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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테러리즘의 양식이 되는가 [재등록]

trex 2011. 7. 29. 23:02



노르웨이 현대 역사 초유의 비극으로 기록될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의 테러 사건에 세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2년간 집요하고 치밀하게 기획된 이 테러에 무고한 우토야섬들의 희생자들이 발생하였다. 생존자들에 의하면 자동소총과 산탄총을 번갈아가며 쏴댄 그는 때론 환호성을 지르며 이 계획된 테러에 도취되었다고 한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악마적 비전을 그는 홀로 실천했던 것이다. 체포 후 법의 판단을 기다린 그에게 연관 조직이 있다고도 들리며, 이런저런 배후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궁금함을 보이고 있다. 그 배후가 완강한 덩치를 자랑하는 실체의 모습이든, 정신적 상혼이라는 내상으로써의 배후든 사람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틀림없는 듯 하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비슷한 이야기들이 반복되고 있다. 그가 평소 12세기 창설된 기독교 조직인 ‘성전 기사단’의 상상력과 더불어 ‘사자왕’ 리처드 1세의 모습을 동경한 것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바이다. 여기에 클래식과 온라인게임이 취미라는 그의 평소 모습이 알려지자 몇몇 언론들이 서로서로 비슷한 이야기들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의 트위터 활동과 인터넷을 통해 테러 전 공개한 선언문의 내용을 토대로 살펴본 결과 그가 즐기는 게임 타이틀은 총 2개였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2]라는 이름의 ‘1인칭 슈팅 게임’과 나머지 하나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이름의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다.

두 타이틀의 유명세는 주변의 1,20대 남성들에게 물어보면 유명세를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지금도 즐기는 계층이 탄탄한 각 장르의 대표작들이다. 문제는 브레이빅이 평소 이 두 타이틀을 즐겼다는 정보 덕에, ‘성전 기사단’과 ‘사자왕’의 경우처럼 게임이 테러와 극렬 우파 민족주의의 망상에 기여를 한게 아닌가하는 추측성 보도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평소 게임을 여흥으로 향유하는 계층을 또 한번 자극하였다. 가뜩이나 ‘셧다운제’와 ‘청소년보호법’등으로 여성가족부 등에게 유감스러운 서리를 맞은 게임업계와 게임 소비자층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반발은 자연스럽게 나왔다. 1,500만장 이상의 판매량 또는 수천만 단위의 이용자층이 있는 게임 타이틀 유저들을 ‘잠재적 범죄인자’로 규정하는 논리라는 점. 한 테러범의 범죄 동기와 배경에 대한 단편적인 인식이자 폭력적인 규정이라는 점 등 기사들은 클릭수 늘이기에 지나지 않는 단편적이고 사실과 다른 정보로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자동소총과 덤덤탄을 장전한 산탄총을 든 이 범죄자에의 머릿 속엔 평소 듣던 클래식(바그너였을까 베토벤이었을까 아니면…)의 선율이 요동치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왜 게임만 물어 늘어지는 것이냐라는 것이 서운하기 그지없는 게임향유층의 입장이었다.

물론 게임 타이틀들이 담고 있는 도덕성과 유희 감각 사이의 아슬아슬함은 기사를 작성하는 몇몇 식자들에게 적절한 혐의를 제공하고 있다. 가령 [모던 워페어2]의 경우는 발매 당시 공항에서 테러리스트로 위장한 상태로 민간인들에게 총탄을 발사하는 미션 스테이지의 내용이 큰 논란이 된 바가 있다. 몇몇 국가는 심의 규정에 의해 이 해당 미션에 대한 변용을 가하기도 했다. 브레이빅은 이 미션을 수행했을 때 우타야섬 테러를 머릿 속에 미리 시뮬레이션 해보았을까? 우리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그것을 짐작하고 단정하는 것은 언론으로서 위험한 발행 권한이다. 추측성 보도가 당연히 맞았어야 할 몰매였다.

게임이 범죄를 야기하는 촉매 중의 하나일까? 2007년 당시에 국내에서 발생한 무기 탈취사건의 피의자는 평소 [서든어택]이라고 불리는 ‘1인칭 슈팅 게임’을 자주 즐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자연스럽게 그가 게임 속 현실과 바깥 세계의 현실을 혼동하는 듯 하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활자에 실려 언론의 이름으로 나온 바가 있었다. 피의자의 범행 의도와 정신병리에 대한 엄밀한 분석, 검문 체계의 부실함에 대한 보완을 말하는 것보다 게임 탓을 하기는 쉬웠을 것이다. 모든 것을 단순화하기 쉽다는 점에서 80년대엔 만화 탓이 있었고, 90년대 이후엔 영화와 게임 탓이 있었다. 이 지점에서 문화 향유층들을 발끈하게 만드는 불편함이 있는 것이다.

사실 이런 이야기와 논란들은 비단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영화 [매트릭스] 모방 범죄로 해외 언론에 지목된 몇몇 사례들이나, 미국 대법원의 [캘리포니아 주 정부 제출, 미성년자에게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의 판매 금지법]에 대한 위헌 판정 등 현재까지도 명확한 답보다는 역사와 규모를 자랑하는 상시적인 유해성 논란의 불씨인 것이다. 한국 네티즌들이 보다 더 민감한 것은 수많은 학생들이 새벽 1시까지도 사교육 시스템에 의해 훈육되는 풍경에, ‘셧다운제’ 같은 제도적 장치들이 월권으로 행해지는 것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숱한 토론들과 갑론을박이 있었(다고 하)지만 제도권측의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부족은 불신을 부추긴 바가 분명히 있었다.

브레이빅에게 남은 것은 이제 법의 심판이다. 이 사례를 두고 굉장히 심도깊은 배후 분석이 있을수도 있고, 점조직이든 거대 조직이든 막후 세력이 뒤에서 정체를 슬며시 드러낼 수도 있고, 대중매체가 지속적으로 보내는 자극과 테러리즘 간의 알고리즘을 밝히는 연구의 동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물론 이 부분은 기대를 전혀 안 하고 있다. 중동 지역 원리주의자들의 PC에서 게임 타이틀을 수소문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까?) 분명한 것은 세계가 성숙한 방향으로 가기보다는 순혈주의와 배타주의에 입각한 새로운(반복된?) 갈등고리를 발견한 21세기의 초입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먼 나라 노르웨이에 국한된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종복좌파척결이라는 설명을 내세운 트위터 계정들이 분초 단위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발산하고, 브레이빅을 ‘극우 영웅’으로 추앙하는 진풍경. 2011년 7월말의 모습이다.

매년 예비군 훈련에서 ‘일발필중’의 자세로 사격훈련 총탄을 소모하는 대한민국 남성들은 방아쇠의 맛을 잊지 못하는 잠재적 테러리스트들일까. 그런 짐작보다는 한국 거주 외국인체류자들을 배타적으로 겨냥하는 근본주의들의 탄생을 좀더 경계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게임보다 구체적인 현실이 논리와 이론을 압도한 상태로 요동치고 있다. [110727]


+ 한겨레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