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렉스 trex 2021. 1. 11. 23:01

코로나 정국에도 이걸 하네요. 202061일부터 20201130일 사이의 발매작들입니다. 정규반 여부와는 무관하며, 순위 또한 없습니다. 기존 문장의 재활용이 상당수 있습니다.

+ 참고 : 2020년의 상반기 국내 음반들, 7trex.tistory.com/2908

다브다 『But, All The Shining Things Are』 (2020.06)
포크라노스 

삶에 대한 두근거림과 발걸음의 속도감이 실감 나는 곡들이 가득하다. 여기에 한편으론 예상치 못한 여정에 대한 두려움을 내재한 듯 곡의 진행 역시 예측불허와 탄력을 가지고 있다. 리듬의 변화무쌍함을 주도하고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파트의 대응이 일사불란하게 벌어진다. 열심히 그리고 가열하게 진행하는 음반, 그게 음반이 지향하는 바깥 환경, 자연의 풍광들과 닮았다. 씩씩한 트랙, 씩씩한 음반. 구성상으로는 음반이 후반으로 갈수록 깊어진다는 것이 큰 강점이다. 

신해경 『속꿈, 속꿈』 (2020.06)
자체 제작 | 포크라노스

연모하는 상대의 모습이 총천연색으로 기억되는 꿈의 밤이 화자에게 어떤 의미일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것도 여전히 저편에서 들려오는 아련함으로 일관한 신해경의 목소리라면 더더욱. 여전히 마음속 진심이라는 동굴 저편에서 들려오는 울림과 보컬의 여진은 여전하다. 여전히 공간과 동경으로의 환상을 동시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녹음, 일렁이는 기타로 만든 그만의 드림 팝이다, 무엇보다 황홀경이라는 최종 목표만을 향해 만든 듯한 곡의 만듦새다. 이번 작품 역시 이런저런 세공의 정성이 깃들어 있다. 게다가 그 꿈의 면적이 한층 넓어지는 인상이다.

코토바『날씨의 이름』 (2020.06)
미러볼뮤직

여유와 태만을 허락하지 않는 가열한 속도감이 좋았다. 유독 습도와 검은 벌레들이 마지막 매듭을 장식하던 지난 끈끈한 여름, 유독 연주의 맛이 있는 밴드들이 올해 여기저기 등장하는 것을 확인해 즐거웠다.  +각 파트가 분산하지 않고 섬세하게 제각각의 소리 결과 진행의 뚜렷함을 생생히 전달해 좋았다. 

위댄스 『Dance Pop』 (2020.07)
Beeline Records

위댄스의 음반을 일반적인 유통 경로를 통해 쉽게 구매할 수 있었다는 점만으로도 2020년은 행복한 한 해였을지도 모른다. 내리쬐는 햇살처럼 난사하는 위기의 기타 퍼즈와 일렉트로닉이 얹어진 펑크 넘버 속에 위보의 예의 자유로운 몸짓과 노래는 여전하다. 이 홀가분함에 애써 레트로나 키치라는 표현을 편승하듯 보태는 것은 예의가 아닐까 한다. 이들다운 범상치 않은 아름다운 팝의 향연으로 가득하다. 충분히 뭉클하다.

전유동 『관찰자로서의 삶』 (2020.08)
인천광역시  | 포크라노스 

침잠에 가까운 차분함, 진지한 사고와 사물을 다루는 태도에 조동익의 『푸른 베개』(2020)의 전례가 잠시 떠올랐다. 때론 경건하게 인간의 터를 버리고, 자연을 경배하는 포크 일반의 이미지로 들렸다가 어떤 때는 씩씩한 락으로도 들린다. 전유동은 일관되게 성스러움보단 어둑한 곳에서 더욱 가치를 발하는 신록 그 자체가 되고자 하는 음악을 욕망하는 듯하다. 서점의 유소년 코너에서 《파블로 곤충기》를 들춰보는 새삼스러운 반가움 이상의 독특한 영험의 기운이 연주와 목소리에 깃들어 있다.

