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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그래도 앨런 무어는 안 볼거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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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치맨] 그래도 앨런 무어는 안 볼거다.

trex 2009. 3. 6. 10:55
* 원작은 안 읽은 이 / 영화를 안 본 이들을 위한 스포일러 배려 일체 없다.

- [300]을 싫어한다. 막말로 말하자면 근육질의 좀비들이 벌떡 일어나 자의식도 없이 칼을 휘두르다 몰살 당하는 코미디 영화로 인식하고 있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시도는 존중하고 싶다. 그래픽 노블의 컷들을 영화로 옮기는 그 충실한 손길을 보니 원작의 빚이 커야지 좋은 작품이 나오겠다 싶더라. 원작의 무게감 덕인지 다행히 [왓치맨]의 인물들은 그래도 자의식의 두께가 나름 두터워졌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병리적으로 제정신이 아니고 눈물 흘리고 소리 지른다.

- 그래도 앨런 무어는 이 영화를 무시할 것이고, 앨런 무어의 매니아들은 이 영화를 싫어할 것이다. 예상은 했지만 2시간 40여분을 상회하는 런닝 타임 동안 [검은 수송선 이야기] 서브 텍스트는 잘려나갔다. 물론 [검은 수송선 이야기]는 출시될 DVD에 부록 애니메이션 DVD로 보강된다고 한다. 그런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화 본편이 [검은 수송선 이야기]와 상호작용할 정도로 충실하게 교감할 바탕을 깔아 놓았는가? 막판에 잡지 가판대 아저씨와 흑인 소년이 부둥켜안는 한 컷으로 무슨 설명을 하겠는가?

- 그래픽 노블의 번안 작업에 있어 영화 [왓치맨]은 아무래도 바쁘다. 로어셰크의 일기와 주요 대사를 살리는 충실함을 초반에 보이다가 후반엔 아무래도 바빠보였다. 알렉산더에 경도된 오지맨디아스의 과거는 영화 후반이 아니라 중반에 잠시 거론되고, 살생부도 다시 정리되었다. 1대 나이트 아울은 목숨을 부지했고, 2대 남녀들의 섹스 장면은 1회가 줄었다. 심리학자 닥터 말터 롱의 개인 면모를 들여다 볼 시간은 당연히 없다. 고민이 많았으리라 본다. 여러 서브 텍스트 중에서 어떤 것을 잘라내고 강조를 해야지 하는 부분에서 잭 스나이더 감독 특유의 철학(완벽한 영화화)과 영화 매체로서의 타협 사이에 갈등이 보인다. 그 덕분에 뉴욕을 박살내는 촉수 대신에 시퍼런 공 모양의 파장을 관객들을 보게 된다.

- 즉 [왓치맨]은 괴이하게도 블럭버스터 애호 대중들보다 원작을 읽은 이들을 위한 주석이 되어버렸다. 원작을 읽은 이들이 느낄 즐거움이 더 클 것이다. 원작을 읽으면서 모호했던 부분들에 좀더 설득력이 느껴졌을 것이다.(게다가 현재 나온 출판본이 번역이 뭐 같아서 말이지) 그래서 문제는 남은 관객들이다. 그들에게 화성에 간 닥터 맨하턴의 고독이 이해가 될 것인가? 오지맨디아스의 요새가 주는 막막한 적적함이 체감이 될 것인가? 글쎄 그 부분에 대해 확실히 자신감이 서지 않는다. 1차적인 당혹감으로 객석에서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은 나에게 안타까움을 주었다.

