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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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셧다운제 시행, 일주일 즈음

trex 2011. 11. 28. 09:30
    엉뚱하지만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초반 방영분에서 한 토막. 태종 이방원이 마방진에 푹 빠진 이도(세종)를 나무란다. 이방원의 입장에선 강력한 군주, 하나뿐인 지켜야 할 조선이 되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마방진 같은 것에 빠져 있을 틈조차 허락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강력한 군주든 쓸개빠진 군주든 그 시대는 갔지만, 현대의 기성 세대들은 태종(들)이 되어 ‘셧다운제’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이 – 마방진의 자리를 대체한 – 게임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16세 이상의 게임 이용자층은 지난 11월 20일부터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국내에서 서비스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을 이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게임이 유해한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언제나 있어왔다. 지난번 글 [게임은 테러리즘의 양식이 되는가? : http://hook.hani.co.kr/archives/31201 ]에서도 언급한 것이지만, 소급하자면 범죄와 (폭력적 성향이 있는)게임의 함수도는 언제나 논란의 대상이었다. 한국 역시 존속이나 동급생을 대상으로 한 몇몇 폭력 사건들에서 피의자가 ‘게임 중독’ 성향이라는 이유로 쉬이 지탄을 받아온 바 오래였다. 여기에 청소년의 인권을 말하는 몇몇 논자들이 ‘건강권’과 ‘수면권’을 들어 게임으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적극적인 논지를 편 뚜렷한 움직임이 있어왔다. 그들이 현재 ‘셧다운제’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인 형태로 찬성하는지에 대해 여부야 개개별로는 알 순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만든 논지가 오늘날의 규제를 만든 뿌리임은 사실일 것이다.

    셧다운제라는 단어의 첫 시작은 규제가 아니라 일종의 자율성에서 나온 것이다. 2004년 관이 아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청소년의 수면권 확보를 위한 셧다운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게임 사업의 활성화와 자율적 규제라는 목소리들이 섞이며 제도화로의 정착은 더딘 편이었다.(오히려 당시 일부 학부모들은 강제적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9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간의 입장 차이 확인과 조율, 절충이라는 다난한 절차를 걸치며 2011년 합의를 이루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2011년 11월 20일 이후 도입 첫 한주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정이 되기 전 국내의 온라인 게임들은 10분 간격으로 16세 미만 사용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보여준다. 자정이 되면 게임이 실행되지 않노라고.

    효과는 있을까? 그 효과야 단 몇 주 지난다고 단박에 표가 날 일은 아닐 터이다. 장기적으로 개인적 인성의 보호, 사회적 범죄의 하락세, 국민 건강 등을 꾀하는 일이겠지만 여전히 반발은 있고, 완숙한 제도화로써의 정착은 상당히 요원해 보인다.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에서 일주일이 채 되지도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무용론을 이야기하는 축들도 많고, 부작용과 헛점도 노출돼 있다. 여러가지 것들이 있겠지만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말 그들이 보호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을 게임에서 걷어낼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가 있는 것인가? 제한 대상은 현재는 온라인 게임에 국한되어 있다. 규제가 발효되었으니 게임 회사들은 충실히 이행하였고, 당장에는 청소년들이 해당 타이틀들을 실행할 수 없고 실시간으로 즐길 수도 없다. 하지만 PC 패키지 게임이나 (온라인 접속이 필요없는)싱글 플레이가 가능한 게임에 대해서는 아무리 규제의 지팡이를 휘두른다고 일일이 걷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걸까? 스마트폰 게임은 물론이거니와, 인터넷 접속 후 바로 실행할 수 있는 웹게임이나 플래시 게임 등 규제의 권한자들이 상상하는 이상의 통로로 대중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방법론은 다양하다. 당장에 한 청소년의 메모장에 성인 친지의 주민번호만 적혀있다면, 지금으로선 자정 이후의 게임 접속이 문제될 것도 아니다.

