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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vs애플, 한미 법원 판결 이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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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vs애플, 한미 법원 판결 이후.

trex 2012. 8. 28. 15:29

+ 웹진 HOOK : http://hook.hani.co.kr/archives/44894 게재.



[포스트 잡스 시대의 애플은? : http://hook.hani.co.kr/archives/33656 ]이라는 글을 적은지 1년이 조금 덜 된 시점이다. 매년 9월이 되면 애플은 신기종을 발표하고, 잠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올해도 새로운 이벤트는 열리겠지만 그간 1년 사이엔 유럽을 위시하여 삼성과 애플 간의 특허 관련 법정 이슈가 있었고, 1차적인 판결이 한국와 미국에 보도되었다. 잠시 살펴보자.



8월 24일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삼성과 애플 간의 법정 소송에 대한 사건 판결이 있었다. 먼저 애플 쪽 입장을 보자. 애플은 삼성에 대해 디자인 및 UI 특허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였다. 먼저 디자인적인 유사성 4가지 –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외형 / 직사각형 형상으로 둘러싼 베젤(Bezel) / 정면에 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화면 / 화면 윗 부분에 배치된 좌우로 긴 스피커 구멍 – 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이에 대해 국내 법원은 유사성은 인정되나, 그간 숱하게 출시된 이동통신 상품 디자인에서 이런 디자인이 있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췄다. 삼성뿐만 아니라 기존의 소니(익스페리아), LG(프라다폰)의 선례를 봐서 통신 기기들은 디자인 차별화가 어렵고, 독창성 면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디자인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를 비롯 양사 제품간의 아이콘 배열과 개별 아이콘 디자인에 대한 유사성 역시, 차이를 인정하여 삼성 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다만 UI 특허의 경우 ‘밀어서 잠금해제’ 등의 기능을 제외한 ‘바운스백’ (화면을 상하 끝으로 스크롤했을 때 가장자리가 밀려 올라가다 터치한 손가락을 떼면 ‘통’ 튕겨나는 연출)기능에 ‘국한’하여 디자인 침해를 인정, 2500만원에 대한 손해배상 및 기존 삼성 제품 12종에 대한 판매금지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발매작들이라 향후 항소를 염두해두더라도 삼성 쪽의 피해는 극히 미비할 것이며, 독창성을 앞세운 근작들 중 갤럭시S3 등의 라인업에 대한 영향은 전무할 것이다. 애플의 힘을 빠지게 하는 판결은 이어진다.



삼성은 한편 애플에 대해 ‘3GPP 통신 표준특허에 대한 침해 사항 4가지’에 대해 애플을 고소하였다. 애플의 전작들 안엔 삼성 표준특허에 대한 라이선스 관계인 인텔측이 제작한 칩셋이 내장되어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칩셋의 제작사는 인텔의 자회사인 IMC(전 인피니언 / 현 인텔모바일커뮤니케이션즈)이다. 이에 대해 법원은 인텔의 라이선스 위탁 범위 위배 2건을 인정하여 피해액 4000만원과 아이폰 3Gs, 아이폰4 등 4개 전작들에 대한 판매금지 판결을 내렸다. 국내 판결의 파장은일견 양측에 비슷한 듯하지만, 국내 언론에 대한 영향력 면에서 앞선 삼성의 입장에선 사실상 승리에 가까운 결과였다. 삼성과 애플의 고소 전쟁이 발발(!)할 당시, 삼성의 3G 기술 특허 목록의 든든함이 어느정도 유리한 방패(또는 창)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맞아 들어간 셈이다. 배상액 규모로 보자면 직원 연봉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자존심 면에서 본다면 대외 영향력은 큰 셈이다.

  

 

대개의 언론들은 삼성의 승리라는 키워드를 앞세워 보도하기 시작했고, 애플의 전작들은 ‘판매금지’라는 딱지가 붙게 되었다. 실상 삼성의 전작들도 같은 처지인데 말이다. 그런데 미국 현지시각 기준 8월 25일 미국 법원의 판결이 보도되었다. 정황이 역전되었다. 미국 법원은 삼성이 애플의 UI 특허 및 디자인(외형)을 침해했다고 판단, 이에 대한 10억 5천만 달러의 피해배상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반해 애플이 삼성에 대해 지급해야 할 피해배상액은 없다. 애플의 완승인 셈이다. 특히나 한국과 미국의 판결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 삼성으로선 하루아침 만에 치명상을 입은 것이다. 