- 초반이 훌륭했음을 말해둔다. 파라마운트/워너/DC코믹스의 로고도 [왓치맨] 원작의 톤처럼 블랙과 옐로우의 배합이다. 냇킹콜의 목소리가 조금 거슬렸고 폭력의 정도가 구체적이라는 걱정은 들었지만 코미디언의 죽음은 웅장하고 비장하다. 인간 말종의 죽음에 대한 헌사치고는 조금 과했지만. 오프닝 크레딧이 근사하다. 밥 딜런의 넘버도 딱이고, 앤디 워홀 등의 인물과 RATM 데뷔반 커버를 기억하는 이들에겐 익숙한 영상이 나온다. 모스맨이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장면은 제법 시큰했다. 그외의 장면들은 간단한 미국 현대사 상식 퀴즈 같은 장면들이다. 알아서 맞추시길. 그래도 이 영화가 닉슨 대통령이 '3번 연임' 해먹는 가상 역사라는 것을 상기하시고.

- 그 다음들이 문제다. 장례식의 사이먼 앤 가펑클, [지옥의 묵시록]에 대한 오마쥬 같은 베트남 장면의 음악과 레너드 코헨이 엄한 고생하는 정사 장면의 음악 등은 실패다. 사운드트랙만 실패인가. 스코어 음악도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닌 듯 하다. 잭 스나이더 감독은 왜 과용을 버리지 못하는걸까. 2대 나이트 아울의 허리가 열심히 움직이는 정사 장면과 패스트 & 슬로우 가득한 구타 장면은 과용이다. 탈옥 장면에서 원작에 나오지도 않은 전기톱을 사용하는 피칠갑 정신엔 탄복했다. 잭 스나이더는 마이클 베이가 제작사를 한다는 호러 전문 영화사에 한번 찾아가 보시길. [13일의 금요일] 속편 리메이크 감독 권한 줄지 누가 알겠는가.

- 영화적 장점은 있긴 하다. 다시 탈옥 장면으로 돌아가서... 로어셰크가 탈옥을 할때 화장실에서 빅 피겨를 린치 살해하는 연출은 영화가 제법 분위기 있게 해놓았다. 로어셰크의 피칠갑 사체는 그야말로 그 다운 문양의 모습을 하고 있고. 2대 나이트 아울의 아키 하강 장면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보다 더 배트맨 같아서 잠시 웃음도... 대통령 출마 예정 후보가 로버트 레드포드에서 로널드 레이건으로 바뀐 영화의 유머를 관객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 뭔가 [왓치맨]을 거대한 단점과 자잘한 단점 여드름 투성으로 이뤄진 영화 대접을 하는 듯 하다. 그런 것은 아니다. 죽음 이후 모든 이들의 회상에만 존재하는 '코미디언' 제프리 딘 모건은 그 자체로 훌륭한 캐릭터였다. 원작의 모습에 거의 판박이였던 그 '나쁜 미소'와 태도들은 좋은 감상을 선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로어셰크..아 로어셰크. 여전히 슈퍼히어로 팬들은 로어셰크를 매력적인 캐릭터 순위 상위에 놓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책에서는 모호했던 이 캐릭터는 영화로 인해 굉장히 애정을 가지게 되었다.



- 원작이 주었던 질문들. 시민과 인류를 구하는 자경단 의식의 한계는? / 가면의 책임감과 가면의 병리 / 세상이 개선되어 간다는 것은 어떤 식의 유도로 인해 가능한가? 등을 영화도 여전히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왓치맨]은 위태롭다. 이 글을 적는 나 자신도 여전히 원작의 자장력 안에서 이 영화를 말하는 것이니.


+ 나이트 아울 2대는 집구석에 우산이 없나?(....)

+ 아이맥스 버전의 엔딩 크레딧은 짧은 듯 하다. 노래 한곡 끝날 시간에 후다닥 크레딧이 넘어가버리는데...필름 버전은 어떨지 모르겠다.

+ 아이맥스 버전 영사 사고. 큰건 아니고 대여섯군데에서 몇몇 문장이 번역 문구가 하단에 안 나온다. 원작 안 읽은 사람들은 진도 따라가기도 바쁜데 재앙 추가다. 참고로 난 왕십리CGV에서 봤고 다른 곳은 어떨지, 지금은 개선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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