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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03 [기생충]
  2. 2014.05.07 한국 영화 지리상에서의 [한공주]
posted by 렉스 trex 2019. 6. 3. 12:48

[기생충]의 초반은 봉준호의 복귀작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평이한 한국영화 속의 광경처럼 보인다. 관객들에게 반응이 좋았다는 와이파이 신호 잡기 장면과 비롯한 가벼운 웃음을 나오게 하는 장면들의 유머들이 그렇게 타율이 좋진 않았고, 박서준이 등장할 땐 내가 한국 영상물에서 느끼는 따분함이 극도로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던 작품은 가족 하나둘이 조여정과 이선균의 집안에 슬슬 틈입하던 대목들에서 슬슬 [플란다스의 개] 당시의 리듬을 상기시켰다. 데뷔 시절부터 꾸준하게 한국 사회의 권태로움에 균열을 내며 자신만의 리듬감으로 세상없던 광경들을 만들던 그 재능의 시대 말이다. [괴물]의 뉴스 장면에 나온 감염 위험성 경고처럼 송강호 가족들은 위태롭게 계급의 주제조차 망각한 채 ‘선을 감히 넘어 들기’ 시작했고, 이는 예견된 파국을 실현하고야 만다.

이제 이어지는 문제의 ‘지하실’ 장면에서 봉준호는 야심의 연출을 보여주는데, 그가 영화 경력 내내 천착해 온 ‘어두운 터널과 지하실’([플란다스의 개],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의 악몽을 재현한다. 결코 마주치기 쉽지 않은 일그러진 얼굴과 분간가지 않는 언어가 뒤섞인 사람이 등장하고, 감독은 질문을 던진다. [플란다스의 개]에서 상승을 위해 짚고 올라가야 하나 고민하는 서울 시민의 고민에서 [설국열차]에서 열차의 동력을 위해 희생하는 다국적 아이들까지 국제적 고민으로 확장하던 그 다운 질문이다. 빈곤과 계급의 고착화, 물신의 강대함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진행되어도 결코 이뤄낼 수 없는 해피엔딩. 최소한의 화합의 가능성까지 밀어내는 것은 반지하 거주지를 흙탕물과 오물 덩어리로 잠기게 하는 폭력적인 권능이다. 

이렇게하여 칸 현장에서 감독은 수많은 박수와 수상으로 환하게 웃을 수 있다. 그런데 [옥자] 당시 ‘고기 대량 생산하면 환경 나빠지고 지구의 미래가 걱정되어요.’로 보여준 단순 명료한 현실 인식에서 [기생충]이 가난함이라는 주제를 두고 크게 발전했는지는 앞으로 고민해야 할 대목 같다. [플란다스의 개] 이후 꾸준하게 봉준호 감독의 작품 안에서 여성들의 처우는 온당하다고 판단하기 어렵게 되었다. 사망 후 옥상 위에 전시된 [마더]의 여학생, 사망으로 극에 퇴장된 후 추모만 당하는 딸들의 처지([괴물], [기생충]), 서스펜스의 위험에 투입되는 여성들이 가득할 수밖에 없는 [살인의 추억] 등의 경우를 보자면 당혹스럽기도 하고 살아남은 여성들은 고작 ‘만질 수 있는 육체’ 대접밖에 할 수 없나 싶기도 하고 불편하다. 

