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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속 대나무숲, 다음 이야긴?

trex 2012. 9. 21. 09:30

+ 웹진 HOOK 게재 : http://hook.hani.co.kr/archives/45230


직장 생활만큼 '어디나 다 그래'라는 말을 자주 듣는 일도 드물게다. 어디나 다 그런 것임을 알기에 빠지고픈 회식이나 워크샵에도 눈도장이라도 찍으며 자리를 보전하고, 상사에 대한 반감을 쉬이 드러내지 않고 퇴근 후의 숨통을 기다린다. 그럼에도 불합리하고 부당한 처사는 참을 수 없다. 임금체불, 사내 성추행, 고객사의 부당한 요구, 진급 및 인사 고과에 대한 문제 등 직장 생활을 채우는 불의들은 다양하다. 정의감 서린 주먹을 애써 움켜보지만, 동료와의 술자리는 언제나 '박카스' 광고풍으로 화목하게 마무리되며 새로운 아침 출근에 대한 압박은 하루를 짓누른다. 이것이야말로 대한민국 밴드 넥스트(N.Ex.T)가 90년대말 노래로 부른 'This is city life'(도시인)의 풍경인 모양이다. 그런데 2012년 9월, 대한민국 웹엔 '어디나 다 그런' 직장 생활에 대한 다양한 불만들이 뾰죽뾰죽 솟아났다. 트위터 속 '대나무숲'들의 탄생이다.


시작은 트위터에서 '출판사X' 계정이 갑작스레 등장하고서부터였다. 이 계정의 트윗(tweet)들 수십줄만 보고 있으면, "혹시 거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짐작 가능한 모 출판사의 풍경이 '내부의 시선'으로 생생히 그려졌다. 컴퓨터와 디자인에 대한 지식이 전무함에도 출판 디자인에 대한 잦은 수정사항을 요구하는 사장, 수구 보수 성향의 정치적 입장을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사장, 힘없는 신입 노동자에게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턴 수당 '80만원' 계약 조건을 강요하는 사장, 구태의연한 '쌍팔년도'식 영업과 마케팅을 내세우는 사장, 직원 복지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재한 사장... '출판사X' 계정이 드러내는 해당 출판사 대표의 행태는 화끈하고도 민망한 것이었다. 트위터 특유의 실시간 매체라는 강점이 '내부자 고발'에 공감을 실어 여기저기 유포되는데 힘을 더했다.


'출판사X' 계정은 예상대로 오랜 수명을 지니진 못했다. 출판사 대표의 내부 직원 소집이 있었다는 '흔적' 이후, 계정 '폭파'로 일단락되는 것으로 내부 고발은 중단되었다. 그래도 여파는 여전하여 "출판계에 몸을 담는다는 것이 저런 의미일까"라는 젊은 네티즌들의 의문이 이어졌다. 게다가 그들의 의문을 앞지르는 것은 동종업계인들의 공감대였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대나무숲 계정들의 파생이 이어졌다. '출판사 옆 대나무'(@bamboo97889) 계정이 등장하였고, 비슷한 타이틀들의 '디자인회사 옆 대나무숲'(@bamboo20120913), '연구실 옆 대나무숲(Bambooforlab)', '게임회사 옆 대나무숲(bamboo67890)', '촬영장 옆 연구소(@bamboo2412365)' 등이 탄생하였다. 공통적인 규칙은 이들 계정은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닌 공동의 소유로써, 누구든 지정된 비밀번호로 접속해서 트윗을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분야의 동종인들의 내부 고발, 푸념, 일상 등이 한데 엉켜서 타임라인의 분수령을 만들어냈다. '재크의 콩나무'가 하룻밤에 자라났듯 대나무숲들은 여기저기 솟아올랐고, 이윽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비단 직장생활 관련 계정뿐만 아니라 '백수들 대나무숲'(@Bamboo_0913), '시댁 옆 대나무숲(@bamboo_in_law)', '세상 속 대나무숲'(@bamboo1224365) 등 한국 사회의 근간과 주변부를 다룬 대나무숲들도 개설되었다. 이중 시댁 옆 대나무숲은 특히나 바글바글하다. 시어머니의 부당한 요구, 고부간의 갈등을 외면하는 가장을 향한 성토 등의 내용을 담은 트윗들이 리트윗(Retweet)를 타며 수많은 잔가지를 형성하였다. 물론 부작용도 있었다. 모두에게 공개된 비밀번호(해당 계정 프로필 소개란에 명시되어 있다) 덕에 애초의 의도와 다른 협박성 내용들이 등록되거나, 동종업계의 인식을 위협할 수 있는 내용들로 판단된 트윗들이 무단 삭제되거나 하는 일들이 발생하였다. 대나무숲 일부 계정들이 내부 한계나 어떤 이유에서든 계정 자체가 없어지는 일들이 생겼음은 물론이다.