    둘째, 2년 내에 스마트폰 게임이 있는 앱스토어 등으로 적용을 확대한다고 했으나 가능할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이런저런 통로를 시간을 들여가며, 막겠다는 노력은 나름 가상한 면이 있다. 그렇게도 청소년의 미래와 건강을 걱정하는 본의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스마트폰 게임의 앱스토어나, 지금 현재 규제 대상이 되는 PSN(소니 엔터테인먼트가 관할하는 게임 유저들을 위한 온라인 허브라고 해두자)나 Xbox Live(여기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관할하고 있다)같은 글로벌 서비스 기업들이 느끼고 있는 현재의 당혹감을 알고 있을지? PSN은 현재 개인정보 수집을 하므로, 다행히(?) 현재로선 셧다운제가 적용되었다. 하지만 Xbox Live는 개인정보 수집을 하지 않고 있다. 예전부터 그랬고, 특별히 한국 한정으로 정책을 바꿀지 아닐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이처럼 해외의 게임 관문들은 소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향한다. 셧다운제라는 한국적 특수성에 기반한 규제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앞으로도 작금의 IT – 개방과 확장 – 시장의 흐름으로선 다소 희박하다.

    셋째, 자국의 게임시장이 이처럼 천덕꾸러기가 되어야 하나? 심박수가 멈출 듯 말 듯 한 아케이드(업소) 시장이나 불법 복제로 얼룩진 패키지 시장과 달리 한국이 내세울 수 있는 게임심장의 동력은 온라인 게임들이다. [2011년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의하면, 한국의 게임 타이틀들의 해외 수출액은 총 1조 8000억원이라고 한다. 이미 언론에서 침 발라가며 떠드는 K-팝 시장의 소박한(?) 980억원 규모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이 성장세는 셧다운제를 통해 된서리를 맞았다. 여전히 수출이야 지속적이겠지만, 국내에서의 대접은 이토록 박하다. 게임 관련 정책의 주된 목소리를 내던 문화체육관광부의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이 여성가족부의 ‘청소년보호법’이라는 그릇에 담겨서 어느새 이런 아이러니한 역사의 풍경을 펼친 셈인가. 사실 이는 셧다운제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때, 소극적으로 잠잠하다 지금에서야 셀죽한 표시를 내는 게임계의 책임도 일정부분 있을지 모를 일이다.

    넷째, 정책이 완숙해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을 작성하는 당일날 문화체육관광부는 내년 1월말부터 시행할 예정인 게임법 개정안에 ‘선택적 셧다운제’를 내용으로 포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청소년과 학부모를 위한 ‘선택권 제한’에 대한 단점을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처간 협의를 거치거나 확정시된 것인지는 현재로선 파악할 도리는 없었다. 그런데 다소 불안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여성가족부의 적극적인 감시로 시행되는 전면적인 셧다운제와 문화체육관광부가 말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는 자연스럽게 바톤을 이어받으며 보완될 수 있을까? 엇박자에 대한 우려는 말 그대로 우려이길 바란다. 한편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근 입법 예고한 ‘게임산업 진흥에 간한 법률’ 시행령 덕에 또한번 게임업계와 업자들의 구설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아케이드 게임을 통해 획득하는 점수에 대한 보관도 규제를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미 아케이드 오락실에서 카드 등의 매체를 통해 자신의 게임 캐릭터의 승률이나 점수를 저장하는 시대인데 말이다.(‘바다 이야기’ 후유증처럼 이는 사행성 측면과도 별 관계가 없는 사항이다) 어쩌면 근본적인 논란의 이유 중 하나는 제도권 측의 게임산업 생태계에 대한 일부 몰이해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섯째, 근본적인 질문이다. 셧다운제는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는가? 규제가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인가? 셧다운제를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지지하는 소위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은, 몇몇 우려에도 불구하고 청소년들의 정신과 건강을 폭력과 중독으로 얼룩진 게임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근간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의 선택권과 목소리를 애초부터 묵살한 채, 교육 시스템과 사회 구조의 책임이라는 책임을 등안시하고 게임이라는 지엽적 요소 하나에 화살을 돌린 것은 아닐까? 이미 셧다운제의 시행 이후 드러난 구멍은 훤히 보일 지경이다. 그렇게나 보호하고 싶은 청소년들은 어떻게든 규제하고픈 게임을 향해 우회하든 뚫고 오든 접속을 한다. 혈기방장한 그들의 에너지를 막을 재간치고는 셧다운제는 허점투성이다. 규제가 적용되기까지의 검토와 대화도 충분하지 않았고, 상당간 일방적이었다. 지금 당장 풀이 죽어있을지 모르지만 게임을 비롯한 대중문화 향유층의 잠재력과 인식을 우습게 볼 일이 아님은 조만간 곧 드러날 것이다. [11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