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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3.12 발매예정 음반의 걸작 규정, 옳은걸까? (2)
  2. 2011.12.30 2011년, 당신을 위한 앨범 3장
posted by 렉스 trex 2014. 3. 12. 21:22

한파 없던 겨울 덕에 해동도 빠른지 음반 시장이 중견들의 잇따른 복귀에 설레는 기운이다. 사이버 가수 아닌 분명 생명체인(^^;) 이규호의 두 번째 정규반이 15년 만에 발매되고, 이소라의 신보 8집이 6년 만에 개설된 트위터와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발매 예고를 알리고 있다. 이뿐인가. 한국 대중음악씬의 변방인 헤비메탈씬에서 '아직도 기둥인' 밴드 블랙홀이 9년 만에 신작 [Hope]를 내놓았고, '커피 한 잔'의 여성 음악인 김추자가 33년 만에 신중현의 미발표 신곡까지 담은 신작을 내 LP 세대들을 두근거리게 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선희의 데뷔 30주년의 의미를 담은 신작, 이승환의 정규 11집 등 발매를 기다리는 음반도 수북하다. 여기에 열성적인 팬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토이의 신작 역시 이런 기다림의 대상이라 하겠다. 이소라의 경우는 제작비 3억의 규모를 앞세우는 언론의 이바구들이 다소 민망하지만, 자신이 택한 작곡가와의 협업에서 언제나 최상치를 뽑아내는 기량과 음반 패키지에 대한 성의로 충만했던 이력에 비추어 본다면 양질의 음반이라 예상된다. 이규호의 경우는 15년 만이라 그를 기다렸던 팬들의 입장에선 들뜰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모양이다. 



비단 이소라와 이규호의 경우뿐만 아니라 복귀작이라는 것은 언제나 설렘을 주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발매 간격만 아니라 음악인 특유의 아우라가 형성된 경우, 그것은 작가의 자존심 서린 예정된 걸작 취급을 섣불리 받는 예가 흔해진 탓이다. 소급해보면 작년 조용필과 장필순, 들국화의 신작들이 발매 소식을 알렸을 당시도 이런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된 바 있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다소 물음표 말풍선을 띄워 본다. 발매 예정 기대 음반에 대한 이른 찬사와 '걸작이 틀림없다'는 예견들은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이건 마치 포털 영화 평점란에서 상영예정작 평가를 별 다섯 개 매기는 것과 유사한 행위 아닌가. 물론 이것은 기대심리에 의한 것이고, 이 기대심리를 개개별로 탓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탓할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중견들의 기대작이 발매도 전에 반사적으로 찬양의 대상이 되고 평가에 있어 자동으로 우위에 올라오는 것이 음반을 평하는 행위에서나 음악 시장을 다루는 저널리즘의 태도에서, 또한 음악 애호가들에게 건강한 일인지는 의문을 품어본다. 



음반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발매 이후 여러 요건, 음악인이 작업해온 이력 전반의 맥락과 사회적 맥락 등 여러 각도를 조명하는 과정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몇 년 만에 돌아온 중견의 복귀작이라는 이름으로 바로 걸작의 대접을 받거나, 걸작이 아닐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시각에 대해선 날 선 대응을 하는 게 건강한 비평과 여론의 태도는 아닐 것이다. 언제부터 우리는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게 된 것일까? 이 글은 이런 의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글쓴이의 입장에서 이소라와 이규호의 복귀작이 범작 이하일 거라는 섣부른 단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익숙해져 온 생각의 관성에 대해 의문을 품은 것이다. 




90년대가 작가의 시대였다는 가정형.