[기생충]으로 감독은 어떤 장르의 화법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연출자임을 훌륭하게 입증했다. 여기에 한국적 현실 안에서 가장 자신있게 불편함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자 2위권을 입증하였다. 참조로 그 1위는 박찬욱의 [복수의 나의 것] 당시의 연출이었다. 공교롭게도 그 작품 안에서도 물 위에 변사체 상태로 둥둥 떠있는 소녀의 모습이라는 비주얼을 포기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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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렉스 trex 2014. 5. 7. 19:04

밀양에서


이창동의 [밀양] 마지막 장면. 누추한 인간의 바닥 위에 조성된 작은 화단과 그 위를 내리쬐는 햇살을 보여준다. 밀양은 그 단어 자체로 은밀한 볕을 뜻하는데, 그 언어의 힘만으로 한 여인의 망가진 육신을 말없이 보듬어 안는다. 신성함의 경지이면서도 거기까지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선, 자리매김으로서의 권능은 관객으로 하여금 작은 탄식을 낳았는데 나는 21세기 들어서 이창동에 의해 ‘문예영화’가 재생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었다. [오아시스]로 인한 ‘개인적인 마음 상함’은 이로써 풀어지게 되었고, 그의 행보는 내 감정과 처지와는 상관없이 묵묵히 [시]로 이어져 하나의 경지를 낳았다.


지방도시 밀양은 은밀한 볕이 내리쬐는 죄 사함의 지리적 배경이 되었지만, 정말 훗날 밀양은 여중생 사건에 인해 인간의 마귀화와 시스템의 흉물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위치로 공교롭게 자리 잡게 되었다. ([링크] '여중생 집단성폭행', 비공개 약속 깨고 피해자에게 폭언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0017831)


[시]의 주된 무대는 정작 밀양이 아니었지만 영화는 마치 전작 [밀양]의 무대에서 이어지듯 첫 장면을 연다. 물가에서 놀던 아이들 저편에서 소리 없이 여중생 교복 하복을 입은 사체가 떠내려온다. 이미 사체인 처지이므로 그녀는 자신의 입으로 사연을 복기할 수 없다. 이 난처함은 [마더](봉준호 감독)의 옥상 위에 널린 ‘교복’ 사체 여학생과 유사한 처지이다. 자신의 이름과 사연을 호명할 수 없는 여학생들의 사체를 보여준 뒤 한국 영화의 일부 일군은 예술의 위치를 고민하고, 인간 윤리에 대한 고뇌를 토로하였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부모들은 윤리적 고민을 애써 밟고, 아이의 복수를 사법의 영역을 넘어 직접 감행하기 시작했다. (김용한 감독의 [돈 크라이 마미], 이정호 감독의 [방황하는 칼날] 등) 아이들은 반성하지 않으며 죄의 영상을 담았으며, 그럼으로써 부모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다. 그리고 여기엔 자경 행위에 대한 흥분된 죄책감을 안고, 광경을 두 눈 뜨고 봐야 하는 관객들이 존재한다. [한공주]는 여기 다른 지점에서 걸어온다. 주인공 한공주는 자신을 호명할 줄 알고, 사연을 이야기할 수 있으며 - 그러나 어머니는 말을 자르며, 아버지와 ‘남자’ 선생님은 자꾸만 핵심을 의도적으로 비켜난 이야기들을 한다. - ‘수영’이라는 행위를 최소한의 의지를 갖추며 서툴게나마 배워간다.

 

* [한공주]의 연출을 맡은 이수진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반드시 ‘밀양 사건’을 두고 만든 것은 아니라고 발언했다.

* 한공주라는 이름은 공교롭게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에서 문소리가 맡은 배역과 동명이인이다.



