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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려봐야 할, 상식선의 분노에 대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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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려봐야 할, 상식선의 분노에 대해.

trex 2011. 11. 10. 11:01

+ 한겨레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35427
 

평범한 월요일 오후였다. FTA 비준을 둘러싼 이슈들이 보글거리고 있었지만 아무튼간에 그냥 평범하게 흘러가는줄 알았다. 그러다 트위터 타임라인이 들썩이는걸 확인하였다. 공교롭게도 내가 매달 졸문 2개 가량을 등록하는 HOOK(이하 훅)이 발원지였다. 임석민 교수의 [째려봐야 할 명품 : http://hook.hani.co.kr/archives/35104]이 판을 달구고 있었다. 역시나 훅의 이력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진중권 vs 김규항의 구도처럼 논쟁과 반박의 장이었음 좋았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럴 수 있는 구석은 별로 없었다. [째려봐야 할 명품]에 대한 트위터 사람들의 반응은 일관된 점이 있었고, 그 점은 대체로 상식선의 분노였다.

워낙 유명해진(?) 글이라 [째려봐야 할 명품]이 담고 있는 내용을 정리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본다. 사실 그 글이 안겨준 불쾌함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라, 화끈한 얼굴로 그 글을 새삼 정독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글은 ‘그것이 짝퉁 모조품이거나 만약 진품이라면 몸과 혼을 팔아 산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거라고 말한다.’ 같은 인상적인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 재주로는 임석민 교수의 이 단언이, 어떤 상식과 식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수위별로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이 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내 상식선에선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운이 좋아 경제적 수혜를 입어 명품을 구매할 수도 있고, 어떤 이들은 복장과 교양으로 직장내에서의 평판이 결정되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자신의 경제적 수익 중 일부를 명품 구매에 할애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명품 구매라는 행위 자체에 목표치를 두고 경제적 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누군가는 그 시간과 노력에 톨스토이의 책을 읽고 정신적으로 고양되라는 주문을 ‘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사람들, 명품 구매층을 한데 묶어 강남 ‘성 특수’라는 세태 안에서 네다바이(ねたばい)라는 사기범죄 잠재층으로 몰고 가는 몰상식은 어디서 온 것일까?

임석민 교수는 글이 문제시되고 비난 여론이 일자, 덧글란에 해명이라는 명목으로 다음과 같은 표현을 썼다. ‘한겨레로부터 이 글에 대한 여성단체의 항의가 심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 이 글에 불만을 가진 여성들은 내가 어떠한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미안하게도 임석민 교수에 분노한 사람들은 비단 여성단체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남성 네티즌들은 물론이며 학생층도 많았다. 그리고 절망스럽게도 그는 자신이 어떠한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단정으로 이번 건에 대한 논쟁 자체를 스스로 봉쇄했다. 그리고 그가 우리에게 건네는 성찰을 위한 충고라는 몇가지 글들은 매체 기사들의 링크였다.

덧글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하나같이 동아와 조선으로 대표되는 보수 언론의 르뽀성 기사들이다. 보수 언론 출처가 문제가 아니라고 쳐도, 하나 같이 임석민 교수 자신의 글이 보여준 ‘한정된 프레임’을 대변하는 시각의 기사들이다. 명품 구매에 혈안이 된 일부 계층을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들로 한정하고 있는 시각의 기사는 물론이며, 명품붐을 둘러싼 스케치 – 명품 예약, 명품 짝퉁 기술자 검거 – 등을 담고 있다. 별반 실용적인 방법이 아님에도 명품을 착용한 이들을 ‘째려보자’고 제안한 빈약한 문장에 걸맞는 링크인 셈인가? 그는 성찰을 제안하고 있지만, 공감할 수 있는 성찰의 영역은 몇번 살펴봐도 부족하다.

엎드려서 사과하라는 비난의 여론이 아니다. 그가 제안한 ‘째려보기’의 제안에 있는 성찰과 의견에 대해 보다 합당한 논리를 요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덧글 하나를 제외하고는 소용 없음을 핑계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그가 평소에 제기해온 문제들 4대강과 집권자들의 행태에 대한 문제들은 가치가 있는 질문들이었고 지속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최근 이 글에서 보여준 좁은 시선은 지금까지의 문제제기들의 가치까지도 의심케하는 면이 있다. 물론 천민자본주의 체제 안에서의 돈의 흐름과 계급적 갈등 문제는 훅을 비롯한 여러 매체들이 역시 오랜동안 근심해온 문제다.

하지만 임석민 교수가 보여준 입장은 그 체제의 문제점에 대한 지나치게 좁고 조건반사적인 지적 아닐까? 그런 일면이 충분히 있음을 지적하는 것과 그런 일면 전체로 세태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분명 다른 일일 터이다. 게다가 그에 대한 ‘째려보기’라는 단순하고 일견 유치해보이는 제안과 뒤이은 토론을 막는 덧글의 입장은 다소간 암담하다. 그의 글에서 분노하는 사람들이 그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강의를 듣고 있을 후학들을 근심하는 것은 이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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훅도 조용하다 공교롭게 더불어(?) 유명해졌다. 훅의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일이었겠지만, 한겨레 사이트 메인에서 작은 공간이나마 훅을 위한 공간을 안배하는 현실에서는 사람들에게 한겨레와 훅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감으로 보인게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훅이 훅을 비난하는 여론을 수렴하고 반박글까지 안겠다는 것은 평소에도 보여준 태도였다. 또한 글을 등록하는 필자 개인의 성향도 자유롭게 수용하는 것도 훅이 평소에 보여준 태도였다. 박노자씨의 글부터 홍정욱씨의 글까지 한데 있는 훅에서 ‘그날’ 같은 진통은 언제든 다시금 재현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그날 훅 트위터에서 훅의 입장을 일부 보았고, 앞으로도 견지하고 있을 것이다. ‘세상을 향한 오피니언 펀치’라는 훅의 슬로건에 전혀 맞지 않는, 한낱 ‘졸문잡배’인 나 역시도 자유롭지 않을 문제다. [11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