김추자와 한국대중음악씬의 변방이나 다름없는 위치에서 '가난함'이라는 캐릭터를 강제로 씌워진 채 외면당해온 블랙홀의 경우 등을 제외하자. 이규호와 이소라, 사람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토이(즉 유희열), 이승환 등은 90년대에 데뷔하여 한국에서 자국의 음반이 수십만 장 팔릴 수 있음을 알리고, 한국의 음반을 사고 듣는 것이 뿌듯한 행위임을 입증한 첫 번째 젊은 작가 세대들이었다. 이들은 이력 상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자기들만이 낼 수 있는 문체를 가지고 각각의 음반에 의미 있게 새겨냈다. 



이 믿음과 더불어 점점 드문 해지는 음반 발매 주기의 간격 덕에 충성스러운 음악 애호가들은 오매불망 신작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이 90년대에 보여준 빛나는 광휘를 여전히 21세기에도 재현해낼 것이라는 믿음도 그렇지만, 실제 이소라의 경우처럼 21세기에 와서 더 좋은 음반을 만들어낸 실제 예도 하다. '그저 활동해주어서 고마워요.' 이상의 의미를 담은 이 굳센 충성심은 실제 결과물이 퇴색된 면모를 보여줘도 어떤 현실부정을 낳기도 한다.(글쓴이 개인적으로 넥스트의 [ReGame] 같이 말도 안 되는 작품을 긍정했던 몇 년 전을 떠올리면, 아직도 이불을 성층권까지 차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전례들처럼 앞으로 윤상과 김현철 같은 90년대의 작가들이 정규 복귀작으로 돌아온다면, 유사한 반응은 계속될 듯하다. 



음원의 시대에 음반을 만들어주신 감사함.



90년대 작가들 일군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은둔의 이미지까지 겹 씌운 장필순, 이미 음반으로는 일가를 이룰 정도가 된 조용필, 한국 음반 비평 시대의 개막과 함께 거장 대접을 받아온 들국화 등의 경우는 더욱 두텁게 형성이 된 이미지가 있다. 90년대 말 이후 아이돌의 난립과 음반에서 음원 위주로 재편된 - 그로 인해 음악인의 생계를 근본적으로 위협하게 된! - 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모양새, K-Pop 구호의 공허함 등에 질린 대중들은 이런 중견의 복귀작에 당연히 반길 수밖에 없다.



한국 음악의 자존심으로 존재함에 대한 경도감이랄까? 청자의 입장에선 이들 중견의 음반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 회복이자 자신의 음악취향을 빛낼 수 있는 유효한 증거물이라 하겠다. 별점과 수사학을 사용하는 평단은 혐오해도 작가주의는 긍정하는 이 대중심리의 속사정에 대해선 더욱 더 탐구가 필요할 듯하겠고, 여기서 다루기는 무리가 있겠으나 한 음악인의 이력 전체에서 음반을 줄 세우기 해야 하는 평론가와 음악 애호가들은 어쩌면 비슷한 운명을 타고난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한쪽은 뜨거운 열정과 다른 한 쪽은 냉혹한 줄자를 지녀야 겠지만.



SNS 시대의 부작용.



문제는 트위터를 위시한 SNS 시대는 평론가와 애호가의 영역을 슬며시 지워버리고, 뮤지션과 청자 간의(또는 뮤지션과 뮤지션 사이) 거리감을 좁히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고 그만의 장점을 말하기도 쉬운 일이다. 하지만 발매 예정작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는 저 개인은 평론가인지 애호가인지 말할 수 없는 점성의 상태, 발매 이후 해당 음반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 스레드가 해당 뮤지션에게 리트윗된 것을 보고 쾌재를 부르는 저 개인은 프로페셔널인지 아마추어인지 알 수 없는 연성의 상태. 이런 것들이 음반을 듣고 말하는 행위를 알게 모르게 싱거운 것으로 만드는 듯하다.