인천에서


[한공주]의 주된 배경은 인천이다. 그렇다. [천하장사 마돈나](이해영, 이해준 감독)와 [파수꾼](윤성현 감독)에서 교복 입은 남고생 아이들이 맥아더 동상 아래와 차이나타운을 쏘다니고, [고양이를 부탁해] 의 여학생들이 불투명한 스무 살 앞날을 지레짐작도 못 하던 그곳 말이다. 이들 작품 중 [파수꾼]과 [한공주]는 다소 닮아있는데, 동년배의 죽음에 대해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처지의 아이(들) 이 놓여 있고 주인공(들)의 사연을 밟아가는 간헐적인 과거씬들의 삽입 연출들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 반면 [파수꾼]의 연출은 사연에 대한 여백을 의도적으로 만들지만, [한공주]의 연출엔 외면하고 싶은 사연의 여백조차 채우는 난폭함이 서려 있다. 폭력을 행사할 때 아이들은 고릴라의 탈을 쓴 40여 마리 군집의 짐승에 가까운 상태이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점은 [시]의 ‘부모들’처럼 이 영화의 어른들 역시 여전히 ‘합의’라는 편의적인 표현의 폭력을 지속해서 가한다는 점이다. (이에 비하면 죽음의 사연을 ‘듣고자 하는’ [파수꾼]의 조성하가 보여주는 절박함은 투박하게나마 차라리 신사적인 면모가 있다.) 즉 40여 마리의 짐승을 낳은 것은 물론, 짐승의 상태에 대한 입 닫음을 부탁하는 80여 마리의 어미 짐승들이 엄연히 이 세상엔 숨 쉬고 있는 것이다. 한공주가 애초에 수영을 배우려 한 목적, 단 25미터 완주만이라도 자신의 힘으로 해보고자 했던 원동력은 이렇게 봉쇄된다. 오만 진심을 내보이며 강아지 같은 충심으로 다가온 새 친구 은희마저 대사로 표현한다. ‘거긴 나가는 길 없어.’


* [링크] 성폭행도 억울한데…밀양 여학생 냉대 끝 가출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07/06/17/20070617000319.html



한강에서 


서울은 ‘배신자’이자 유일하게 한공주에게 환한 미소를 허락받은 어머니가 있는 곳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어머니가 있는 곳은 동물병원이 밀집한 충무로 일대라고 한다.) 앞에서 적은 대로 어머니는 이런 한공주의 말을 애초부터 자르고, 진짜 ‘배신자’가 된다. 아버지에게 건 마지막 전화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멜로디의 앰프 소리, ‘남자’ 선생님의 찜질방에 간 사실에 대한 답변, ‘잘했다.’ 등이 주는 아득한 절망감은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세상 속에서 더 나빠진 한공주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공주가 택한 종착지는, 앞서 잠시 거론한 봉준호 감독이 옥상에 여학생 사체를 [마더] 속에 널기 전 [괴물]을 낳은 바 있는 ‘한강’이다. 괴물은 ‘관대함’을 요구하는 미국에 의해 한국이 피치 못하게 낳은 생명체이며, 한강 변에서 어느덧 튀어나와 종 내엔 ‘교복’ 입은 현서를 냉큼 삼켰으나 위액에 미처 녹이진 못한 상태로 대지 위에 불타 죽는다. 한공주는 햇살 내리쬐는 인간의 누추한 바닥 대신 이 한강에 온몸을 담갔으며, 될 수 있는 한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나올 생각은 없는 듯 보인다.


이것은 하천에 내쳐진 옛 친구 화옥이 지속해서 환기하는 죄의식이 일으킨 씻김 또는 동일화 같기도 한데, 대신 한공주는 출연한 배우들이 후시 녹음한 응원 구호를 들으며 희망의 물길 질을 한다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는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객석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간의 감상 차이는 극명할 터이다. 작지만 성실한 영화가 예산의 문제로 의도했던 CG 효과가 연출의 입장과 다른 결과를 낳은 것일 수도 있겠다. 허나 근본적으로 그런 부차적인 문제를 떠나서 한공주를 바라보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표현할 길 없는 깊은 죄책감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분명한 사실이 나로 하여금 영화가 보여주려는 희망의 기운마저도 끝없는 슬픔으로 도치되어 비친다.


* 이 영화가 내게 준 몇 가지 사소한 불만과 이 영화가 가진 좋은 강점 중 하나인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선 미처 말하지 못한다. 이것은 내 능력의 한계를 뜻하기도 하다. 이 부분은 다른 분들이 앞으로도 계속 언급해 주시리라 믿는다. [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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