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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trex 2023. 3. 25. 09:05

관습적으로 전쟁 배경 대작엔 웅장한 오케스트레이션이나 현악이 주도하는 사운드트랙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스내어 드럼의 타격이 전자음악처럼 반복되며, 전자 기타의 출력이 이어지는 본작의 사운드트랙은 조금 다르더라. 볼커 베텔만의 음악을 비롯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주지하다시피 독일의 문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의 소설을 독일 제작진의 역량으로 완성한 본작은 소설만큼 유명했던  할리우드 산 1930년작의 성취를 한결 넘어섰다고 한다. 

현대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의 상당수는 영화는 물론 TV 시리즈, 게임까지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성과를 얻었다.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통해 보여준 전쟁 장르물의 가능성은 그의 TV 시리즈 기획 [밴드 오브 브라더스], [퍼시픽]로 고스란히 이어졌는데, 이런 움직임의 계승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대중적인 갈래나 테렌스 멜릭의 [씬 레드 라인] 같은 아트 무비의 계보를 낳기도 했고, 마이클 베이나 롤랜드 에머리히의 [진주만], [미드웨이] 같은 헛된 돈낭비로도 이어졌다.

어쨌거나 상대적으로 약했던 1차 세계대전 배경의 라인업은 [1917]로 인해 일종의 분수령을 낳았는데,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생각하면 작은 규모였던 스필버그의 [워호스]의 위치를 생각하면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또렷한 반전주의는 한층 인상적이다. 그들 자신이 부족한 반성으로 인해 전체주의의 광기를 확장시켰음을 토로함은 물론 현대사 안에서 지옥 같은 역사를 야기했음을 상기시킨다. 비단 20세기 한 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총구를 겨누며 의미 없는 희생을 요구하는 세계 도처의 21세기 사람들을 향한 코멘트 같기도. 

시간이 갈수록 퀭해지는 주인공 파울의 안구, 당장의 배고픔과 따스한 의복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주제에 무작정 총칼을 들기를 강요하는 위정자들의 허약한 논리는 어느새인가 훌쩍 지나가는 2시간 반 가까운 러닝 타임을 채운다. 곤두선 굉음을 들려주며 무작정 달려드는 무한궤도의 전차가 등장하는 현대전의 공포스러운 광경까지 작품은 시종일관 전쟁을 통해 재현되는 것엔 아름다움이 일체 없음을 보여주는 듯. 그저 총탄에 쓰러지는 사체와 쌓여가며 도처를 덮는 주검밭의 풍경만을 담는다. 참호 속의 병사들은 예정된 운명을 안고 줄지어 대기 중인 예비 사상자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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