되지만요) 사람들의 기대를 채울 스파이더-버스의 장관은 아직 구현될지 아닐지 아슬아슬하게 보인다. 이런 성취는 정작 소니 픽처스가 애니메이션을 통해 자신들이 먼저 이룬 듯하다. MCU의 다음 Phase는 새로운 장을 예고하고 있고, 이 장 안에서 스파이더맨이 독립적이고 뚜렷한 아이콘으로 자리를 잡는 것은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