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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xism : 렉시즘
조부님. 본문
- 2년전 조모님 별세 때에 슬펐던 것은 조모님의 일 자체보다 그녀의 영정을 기다리던 큰댁 방의 조부님이었다. 조부님의 눈안에 맺힌 눈물의 덩어리들을 잠시도 주시할 자신이 없었다. 그 시간 이후로 그는 급격히 노쇠해졌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나온 둘째 아들이 - 나의 부친이기도 한 - 그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후 노쇠는 눈에 띄게 진행이 되었다. 몸은 하체부터 무너졌고, 언어는 흐릿해졌고, 청각은 우리 세대와 차단이 되었다.
- 조모님이 세상을 떠난 것은 2년전의 6월 첫날이었던가. 조부님은 2009년 6월 29일 오전 7시 30분, 그가 가지를 뻗었고 뿌리를 내렸던 밀양, 그곳 한 병원 속의 하얀 벽 아래 숨쉬기를 멈추셨다.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깔린 철도 위를 관리하던 공무원직을 그의 큰 아들 역시 이어받았고, 그의 둘째 아들은 박정희식 근대화의 '기적'으로 만개하던 영남지방의 한 소도시에 다른 뿌리를 뻗어갔다.
- 조부님의 아흔 셋 生 안에서 나는 손자라는 의미 이상의 기쁨이나 의미를 줬을까. 전혀 자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부족함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영정사진을 들고 밀양 구석의 한 산줄기 아래 그가 묻힐 땅 위를 등산화로 저벅저벅 밟는 것 외엔.
- 명복을 빕니다. 위에선 그저 손 잡으며 서로간의 편안한 부채질을 하며 웃음만. 부디.
- 조모님이 세상을 떠난 것은 2년전의 6월 첫날이었던가. 조부님은 2009년 6월 29일 오전 7시 30분, 그가 가지를 뻗었고 뿌리를 내렸던 밀양, 그곳 한 병원 속의 하얀 벽 아래 숨쉬기를 멈추셨다. 식민지 근대화 과정에서 깔린 철도 위를 관리하던 공무원직을 그의 큰 아들 역시 이어받았고, 그의 둘째 아들은 박정희식 근대화의 '기적'으로 만개하던 영남지방의 한 소도시에 다른 뿌리를 뻗어갔다.
- 조부님의 아흔 셋 生 안에서 나는 손자라는 의미 이상의 기쁨이나 의미를 줬을까. 전혀 자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부족함을 알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영정사진을 들고 밀양 구석의 한 산줄기 아래 그가 묻힐 땅 위를 등산화로 저벅저벅 밟는 것 외엔.
- 명복을 빕니다. 위에선 그저 손 잡으며 서로간의 편안한 부채질을 하며 웃음만. 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