좁아진 거리만큼이나 획득하는 정보의 밀착감도 다르고 유대의 속도도 신속해지지만, 상찬의 언어는 늘어나고 서로 간의 기름지고 유연한 태도로 인해 일어나는 부작용은 또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한국식 온정주의의 연장선, 불가결한 장르 수입의 역사를 '뿌리 깊은 한국대중음악사'로 치환하는 과정에서 생긴 형님 모시기의 폐해에서 나온 부작용인가. 이게 과연 좋은 걸까? 이 또한 중견들의 복귀작에 대해 자동으로 명반 대접을 보장하는 언론 문구의 시시함과 별반 다를 건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음반평과 음반 해설지와 보도자료 간의 차이점이 점차 흐려지는 세태는 이런 SNS 시대의 눈치 탓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떠올려보자. 몇 년 만에 중견이 내는 정규작들은 언제나 걸출하였는가? 툴의 음반 [10,000 days]는 [Lateralus]만큼 근사한 음반이었는가? 건즈 앤 로지스의 복귀작 [Chinese Democracy]는 요란한 야심만큼 좋은 음반이었는가? 나인 인치 네일즈의 [Hesitation Marks]가 [Upward spiral]이라는 별명에 걸맞는 음반이었나? 스매싱 펌킨스는? 레드 제플린은? 취향이라는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음반들은 그 개수만큼이나 각각의 다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존재인 듯 하다. 



멀리 다른 나라의 예까지 가볼 필요가 없을 듯하다. 작년 조용필의 음반 [Hello]는 사람들의 상찬만큼 좋은 음반이었을까? 김희갑/양인자 듀오의 곡을 받거나 창작곡을 번걸아 내며 활동하던 시대의 왕성함에 비해, 젊은 음악인들과 함께 한 복귀작이 청자들의 귀에 찰만한 결과물인지는 갸우뚱하다. 노장의 복귀라는 이름으로, 아니 한국 최고의 가창가이자 장르의 탐색가로서 최선봉에 섰던 그에게 상찬은 예약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Hello]는 솔직한 몇몇 아쉬움 들을 토로해도 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장필순의 [Soony 7]은 [Soony 6]만큼 걸출했는가? 아니 [Soony 6]가 5집보다 나은 것이 맞는가? 이렇게 질문하는 방식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 난삽하고 공격적인 예시들은 발매도 되지 않은 음반을 미리 상찬하는 행위보다 음반이 나오고 난 뒤 우리가 평가할 수 있는 여지와 시간의 의미가 더 중요함을 말하고 싶음이다. 그것이 소위 한국 대중음악의 전설이라 일컫어 지는 들국화든, 군무를 연상케 하는 몸짓으로 3분여의 시선을 잡아버리는 걸그룹의 음악이든, 자립음악의 영역이든 간에. 중견에 대한 예우와 음악을 여전히 하는 행위에 대한 응원의 의미나 걸작 부재의 시대에 걸작의 깃발을 세우려는 안간힘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제대로 듣기'가 아닐까 한다. [130312]




+ 웹진 다:시 게재 - http://daasi.net/trex/2014/03/2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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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네르 2014.03.14 09:27 신고  Addr  Edit/Del  Reply

    맞는 지적입니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돌과 차별되는 '옛 가수'는 죄다 거장이 되어버린 느낌이. 그 팬층들이 우린 아이돌 팬과 달라, 우리가 듣는 음악이 좀 낫지, 라는 생각을 저런 식으로 표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나치면 뭐든 민망하죠. 하물며 발매전부터 저런다면야... 기대와 평가는 분리가 되어야 하는 건데요.

    하지만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제 지갑이 조만간 탈탈 털릴 거라는 사실일까요.... ^^;
    저는 그저 '기대감'만 만빵인 90년대 작가들의 팬.