컴배티브포스트 『Whiteout』 (2020.09)
자체 제작 | 포크라노스 

49몰핀즈가 구사했던 드라마틱하게 기나긴 포스트록·스크리모 라인업의 부재가 새삼 아쉬운 요즘, 이일우가 그간 꾹꾹 누르며 응집한 파괴욕은 컴배티브포스트의 신작으로 몇 년 만에 자리를 되찾은 듯하다. 여기에 한국 블랙큰드·언홀리의 척박한 토양에 모종을 심은 밴드 파리아 소속의 드러머 조진만은 마치 뿌리의 일부를 화분삽으로 몸소 이 곳에 이식한 듯하다. 여기에 밴드를 대표하던 멜로딕 하드코어의 분위기는 「Farewell To My Dreams」, 「The Identity」의 떼창으로 여전함을 들려주지만, 본작에선 한결 무겁게 말을 아끼며 어둡게 한결 사악한 무드를 조성한다. 자신들의 본진 외에 이렇게 주(主)와 부(副) 구분 없이 행동 영역 내에 꾸준히 확장과 변이를 서서히 실천하는 것이다. 믿음직한 야심이다. 난무하는 리듬감은 이전의 밴드 넘버들과도 이면을 만든다. 어쨌거나 한 밴드의 차이 나는 국면을 만들었는데, - 지금 새상 안 그런 밴드가 어딨겠냐만은 – 이걸 라이브와 무대에서 들려줄 기회가 봉쇄되었다. 박복하기가 이를 데 없다.

보이어 『Footage Arcade』 (2020.10)
포크라노스

김동윤의 기타와 곡 만들기가 전반적인 방향을 관장하나 했으나, 뚜렷한 이야기와 테마를 담당하는 이지현의 피아노, 긴장감 있는 드럼의 터치와 베이스가 엄연히 자리하고 있더라. 곡 전반들에 변화의 종횡무진 속 중축과 확산을 도모하는 밴드의 특기가 이번에 더욱 듣는 즐거움을 줬다. 편안하고 안정된 차분함으로 접근했다, 백조의 발 갈퀴 같은 수면 아래의 끊임없는 운동이 만드는 활기는 듣는 바와 같다. 더불어 언급하는 밴드들과 이들은 하나의 뚜렷한 조류를 만들었다. 내 또렷한 작년의 기억. (두드러지는 보컬 등의 비중은 조류라는 표현을 실례임을 뉘우치게 할 정도로 타 팀과의 차이를 허했다)

로스오브인펙션 『Dark dimension』 (2020.10)
알레스뮤직

블랙메탈에 육박하는 사타닉한 기운이 철철 흐르고 있다. 블라스트비트가 밴드가 음반을 통해 어둡게 조성한 세계관의 색채감과 붓칠의 디테일을 실감하게 한다. 대구 로컬에서 단단하게 자생한 어둠의 세력. 또는 달구벌에서 온 참혹한 데스코어.

정밀아 『청파소나타』 (2020.10)
금반지레코드 | 포크라노스 

서울이라는 넓적한 공간에서 일상을 보내고, 이야기와 소리를 채취한 창작자가 기록한 영락없는 이야기 문학들의 묶음이다. 선명한 연주의 질감과 선율 위에 올려진 싱어의 목소리와 음악으로서의 리듬감이 실감 나게 실려 나온다. 팬데믹 시국이 만든 (거의 모든)창작자를 향한 위기감, 새롭게 자리한 지자체에서의 적응을 위한 공백 채우기가 만든 결과는? 좋은 음반이라는 결실이었다. 타인의 삶을 용인된 방식을 통해 살펴보다가 얻는 소득은 공감과 동시대 어딘가의 상대를 향한 손 흔들기의 인사. 서늘함 안에서도 미지근한 온기가 느껴진다.

램넌츠오브더폴른『All the Wounded and Broken』 (2020.11)
왓챠웃 | 미러볼뮤직

기대한 밴드, 기대한 음반의 공정 결과는 우려를 불식 시킬 만큼 좋았다. 메탈 코어라는 정의 안팎에서 표현할 수 있는 비통함, 처절함에 멜로딕 데스 메탈의 드라마틱한 구성을 빌어 만족할 수 있는 강도와 연주를 본작에서 들려준다. 소수 장르에 관심 없는 이들에겐 이해시키기 어렵겠으나, 들뜨는 감정으로 전달된 웰메이드 헤비니스를 한 해의 말미에 만난 것은 행복한 기억이었다.  [210111]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20. 7. 13. 15:24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7179

 

[Single-Out #307] 선한인간, 이진혁, 코토바, 펜토, 헤더썬

음악취향Y가 주목하는 싱글을 다양한 시선으로 소개드리는 싱글아웃 (Single-Out) 307회입니다.선한인간, 이진혁, 코토바, 펜토, 헤더썬을 살펴보았습니다....

