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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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리고 하반기 직전 앨범들, 이야기

trex 2009. 7. 6. 10:23

* 음악취향Y 업데이트 : http://cafe.naver.com/musicy/9198

메모장을 열며 글쓰기를 준비한다. 귀에 꽂혀 재생되고 있는 앨범은 마이클 잭슨의 앨범 『History』이다. 주지하다시피 그이의 죽음은 이 땅의 숱한 음악팬들의 가슴에도 스산한 구멍을 낼 정도로 진파가 큰 충격이었다. 음소거 상태의 모니터에선 OCN의 공포스릴러 방영작인 [GP506]이 나오고 있다. 우리를 감싸는 도저한 죽음의 기운들. 그것은 기다란 네모난 구멍 속으로 집어넣는 부의금 봉투의 현실이기도 하고, 잡지와 TV를 메우는 선정성 가득한 문구들 틈새 사이의 오락이기도 하다. 각기 다른 죽음을 둘러싼 담화들, 그래도 이 죽음들이 일깨우는 교훈 중 하나는 "그래도 살아야지"라는 당위감들이다.


그 교훈을 안고 우리는 오늘도 하루 두세끼의 숟갈을 그래도 꾸역꾸역 넘긴다. 숟갈질이 때론 버거워 우리가 택하는 휴식의 숨통 중 하나는 음악이다. 하릴없이 열어본 메모장에 하반기가 본격적으로 들이닥치는게 무서워 그동안 들은 음반들의 자잘한 생각들을 담아 남긴다. 게다가 이 숨고르기를 해야만 그 다음 진도로 마이클 잭슨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을 적을 수 있을 듯 하다.


마를린 맨슨의 『The High End Of Low』로 트위기는 돌아왔지만, (당연하게도)그는 마를린 맨슨 밴드 사운드의 만병통치약은 아니었다. 군데군데 인상적인 통통거림을 선사하며 반가운 회귀의 인사를 남기긴 했지만, 「Arma-goddamn-motherfuckin-geddon」, 「We're From America 」 같은 트랙은 맨슨의 음반에서 연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크게 벗어나진 않는다. 맨슨은 일단 이 앨범에서 전작이었던 『Eat Me, Drink Me』을 벗어나고픈 모양이다. 사변적이었던 전작에서 보여준 속내가 못내 쑥스러웠던 모양인지 다시 위악적인 지옥바닥으로 귀환하였지만 아이디어가 풍부해 보이진 않는다.


여전히 처절하고 블루지한 뒤틀림으로 가득한 초반부가 '솔직히' 뭉클하게 반갑긴 하고, 특히나 7번 트랙 「Running To The Edge Of The World」는 속쓰리게 좋은 넘버다. 그럼에도 앨범이 전반적으로 흡족하진 않다. 아마 한번 더 기회를 줘야 할 듯 하다. 맨슨에게 이번에는 트위기를 놓치지 말라고 충고는 하고프지만, 부진의 이유가 비단 그거 딱 하나뿐은 아닌거 같다.


그린 데이의 『21st Century Breakdown』는 앨범 제목도 그렇고, 3부작이라는 컨셉 구성도 그렇고 내적으로 상당히 당찬 야심이 서려 보인다. 아무래도 이 앨범을 가능케 한 원인이었을 『American Idiot』이후의 앨범이서 그럴까. 부시 정권의 깃발은 내려갔을지언정, 우리는 오바마 시대 역시 긴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부라린 시선인 것일까. 암튼 인상적이다. 펑크 밴드로서는 어쩌면 수세대 사랑받을 아레나 투어급 밴드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드라마틱하고 장쾌하고 애상적이고 여운도 깊다.


그래도 『American Idiot』의 맹진을 좀 더 긍정하련다. 『21st Century Breakdown』의 야심은 다소 낯설다.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꿈꿀 멋진 야심인 근사한 컨셉 앨범 포맷과 외적 세계와의 대결, 작곡상의 야심 충족 등 그린 데이는 현재 디스코그래피의 어떤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나는 그 행복함이 일차적으로 듣는 팬들이 기쁨이라기보다 뮤지션 당사자들의 기쁨 같아 보인다. 『American Idiot』이 선사한 열띤 감정의 순도에 대해선 그다지 의심을 품지 않았는데, 『21st Century Breakdown』에 대해서 감탄하는 것은 왠지 자신에 대한 검열 없이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든다. 왜 그런걸까. 여담이지만 린킨 파크의 신곡보다 더 부각되었던 그린 데이의 신곡 「21 Guns」가 [트랜스포머2]의 러브 테마인양 흘렀을 때 뒤틀리는 내 사지는 개불이로 '트랜스포밍'할뻔 했다. 왜 좋은 곡이 마땅한 그릇을 못 찾아 그 모양인지 혀를 찰 노릇이다.