사실 대나무숲 계정 붐은 어떤 의미에서는 유행이고, 유행이란 것은 언젠가는 시들해질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럼에도 이런 융성의 현상은 한번쯤 짚어봐야 할듯 싶다. 웹에서 글을 작성하고 남에게 발설하고 설파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피력하는 성격을 지닌 일임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의미로는 웹은 사회 바깥에서 개인들이 숨어드는 공간이기도 하다. 아바타를 설정하거나 닉네임을 설정한 후 사회 생활 안에서의 나를 은닉하고 다소 다른 자아를 연기하는 것도 웹의 생리적 특성 중 하나이다. 그런 은닉된 자아들이 한데 모여서 실시간으로 교류하는 공간이 트위터 같은 곳이다보니, 되려 여기서도 사회와 비슷한 형태의 관계망이 형성되고 개인의 인적 정보나 개성이 결국엔 어느정도 노출되게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나무숲은 '이중으로' 숨어들 수 있는 공간이 된 셈이다. 이제 모모 대나무숲이라는 하나의 계정 안에서 이름없는 수많은 익명들이 숨어들어와 발화하게 되어 다양하면서도 하나의 목소리를 지니게 되었다. 참으로 기이하고도 매력있는 웹 생명체가 숨쉬게 된 것이다.


부작용은 앞서 말하였다. 무단으로 트윗들이 삭제되는 '가벼운(?) 테러' 행위가 벌어지기도 하였고, 대나무숲에 내부 고발을 한 개인들이 실제 직장에서도 불이익을 감내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누구의 지적대로 대나무숲의 내용들이 특정 직군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마음의 문턱'을 형성한다는 것도 어느정도 사실일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움직임들이 대한민국 구성원 개개인들이 한국 사회 곳곳에 내재된 시스템 전반에 반발심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임은 숨길 수 없다. 권력을 지닌 측이 권력 밑의 군집체의 목을 조르며 이익을 취하고, 권력은 정당한 형태로 이양되지 않고 부계를 통해 승계되며, 한줌 이익을 쥐기 위해 권력 밑의 군집체들이 아귀 다툼을 벌이는 부글거리는 계급사회의 처연함. 대나무숲은 이런 사회 전반의 우울한 풍경을 일정부분 대변하고 있다. '건물주' 중산층이 전월세 노동자의 한달 수입을 쥐락펴락하는 살얼음의 일상으로 구성된 위태로운 사회!


문제는 대나무숲엔 생생한 분노와 성토, 업계에 대한 실망들이 나열되어 있지만 그 다음의 이야기는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대나무숲 컨셉이 가진 명백한 한계이다. 바껴야 하는데 바뀔 수 있을까하는 안타까운 체념에서 멈춘 단계. 대나무숲 계정들이 가진 수명에 대해 애초에 회의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렇게 한차례 속풀이를 하면 언제 또 그랬냐는 식으로 식어버릴 것은 명확하다. 언제나 이런 일들을 보게 될 때마다 희망하게 것은 '작은 혁명'의 단초들이다. 이런 목소리들 하나하나가 모여 뭔가를 움직이고 바꾸게 할 수 있다는 씨앗 같은 가능성, 하지만 도대체 어떤 것을 단초로 그것을 가능케 할까 라는 물음은 지워지지 않는다. 워낙 회의에 빠지거나 제풀에 지쳐 푸념하기에 바빴던 자기변명에 익숙한 삶이었던 탓이 크다. 이러니 언제나 '변화를 꿈꾸다'라는 문장을 버릇처럼 써왔지만 변화 보다는 꿈에 마침표가 찍혔던 경우가 잦았다. 


원컨대 이 모든 것이 한낮의 꿈이 아닌 변화를 위한 추동으로 이어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