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고독한 미식가를 위한 나라는 없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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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미식가를 위한 나라는 없다.

trex 2011. 6. 29. 10:23
+ 한겨레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29751



    지금 우리 만화계에도 슬슬 괄목할만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요리만화나 맛집만화는 장르 세분화가 확실한 일본 만화계의 주효한 장기 중 하나였다. 최근 [고독한 미식가](구스미 마사유키 원저/다니구치 지로 그림)을 인상깊게 읽었다. 요리만화나 맛집만화는 음식을 빌어 인생의 교훈을 이야기하거나, 유랑과 체험 자체를 레벨업의 개념으로 삼아 성장만화와 접점을 이루기도 한다. 때론 요식업계 산업 전체에 대한 피력 같은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는 면도 있다. 그런데 [고독한 미식가]는 다소 사변적이고 이채로운 면이 있었다. 일단 [고독한 미식가]는 지향하는 목표치도, 점층적으로 쌓이는 이야기의 구조도 흐릿하다. 에피소드별로 잘게 썰어진 이 작품의 이야기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고, 그저 ‘식당에 들려 먹는다’는 행위에 정성을 쌓는다. 심지어 어떤 에피소드는 다음 주문을 하는 장면에서 탁 끊어지고(그리고 다음 에피소드에 이 행위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어떤 에피소드는 ‘맛에 대한 찬미’를 굳이 늘어놓지도 않는다.(한 여름의 야구장에서 먹은 테이크아웃 카레가 너무 매운 나머지 더웠다는 불평만 늘어놓는다)

    정점을 이루는 것은 후반부에 실린 에피소드들인데, 어느 날은 주인공이 근무 중 철야 작업 중에 야식을 먹는다. 편의점에서만 구매한 음식이 10가지가 넘어 결국 모두 먹어치우기 곤란해 하며 이윽고 에피소드가 조용히 마무리된다. 마지막 보너스 에피소드가 별다른 이야기없이 입원한 병원의 음식에 대한 탐식이니 말 다했다. 영업 사원이라는 이점(?) 덕에 주변 지역을 돌며 후회없는 한끼를 위해 식당을 고민하는 주인공. 대체로 그는 음식을 탐닉하고, 주변의 낯선 환경과 사람에 대해 ‘내가 이 사람들과 섞일 일은 없겠지.’라며 되뇌인다.  두어번 정독을 하면 그때서야 깨우친다. 그가 에피소드별로 벌이는 탐식의 기원이 ‘고독’이었음을. 파편화된 개별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는 주인공의 나른하고 피곤한 표정이 언제 어디서든 우물거릴 메뉴들을 원했음을 그제서야 알게 되는 것이다. 권말에 실린 작가 대담 부분에 이런 고독한 주인공의 모습이 옛 무사를 연상케한다는 대목도 있지만, 빌딩숲과 중화학 단지가 들어서는 현대에서는 무사의 낭만이 현대인의 울적한 고독으로 대체되고 만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며 우리 주변의 맛집을 떠올려 보았다. 소셜 커머스의 반값 할인 행사와 방송 3사 소개 액자, 유력 일간지 또는 소위 파워블로거 언급 프린트물과 연예인 싸인으로로 벽지가 더덕더덕 도배가 된 서대문구와 종로구와 서초구와 강동구와 일산과… 이 숱한 곳들의 맛집들을. 이곳엔 고독의 미식가가 들어설 곳은 거의 없어 보인다. 소문난 맛집들은 문정성시이며, 비집고 들어간 자리엔 주문을 재촉하는 아르바이트생들, 인증이라는 임무를 수행하기에 여념이 없는 디지털카메라족들의 찰칵대는 셔터음, 맛집에 깃발을 꽂았다는 안도감을 나누는 동지들과 한입두입 나누다보면 어느새 훌쩍 시간이 간다. [고독한 미식가]라는 만화가 나올 수 있는 배경 자체가 1인 손님에 대해 낯설지 않(아 한다)는 그 사회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라, 그가 발딛을 안락한 맛집은 내 머리속에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 (첨언하자면 1인 손님에 대해서도 관대한 그 사회 분위기를 칭송하고, 우리도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라는 나발 부는 소릴 하자고 적은 글은 아니다.)