posted by 렉스 trex 2011. 12. 30. 14:02



2011년만큼 도처에 음악이 산재했던 년도가 있었을까? 방송 3사도 부족해 케이블에서까지 각종 음악 서바이벌쇼가 포진하였고, 사람들은 가시적으로 드러난 K-POP(케이팝) 열풍에 제법 들뜨곤 했다. 월요일 오전이 되면 [나는 가수다] 탈락자와 각 노래에 대한 품평을 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들의 수다가 가득했고, 미국 유력 음악 매체 순위에 뚜렷하게 박힌 한국 걸그룹의 존재를 보고 누군가들은 설레어했다. 그럼에도 막상 연말이 되니 공허하다. 상당수의 소위 ‘음악한다’는 사람들은 토크쇼 방석에서 진행자를 의식하며 과거사에 얽힌 농담을 뱉어야 하고, 바닷길 배에 올라타 지역 특산물을 수확하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거기 어느 구석에 대관절 음악이 깃든지는 알 도리는 없고, 사람들은 [나는 가수다] 동영상은 보지만 음반을 정작 구매하진 않는다. 음반 시장의 구도는 진작에 디지털 싱글과 미니 앨범이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재편된지 오래고, 일간지와 일부 매체들의 연말 앨범 결산은 남의 일이다.


그럼에도 올해에 난 앨범 3장을 넌지시 독자들에게 밀어본다. 1장도 좋고, 다섯장도 좋고 10장도 좋고, 수십장도 좋겠으나 이 앨범만큼은 이 글을 읽을 몇 사람들에게나마 통했으면 좋겠다. 내가 한 해를 기억하는 방식 중 하나는 당해년도 앨범에 대한 의미부여다. 남에게 통할리는 없겠으나 그래도 소박한 추천으로 받아들여졌음 좋겠다. 소개할 음반의 주인공들은 2명의 솔로 뮤지션과 1팀의 밴드 뮤지션이다.


백현진의 앨범 [찰라의 기초]는 문학적 수사로 보일수도 있고, 철학서적의 한 챕터 같기도 한 오묘한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정규 음반으로 볼 수도 있지만 실은 라이브 음반이다. 그런데 막상 들으면 바삭 마른 사운드와 분위기가 라이브반이 아닌 스튜디오반으로 들릴 지경일 것이다. 객석의 연호도 없고 들뜬 분위기도 없다. 음반을 채우는 것은 간혹 울컥대는 싱어 백현진의 보컬이 조성하는 예측불허의 방향이다.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같은 이은하 원곡의 리메이크에선 농염하고 간절하던 본래 분위기는 없고, 백현진의 일관되게 마구 흘려 부르는 창법만이 가득하다. 세션을 맡은 – 각기 기타와 피아노를 맡은 – 방준석과 계수정의 가세는 음울하고 도발적인 분위기를 더한다.


정규 음반에서도 악명(?)을 떨쳤던 가사를 백현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뱉고 씹을 때, 그가 왜 홍상수의 영화 [북촌방향]에 카메오로 나왔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쏘맥과 참치 뱃살을 함께 한 여자의 육체를 관음하며 감상을 뱉기도 하고(「여기까지」), 어제 본 여자를 떠올리며 자위로 욕구를 털기도 하고(「목구멍」), 수잔 베가의 노래를 전반부에 무심하게 섞다가 예의 끌어안고 섹스를 하던 시간을 떠올릴듯 말듯 한다(「학수고대했던 날」) 물론 홍상수의 영화는 섹스만을 이야기하진 않지만, 그 끈적한 육체성과 멀쩌기 서있는 시선의 문제는 백현진의 음악과 닮아있다. 이 불편한(!) 뮤지션은 난데없이 [나는 가수다]에 출전한 자우림을 위해 1번의 지원사격을 한 바도 있다. 그의 끓는 보컬은 방송에서도 힘을 발휘했지만, 당연히 이 앨범에 비할 바는 아니다.