musicy.kr

코토바 「Reyn」

박자를 쉽지 않게 쪼개면서 한편으론 그 나뉜 것들을 일렁이는 물결 안에서도 재조합하는 기량은 여전히 강점을 드러낸다. 일군의 매쓰록 밴드들이 지닌 날 서린 정교함과 때론 과시적 면모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음반에서 비교하면 더욱더 감성적이고 멜로딕하게 들린다. ‘의미 없음’을 반복되는 가사 안에서도 강조하지만 전작 『언어의 형태』(2019)의 표제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건 결코 ‘무의미’를 표방하는 자세가 아니라 명백히 연주의 행렬과 위세 안에서 흘린 듯이 들리는 메시지 속에 듣는 이들이 무언가를 잡길 바라는 역설의 태도로 들린다. 마른장마의 불편함이 지속하는 한 해 속에서 다브다와 더불어 소중하게 듣는 음반의 존재. ★★★1/2


펜토 「어쩌면 우리 서로에게 모든 걸 다 바쳤을지도」

「New York Doll」(2010)의 한 귀에 쏙쏙 들어오는 사운드와 펜토의 래핑이 선사한 차가운 간지는 생각해보면 새삼 과거사다. 과거, 만시지탄 이런 앓는 소릴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와닿는 곡이다. 뚜렷하게 들리는 반복하는 비트는 지난 타임라인을 묘사한 시계추처럼 들리고, 음악인으로서의 자존과 위축이 동시에 파고드는 가사는 속이 쓰리게 닿는다. 새삼 꺼내는 이런 솔직한 토로는 청자를 숙연하게 만들고, 후반부의 건반은 화자와 상대에 대한 관계는 물론 한 시대에 대한 종언으로 들리는 차분한 비통을 느끼게 한다. ★★★1/2

댓글을 달아 주세요

posted by 렉스 trex 2019. 9. 9. 11:02

웹진에서 글을 씁니다 / 별점은 이상한 제도죠 (링크 :  http://musicy.kr/?c=zine&s=1&cidx=16&gp=1&ob=idx&gbn=viewok&ix=6814 )    

=== == = ==== 


그들이기획한 「안녕」

자립음악인 회기동단편선이 솔로와 밴드 활동을 거치며, 음반 디자인 커버에서의 도발과 음악 자체의 야심을 이런저런 방향으로 표출한 시기 이후 담당자 이메일을 통해 ‘월급 받고 사는 사람’의 입장으로 역량 있는 다른 음악인들의 보도 자료를 보내며 조용하게 보내던 때 당시가 조금 슬펐던 기억이 난다. 그들이기획한이 회기동단편선으로서의 제자리는 아니지만, 음악했던 사람 생활인 박종윤으로서의 원류 중 하나인 것은 새삼스러운 발견이다. 보컬조차도 의기투합과 청춘의 시절을 – 그 나이대의 생활인 박종윤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 연상케 하는 맑은 기운을 드러내고, 영락없는 모범적인 기타 팝 연주가 정감이 간다. 작별의 것일 수도 있고, 해후의 것일 수도 있는 ‘안녕’이라는 인사말은 세월에 대한 예우이기도 하고 예술인이었던 회기동단편선이 생활인의 낯을 숨기지 않는 박종윤의 모습으로 혹시나 기다렸을지도 모를 불특정 다수에게 건네는 단어일 것이다. ★★★☆


코토바 「소멸의 소실」

일본어로 ‘언어’를 지칭하는 밴드명에도 코토바의 음악은 지시의 목적을 수행하는 언어의 태도보단 관념의 세계에 더 가깝게 들리고, 이런 아이러니를 즐기는 듯하다. 아주 잠시 지나가는 일본어 가사는 많은 정보와 단서를 주진 않는다. 러닝 타임을 채우는 것은 여타의 매스 록 밴드들이 그러하듯 청명한 톤의 기타, 재즈를 닮았으나 조급함과 듬직함이라는 두 얼굴을 각자 교차로 수행하는 성실한 베이스와 드럼이다. 후반부 포스트록의 체온 속에서 아련해지다가 명징한 띵함을 그 인상은 뚜렷하다. 태생과 취향을 숨기지 않는 솔직함 등이 주목하게 한다. ★★★☆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