    조금 생각을 보태자면 우리에게 맛집이라는 곳은 ‘고독’을 위로해주는 곳이라기보단, – 술이라도 마신다면 조용한 사케집 하나 찜해 놓겠지만 - 한국식 교류에 있어 ‘힘을 실어주는 촉진’의 공간 같다는 생각이다. 왁자지껄함과 그에 어울리는 맛집 소개 TV프로그램의 징그럽게 잡아주는 우적우적거리는 입매들. 주방의 달인들이 가열찬 속도로 양파와 감자를 썰고, 맨손으로 파전을 뒤집는 장관이 미디어를 통해 전파된다. 그렇다. 한국에서 대개의 맛집들은 미디어를 통해 부각되고 목록화된다. 허영만의 종료 연재만화 [식객]이 테마별로 다시 편집되어 출간되고, 방송 3사는 앞다투어 전국을 헤집고 여기가 손맛이네 저기가 손맛이네를 보도한다. 하루의 피곤을 씻어내기 위해 몇몇 직장인들은 약속을 잡고 소셜 커머스에서 결제한 51% 할인 쿠폰을 출력해 약속 장소로 뛰쳐나간다. 맛집이 아닌 곳이 없고, 제각각 정갈한 접시 위에 뽀얗게 담긴 후 하얀 김을 내며 손님의 입속으로 타고 넘어간다. 먹는 행위의 가치가 이토록 부각된 때는 없었던 듯 싶다.

    먹는 행위의 가치가 이처럼 부각된 때는 없었으나, 그만큼의 대중화 덕에 훼손된 가치도 많은 듯 하다. 미디어의 힘을 등에 입은 것인지, 포털에서 나눠준 온라인 뱃지가 그토록 훈장인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소위 파워 블로거라는 일군의 집단들이 ‘소개’를 권력으로 삼아 맛집에 횡포를 부린다는 흉흉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일부 목소리 큰 블로거들이 생활인들의 일부 소비 행위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은 사실인 듯 하다. 가정생활과 직장생활의 시간표 상당 부분에 ‘웹서핑’을 할당한 생활인들에게 블로거들이 가진 영향력은 정보성 면에선 긍정적이라고 하겠다. 다만 진위 여부를 알 수 없는 근래의 험상궂은 이야기들은 이런 영향력의 어두운 면을 짐작케 한다. 감시와 서비스 개선이라는 대표 소비자로서의 역할 모델을 자처하는 블로거들이 언론의 역할까지 자임한 탓에 소비자 본연의 자아를 상실한 것일까. 파워 블로거 = ‘DSRL을 들고 있는 무전취식 집단’이라는 비아냥은 스스로 자처한게 아닌가하는 재고가 필요한 시점 같다.

    맛집의 가치를 스스로 생성하기 보다는 조장한 상당수 맛집들 역시 비난은 피하기 힘든 듯 하다. 최근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트루맛쇼](김재환 감독)는 몰래 카메라 형식을 통해 하나의 식당이 협찬이라는 미명으로 미디어에 의해 맛집으로 탄생하는 과정 자체를 폭로한다. 맛있다고 호들갑을 떠는 손님은 가짜이며, 브로커의 도움으로 1천만원의 뒷돈이 오가는 거래 덕에 다큐 속 식당 ‘테이스트’는 방송에 맛집으로 송출되는 과정을 밟으며… 이 신랄한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우리 일상과 사회망 안에서 흔히들 맛집이라고 부르는 장소를 빌어 언론과 윤리의 문제를 되묻고 있다. 단순히 미식 소비자들이 미디어에 의해 농락 당했다는 가벼운 ‘한끼’의 억울함를 넘어, 한진중공업에 대한 호도된 정보만을 송출하는 기성 언론들이라는 현실까지 상기한다면 진실이라는 화두는 묵직한 허기를 안겨준다. 여전히 미디어는 깔끔한 맛집, 뒷밭 유기농 재료를 썼다는 맛집, 현지 조리사를 초빙하였다는 주방의 맛집들을 끊임없이 소개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진실보다는 야합의 논리가 완강하게 반죽된 세태론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의 한끼는 덕분에 흡족하였는가? [고독한 미식가]를 읽으며 느낀 허기가 의문형 부호의 가지로 뻗은 오후였다. [110628]


고독한 미식가
국내도서>만화
저자 : 다니구치 지로,구스미 마사유키 / 박정임역
출판 : 이숲 201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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