두번째 소개할 음반은 문샤이너스의 [푸른 밤의 Beat!]다. 한글로 ‘비트’라고 표기해도 될 것을 굳이 Beat라고 새긴 것을 보면, 문샤이너스는 락큰롤(Rock N’ Roll)의 한국적 변용을 넘어선 원형 구현에 천착하는 듯 하다. 표제작 「푸른밤의 BEAT!」는 영락없이 임하룡춤을 소환해 추고픈 흥겨운 락 넘버다. 문샤이너스로선 이것이 2집인데 기억컨대 1집이 좀 대단했다. 소위 더블 앨범이라고 불리는 ‘2장짜리 음반’이었는데, 재생 시간도 꽉꽉 들어찼고 내용물도 대단했다. 반면 집중력을 희생시킨 탓에 아쉬운 구석도 없진 않았다. 살을 뺀 2집은 훨씬 응집력이 느껴지고 밴드로서의 성장폭을 실감하게 만든다. 살랑이는 소소한 분위기의 「나보다 어리석은 놈, 그 아무도 없구나」가 주는 여유와 성찰도 좋고, 「검은 바다가 부른다」에서 보여주는 환상적인 순간은 락이 세상의 모든 것을 눌렀을 당시의 전성기를 연상케 한다.


[Top밴드] 같은 프로그램과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한 소위 ‘Rock Will Never Die’풍의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락에 대해선 유난히 척박한 이 땅의 풍토’를 개탄하며, 자신이 메신저임을 하나같이 자처했지만 결과적으로 갸우뚱올시다. 다른 장르도 그렇겠지만, 결국 락은 무대와 음반만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듯 하다. 거기에 지나치게 엄숙한 무게감을 부여하면 ‘장르 비타협’ 팬들이 나오긴 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곡을 만들고 생활과 예술간의 긴장 사이에서 전쟁을 치른 뮤지션들의 결과물은 언제나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해도 존중받아야 마땅한 음반들이 나왔고 개중 [푸른 밤의 Beat!]는 상당히 출중하다. 「마녀의 계절」같은 넘버들은 내년 여름까지도 당신의 몸을 움직일 음악이다. 밴드 노브레인(No Brain)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 무엇보다 그 자체가 ‘락큰롤 육체’인 멤버 차승우는 또 한번 문샤이너스로 자신의 성장세를 과시한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음반은 시와의 음반 [Down To Earth]다. 앞서 소개한 음반들의 뒤엉킨 욕구와 왁자한 사운드가 부담스러웠다면, 추천할 수 있는 일종의 최후 보루다. 시와는 기본적으로 조용한 사람 같고, 실제로도 조용한 음악을 한다. 프로젝트 작업인 ‘시와무지개’ 상엔 다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솔로 뮤지션으로서는 기타 하나 들고 음악 친구들의 조력을 받으며 낭랑하면서도 결코 무게감이 가볍지 않은 좋은 목소리를 들려주는 싱어송라이터다. 원래 그이의 1집 음반은 인디 음반의 메카인 신촌 향뮤직에서만 취급되었다. 일종의 독립 제작 방식이었고, 그녀의 목소리를 아는 이들이 한장씩 사듣기 위해 발품을 팔아 향뮤직에 들려야 했다. 2집부터는 환경이 바뀌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알 기회가 생겼다. 일단 다행이다.


두번째 음반은 기본적으로 1집을 잇는 듯 하지만 짧아졌되, 그만큼 ‘채움’에 주력하였다. 흔한 표현이지만 ‘관계’에 주력하는 듯 하고 비정치적이지만 바깥 일을 방관하지 않고 손을 내민다. (수록곡 「오래된 사진」은 5.18 다큐멘터리 [오월애]를 위한 오프닝곡으로 만들어졌다) 위로를 건네는 듯한 그이의 목소리와 기타의 숨결은 복잡다난하기 그지없었던 엉망진창의 올해를 마무리하는 ‘나홀로 밤에’를 위한 최적의 요소들이다. 그녀 자신도 「크리스마스엔_거기 말고」의 가사에서 ‘사람 많은 곳은 싫다’며 단 한 사람을 위한 초대의 인사를 보낸다. 이 정도면 다음날의 희망을 품어볼 수 있겠단 안도가 든다. 이렇듯 모두 해피 뉴 이어. [111228]


- 한겨레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7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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