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xism : 렉시즘

나디아에서 Q로 이르는 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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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에서 Q로 이르는 길.

trex 2013. 5. 3. 18:00

시작은 김천 시외버스정류장 내 이발소였다. 아직도 정식 명칭을 알 수 없는 이발 도구 ‘바리깡’에 의해 단돈 3000원, 10분 내에 까슬한 머리카락이 시원하게 밀리던 내 고등학생 시절의 머리통이었다. 그날 타율야간학습이 있어 저녁을 가락국수 면발로 떼운 후 이발소에 들른 것인지, 그냥 타율야간학습을 빼먹고 일치감치 정류장 이발소에 들른 것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찜찜한 하얀 면도크림이 목덜미에 몇 개의 거품을 묻힌 것엔 아랑곳않고 멍하니 보던 TV 속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는 아직 기억이 난다.


잠수함, 우주로 뻗어가다.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이하 나디아)는 나에게 첫 ‘가이낙스’였다. 훗날 게임 잡지에서 다이제스트로 스토리를 감상한 [톱을 노려라! : 건버스터], 애니 전문지들이 상찬을 아끼지 않았던 [왕립우주군] 같은 작품들보다 나에겐 나디아가 첫 가이낙스 ‘걸’이었다. 기억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나디아는 이래저래 부침이 많은 작품이었다. 웬만한 작품들의 ‘작화 붕괴’는 명함도 못 내밀, 채널을 즉각 돌리게 만든 ‘무인도 에피소드’는 지금도 생각해도 제법 끔찍하다. 생각해보면 이것이 과감히 나디아 시청을 끊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는데, 관성적인 학업 싸이클까지 겹쳐서 한동안 못 보던 작품을 그 날 마침 이발소에서 새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제법 감동적이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다. 무인도 에피소드와는 비교도 안되는 향상된 그림체는 물론이거니와 공중을 비행하는 잠수함 노틸러스호와 적군이 자아내는 전투씬은 놀라웠다. 그동안 익히 알고 있던 작품의 지평과 협소한 내 상상력의 폭을 넘어 이야기는 산으로 산으로 가고 있었다. 게다가 그 산이 명산이야! 쏟아붓는 빔과 미사일, 그리고 이어지는 폭죽의 틈새를 거룩하게 뚫고 우주로 뻗어가는 잠수함 노틸러스호. 무엇 하나 흠잡을데가 없는 소년 취향의 충족이었다. 나디아가 원래 이런 작품이었던가. 그리하여 나디아는 내 첫 가이낙스 작품으로써 짙은 인상을 남기게 된다. 절대절명의 강한 적군과 그들의 공격에 대항하는 외롭고 의로운 이들의 묵묵함, 그리고 태초의 메시지를 담은 주제의식(과 있어보임)까지.



다른 잠수함, 붉은 바다 위에 떠오르다.


[에반게리온 : Q](이하 에바Q)를 보고 떠올릴 수 있는 것은 많다. 가깝게는 ‘파’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문득문득 떠올리게 되는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의 기억이나, 심지어는 오리지널 TV 판의 기억까지 말이다. 그런데 가장 가까운 ‘파’와 연관짓기에 ‘Q’의 단절은 심하긴 하다. 아무 관련도 없다는 듯이 인간간의 관계는 달라져 있거나 뒷걸음쳐 있고, 우리는 신지의 시점을 빌어 이 어리둥절함으로 90여분을 말없이 따라가야 한다. 익숙한 대사를 반복하는 등장인물들은 좀더 날카롭게 불친절해져 있고, 새롭게 나온 요소들은 도통 뭔지 모르겠다. 이런 혼란 안에서 유일하게 위안받을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어쨌거나 에바라는 명제다. 그렇다. 원래 에바는 불친절했고, 그 불친절함의 궤를 열기 위해 오타쿠들과 넷의 글쟁이들이 머리를 싸매며 갑론을박을 펼치곤 했었다.


이 울퉁불퉁한 작품 안에서 제작진들은 익숙한 요소들을 가져오는데 그것이 잠수함, 아니 (전투)함이다. 이것은 제작진의 친절함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다소 태만한 인용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이 심중을 굳히게 한다. 2장의 CD로 이뤄진 사운드트랙의 4번 트랙 ‘The Anthem =3EM07=’는 [이상한 바다의 나디아] 사운드트랙의 재현이다. 음악을 맡은 티스퀘어 출신의 뮤지션 사기스 시로는 에반게리온 시리즈 안에서 고전 일본 팝 트랙들을 보너스트랙으로 넣는 회고적 취향은 물론이거니와, 헐리우드 음악가들 못지 않게 장쾌한 스케일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게 가히 어색하지 않다. 나디아의 노틸러스호 보다 훨씬 못 생긴 에바Q의 ‘분더’함 출격에서 울려퍼지는 4번 트랙은 무척이나 벅찬 희망으로 휘감은 정서의 곡이다. 붉은 바다 위엔 분더와 비교하자면 납자루떼 크기쯤 되는 군함들이 가득 포진해 있고, 분더는 이들을 마치 이끄는 거대한 고래마냥 중심에서 잔뜩 폼을 잡는다.



우릴 어디로 태워 가실려나.


그때부터 심사가 복잡해진다. 분더 안에 사람들과 노틸러스호 안의 사람들과의 함수 관계를 자동으로 따지게 되는 ‘썩을놈의 관성’이 발휘되고, 별 성의가 없어 보이는 CG로 그려진 분더가 나디아만큼의 경천동지할 액션을 보여주게 할지 전전긍긍의 기대를 품게 된다. 그리고 이내 알게 된다. 이 장면이 에바Q에서 가장 가슴을 요동치게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상승임을. 분더가 퇴장하면 소년 둘이서 피아노 치고 어쩌고저쩌고 궁상맞은 짓거릴 시작한다. 물론 작품의 후반부에도 액션 장면은 있지만, 그걸 주먹쥐는 열혈의 가슴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소년의 고생길에 위로를 보내기에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티켓값을 치르고 앉아있는 내 자신이 되게 처연하다. 기다림에 대한 보상심리를 뒤덮는 찜찜함이 매생이마냥 뇌에 엉켜댄다.


사기스 시로는 재인용에 익숙한 사람이다. ‘파’에선 역시 가이낙스의 [그와 그녀의 사정] 사운드트랙을 소환하였다. 그때 그 음악의 용도는 얼마 안되는 일상의 태평함과 긴장감의 해소였다. ‘Q’에서 새삼 소환한 나디아의 음악은 네르프라는 집단에 대한 의분으로 가득찬 이들의 출발과 뜻모를 희망의 기운이다. 하지만 작품은 이내 보는 이들을 계속 거리두게 만들고 패대기친다. 마치 ‘파’에 이르러서야 겨우 따라잡아 건넨 손이 외면당하는 기분이다. 분더의 목적도 알 길이 없고, 원래 있던 네르프의 속도 짐작만 할 뿐이다. 무엇보다 우리 불쌍한 신지 어쩌누. 우쭈쭈.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 지을려고 우릴 이렇게 아무데나 태워 가시는건가.


아무튼 오기를 가지고 그래도 따라가야 할 이 길. 기억을 소급해보니 나의 경우는 나디아가 이 길의 시작이었다. 참으로 질기기도 하구나. 이 악연! [130502]


+ 웹진 다시(daasi) 게재 : http://daasi.net/?p=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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