[안드로이드는 전자양 꿈을 꾸는가?]라는 고유 타이틀을 짖궂게 바꿔보자. '전뇌오덕은 코스츔걸 꿈을 꾸는가?' 응 아마도. 간혹 꾸지 싶다. SM엔터테인먼트는 이 천일몽을 단박에 성취시켜준다. 무섭다. 정말 이거 다음엔 뭐 할게 있을까?라는 섣부른 걱정까지 심어줄 정도다. 아니 그런데 그 다음을 우리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당장은 제기차기 구경만 하자구요.


「소원을 말해봐(Genie)」는 언뜻 제목만 보자면 첫 싱글의「Perfect For You(소원)」(훗날 정규 1집에서 「Honey(소원)」로 개칭됨)을 연상케 한다. 물론 곡 자체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른, 귀엽게 달음박질하는 일렉에 소녀들의 떼창이 반복적으로 그리고 씩씩하게 나오는 곡이다. 혹자들에겐 제2의 「다시 만난 세계(Into The New World)」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곡이 지녔던 긍정적인 씩씩함의 재래로써 반가운 구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묘하다. 소원을 들어주는 여신을 자처하지만 귀를 간지럽히는 보컬은 잘 봐줘야 장난꾸러기 요정들의 수다놀음이다. 게다가 무대를 채운 마린룩의 향연은 어지럽다. 메시지는 이미 중요하지 않다. 소원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코스츔걸들은 소원을 채워주며 다음곡을 향해 내달린다. 바쁘다. 하긴 안팎으로 어제오늘도 총성이 오가는 여의도 전쟁터에서 전투식량 먹을 시간도 없겠지.


자 그 다음은 마지막, 드림 씨어터의 『Black Clouds & Silver Linings』. 드림 씨어터는 전작이 던져준 우려 덕에 본작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었지만, 현재형 상당히 만족하고 있다. 드림 씨어터는 프로그레시브 메틀이라는 보수적 외형(?) 안에서 당대의 트렌드 사운드를 교합시키는 등의 시도로 자신들의 음악을 최대한 현대화하는데 주력했었다. 그 덕에 툴, 뮤즈, 일렉트로닉 등의 익숙한 키워드가 드림 씨어터化된 형태로 선보이곤 했는데, 좋게 표현하자면 혁신을 말할 수는 있었지만 몇가지 우려를 준 것도 사실이었다. 덕분에 전작 『Systematic Chaos』는 이런 우려들을 한데 모은 정체 상태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듯 하였다.


사실 신작 『Black Clouds & Silver Linings』을 대표적으로 채우는 정서는 고딕의 분위기다. 그런데 고딕 특유의 스산한 기운과 고답적이고 눅눅하게 굳은 성벽 안에서 드림 씨어터는 오히려 굉장히 잘해내고 있다. 이 성벽을 타고 올라가며 화려하게 또아리치는 넝쿨은 분전하는 페트루치의 기타다. 강건하게 우뚝 선 고딕의 기둥은 되려 탄탄한 드림 씨어터의 세계관과 적절히 조우하며, 그 안에서 페트루치의 기타는 활강과 비상을 거듭한다. 여기에 소우주를 창안해내는 루디스의 키보드가 보여주는 활약상도 가슴을 뛰게 한다. 음악이 꼭 혁신에 매달리지 않아도, 익숙한 방법론으로 충분히 앞으로 진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e Shattered Fortress」에서 보여주는 드림 씨이터 근작 디스코그래피 유영도 인상적이고, 무엇보다 「The Best Of Times」이 상기시켜주는 (반복되는 화두인)죽음이라는 키워드는 듣는 나를 숙연케 한다.


이야기는 이어진다. [09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