 

 

미국 산호세 지방법원은 UI 특허에 있어 한국에서 침해 사실이 인정된 바운스백 기능을 포함, 핀트 줌 기능(두 손가락으로 화면을 확대하는 기능), 화면을 두번 터치하면 확대되는 기능을 포함하여 제품 디자인에 대한 표절 내용까지 애플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였다.(갤럭시탭 10.1 제외) 피해배상액에 대한 기쁨(?)은 물론이거니와 애플의 삼성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요청도 잇따를 것이고, 자연히 삼성의 반발과 항소도 예상되어 있다. 오히려 1라운드가 끝나고 또 하나의 지리한 2라운드가 기다리고 있다는 기분마저 든다. 특히나 한국과 달리 미국 판결에서 애플의 피해가 전무했던 결정적인 요인을 살펴보자. 바로 삼성의 3G 통신 표준특허에 대한 애플의 침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좀더 자세한 스토리를 풀어보자. 애플의 근작인 아이폰4s엔 삼성의 특허가 적용된 칩셋이 내장되어 있지 않다. 반대로 애플의 전작들에는 삼성의 라이선스 관계인 인텔의 자회사 IMC을 통해 사들인 칩셋이 내장되어 있다. 한국 쪽 판결의 요지는 기존에 인텔이 삼성에 라이선스를 받은 상태에서 자회사 IMC를 통해 칩셋을 제작하였더라도, 이를 애플에 판매하는 것은 위탁 범위 바깥의 문제이며 그에 대한 라이선스를 애플이 별도로 대가로 지급하지 않은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판단인 듯하다. 즉 라이선스가 지불된 칩을 구매하는 것 이상의 추가 대가 또는 위탁 범위에 대한 ‘인식의 노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피해액을 배상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의 자존심에 손을 들어준 한국 쪽 판결과 달리 미국 쪽 판결은 이와 다르다. 

  

 

미국 쪽 판결, 특히 배심원들의 판단에 의하면 칩 제조사인 IMC가 모회사 인텔이 라이선스를 맺은 특허 적용된 칩셋을 제작하였고 그것에 대해 구매자(애플)가 지급액을 합당하게 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이다. 피해배상액은 일절 없다. 이는 양국이 지닌 표준특허에 관한 ‘프랜드(FRAND : Fair, Reasonable And Non-Discriminatory [공정, 합리, 비차별])’ 조항에 대한 해석 차이에 기인한게 아닌가 한다. 특허권자의 범위 이상의 요구나 차별적 행태로 기술 발전 저해 및 불공정 행위를 사전에 방지코자 것이 프랜드 조항의 의도다. 이 덕분에 서구 언론 일부는 특허권자의 요구에 손을 들어준 한국 내 판결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프랜드 조항에도 불구하고 금지 처분이 먹혔다는 점에서 표준특허가 거대 기업의 ‘무기’가 되었다는 해석도 있다. 이 분야에서도 한국은 ‘백스텝’인 셈인가?

  

 

아무튼 뒤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일단 양사간의 불편한 견제와 이어지는 항소는 어느정도 예상되는 방향이다. 삼성 쪽은 특허 분쟁에 포커스를 맞췄지만, 비극과 희극을 나눈 것은 디자인에 대한 ‘본토’의 판결이었다. 적어도 이런 내외적인 큰 이슈가 관련 경쟁사들의 움직임에도 영향이 갈 것은 확실해 보인다. 모바일 시장에서의 반전을 암중모색중인 마이크로소프트 진영도 그렇고, 이런 애플의 법정 다툼이 실은 다음 타겟인 자신들의 목을 노리고 있음을 인지할 구글 등이 특히 그렇다. IT 삼국지를 쓰고 노는 데 맛들인 논객들과 블로거들에겐 여전히 재미난 볼거리들이 쏟아질 것이다. 한편 제조사들의 입장에서는 UI 특허와 디자인 등에 대한 차별화 노력만이 ‘불똥’을 피할 수 있다는 현실 인식을 줄 것이다.(반면 경쟁력 없는 작은 기업들에겐 기회는 좀체 열리지 않을 것이다) 크로스 라이선싱으로 양사 또는 다사간의 행복한 결말을 기대할지, 1대1의 전면전을 포기하지 않는 각축으로 이어질지 우리들은 앞으로 여러 모델을 보게 될 것이다. 

 

 

한편 모방꾼이라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앞으론 ‘애플세’를 내게 되었다며 죽는 소리를 뱉는 삼성의 뻔한 속내는 언제나 불편하다. 엄청난 배상액에도 불구하고 삼성 제국의 비틀거림을 예상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디자인에 대한 고민과 UI에 대한 숙고로 만든 갤럭시S3 등의 라인업은 삼성의 밝은 미래를 여전히 약속하고 있다. 애플 역시 9월 아이폰 신 모델 및 ‘어쩌면 있을지도 모를’ 작아진 아이패드와 아이팟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다는 루머가 속출중이다. 반면 양사간의 고가의 법정 비용, 큰 지면의 그늘 아래 조그맣게 보도되는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은 소비자들을 윤리적으로 고민하게 만든다. 이런걸 보면 거대 기업간의 법정 대결을 보는 기분이란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볼 때의 떨떠름한 감정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이렇게 서로 잡아먹을 듯 대립했다 갑자기 동맹을 맺고 포옹하는 깜짝쇼 따윌 보여줄 지도 모를 일이니까. 이면에 어떠한 진실이 숨어있는지 알 듯도 모를 듯도 하다. 소비자 노릇이라는 게 때론 만만치 않다. [12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